[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검체 위·수탁 개편을 둘러싼 의료계의 격렬한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17일 열린 검체검사수탁인증관리위원회 3차 회의에서 대한의사협회가 "개편 방향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흐름이 중요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지난 몇 주간 의료계는 검체 위·수탁 개편을 중심으로 강한 대응을 지속했다.
보건복지부가 10월 29일 제2차 검체검사수탁인증관리위원회에서 검체검사 위·수탁 보상체계 및 질 관리 개선방안을 논의하자, 의협은 즉각 "일방적 강행"이라고 반발하며 "정책 강행 시 단호히 저항하겠다"고 역설했다. 정부·의료계 간 긴장은 이때부터 급속히 고조됐다.
11일에는 복지부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개원가와 과별 의사회가 대규모로 모여 궐기대회를 열었다. "일차의료 말살", "위탁관리료 폐지=생존권 붕괴"라는 구호가 잇따랐고, "정부가 강행한다면 의료를 멈출 수밖에 없다"는 발언까지 등장했다. 검사 흐름이 흔들릴 경우 환자 불편과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16일 국회 앞에서는 성분명 처방 강제화·한의사 X-ray 허용·검체 위·수탁 개편을 모두 '3대 의료악법'으로 '국민건강수호 및 의료악법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대표자 궐기대회'가 열렸다. "정책 강행 시 14만 의사가 총력 투쟁에 돌입하겠다"는 결의문이 채택되며 의료계의 대응 수위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처럼 최근 의료계는 검체 위수탁 개편을 둘러싼 강경한 목소리를 일관되게 내왔다.
이런 흐름 속에서 복지부는 17일 검체검사수탁인증관리위원회 3차 회의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회의는 10월 29일 2차 회의에 이은 후속 논의로, 복지부는 최근 진행한 의협·개원의협의회·9개 진료과목 의사회·진단검사의학회·병리학회와의 간담회 내용을 공유했다.
복지부는 현행 고시 취지에 따라 위·수탁기관별 수가를 신설하고 청구방식을 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개편 과정에서 환자 불편 최소화, 개인정보 및 검체 관련 법령 준수, 위수탁기관 행정부담 효율화 등을 고려해 관계 기관과 함께 청구서식 개정·마련, 대조심사, 시스템 개선 등을 병행할 계획이다.
검체채취 등 검사료와 보상영역이 중첩되는 위탁검사관리료는 폐지하고, 검사료 내에서 위·수탁기관별 수가를 신설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는 상대가치점수 상시 조정 과정에서 재정 영향을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특히 복지부는 위·수탁 보상체계 개편 시행 시점을 2026년 하반기 상대가치 상시 조정 시기와 통일시키겠다고 못 박았다. 사실상 제도 시행 시점이 확정된 셈이다. 또한 검체검사 질 제고를 위해 학회·관계기관과 세부 개선안을 지속 논의하겠다고 전했다.
이날 가장 눈에 띈 변화는 의협의 공식 입장이었다.
의협은 "의료계는 검체검사 질 관리 필요성에 동의하고, 그에 따른 개편 방향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또 "의료계 다수는 원칙적으로 현재와 같이 시장 논리에 따라 상호정산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나, 대승적 차원에서 위·수탁기관별 수가 신설과 청구체계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정부의 방향을 존중한다"며 기존 입장과 다른 톤을 내비쳤다.
다만 의협은 제도개편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일차의료기관·필수진료과가 수용할 수 있는 보상방안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년 상대가치 개편 시 올바른 수가체계가 확립되도록 의료계와 협의해 달라"는 요청도 덧붙였다.
진단검사의학회·병리학회·치과의사협회·수탁기관협회 등은 정부 방안에 공감하며 질 관리 강화 및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세부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 같은 의협의 메시지는 최근 현장에서 높아진 강경 기류와는 결이 다르다. 불과 열흘 전 개원가와 각과 의사회 대표들은 검체 위·수탁 개편을 "일차의료 붕괴", "악행", "폭주"로 규정하며 거리에서 집회를 열었다. 16일 궐기대회에서는 이를 '3대 의료악법'으로 규정하며 총력 투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의협이 '존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은, 격화된 대치 국면 속에서도 정책 논의 구조를 일정 부분 인정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복지부가 이달 들어 간담회를 연속 진행하며 의견 수렴의 틀을 보완한 이후 나온 메시지라는 점도 주목된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의협과 일차의료 현장의 온도차가 향후 개편 논의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복지부는 의협의 이번 표현을 "전향적"이라고 평가했다.
공인식 건강보험지불혁신추진단장은 "상대가치 상시 조정 과정에서 위수탁 제도개편에 따른 일차의료·필수의료 재정영향을 의료계와 협의해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구 위원장은 "위원회가 접점을 찾은 점에 의미가 크며, 정부가 의료계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추진하라"고 당부했다.
복지부는 향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보상체계 및 질 관리 개선안을 다룰 예정이며, 청구방식 개편과 질 관리 강화도 차질 없이 진행해 나갈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