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해진 기자] "이제는 '질병으로서 비만'의 개념과 '임상적 비만', '임상 전 비만'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보다 과학적이고 세분화된 기준을 바탕으로 체중과 무관하게 심혈관 보호와 대사 개선 효과를 보이는 '위고비(세마글루티드)'와 같이 체중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건강 중심의 접근으로 비만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 세계 의료진들은 이러한 방향성을 갖고 비만 치료 환경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프란체스코 루비노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의과대학 비만대사외과 교수는 최근 메디파나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임상적 비만의 정의에 대한 필요성과 '위고비'가 비만 치료에서 갖는 의미와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루비노 교수는 올해 타임(TIME)지의 '건강 분야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인물로, 최근 Lancet Diabetes&Endocrinology 위원회가 발간한 'Definition and Diagnosis of Clinical Obesity'의 제 1저자로 참여해 임상적 비만의 정의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주도했다. 이 연구는 란셋에서 임상적 비만 정의 및 진단 기준 위원회(이하 위원회)가 4년간의 활동을 거친 결과물이다.
루비노 교수는 "비만은 과거 BMI나 체형을 기준으로 진단됐으나, 위원회는 건강 영향을 기반으로 한 '임상적 비만(Clinical Obesity)을 새롭게 정의했다. 여기서 말하는 임상적 비만이란, 장기나 조직 기능의 이상을 초래하는 객관적 징후와 증상을 가진 '전신 만성 질환'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 연구에서 위원회는 비만이 장기에 미치는 영향 유무에 따라 ▲임상적 비만 ▲임상 전 비만 등 두 가지 정의로 구분했다. 만일 비만으로 인해 장기 기능에 장애가 발생했다면, 다른 질병과 동일한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이러한 임상적 비만을 '지방증 기반 만성질환(ABCD, Adiposity-Based Chronic Disease)'으로 재정의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루비노 교수는 "많은 국가에서 비만의 예방을 더 중요시 하고 있고, 예방의 중요성에 동의하지만, 현대의 비만 정의는 과거보다 더 정밀하고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면서 "비만 환자가 어느 단계에 위치하는지 명확히 진단하고, '예방적 접근'과 '치료적 접근' 중 적합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환자 중심 치료'에도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경미한 비만이더라도 장기 기능에 전혀 문제가 없다면 예방적 개입이 효율적이고 비용효과적이다. 그러나 이미 질병 단계에 있는 환자에게 예방중심적 정의로 접근하는 것은 자원 낭비다. 명확한 진단을 통해 질병을 교정하기 위한 유효하고 효율적인 치료적 개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만에 대한 재정의가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새로운 비만 치료 패러다임을 제시한 위고비와 같은 비만치료제의 역할이 컸다.
루비노 교수는 "비만 치료는 1950년대 이후부터 수술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이는 비만을 단순히 식습관 혹은 생활 습관 문제로만 이해하는 기존 인식의 영향으로 비만 수술을 위 크기를 줄여 강제로 환자의 음식 섭취를 줄이는 의도로 해석했다"면서 "그러나 비만 수술이 단순히 위 크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장의 생리학적 변화를 유도해 비만을 치료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위 우회술을 통해 GLP-1의 분비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위를 대상으로 한 비만 수술 후에도 체중과 상관없이 2형 당뇨병이 호전되는 효과가 보고된다. 당뇨를 동반한 환자의 약 50%가 수술을 통해 당뇨 관련 관해 상태를 장기적으로 유지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즉, 장내 생리학적 변화가 비만이나 당뇨 치료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내 GLP-1을 포함한 다양한 호르몬이 여러 다른 장기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한 결과, 음식의 섭취와 질병 간의 관계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이에 위고비와 같이 생리학적으로 포만감을 증가시키고 장내 작용을 변화시키는 효과적인 약물을 통해 GLP-1 관련 신호 체계를 활성화시켜 비만과 관련한 대사(Metabolism) 조절을 치료 목표로 두는 것이 훨씬 유효한 접근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루비노 교수는 위고비가 보다 정밀하고 표적화된 약물 치료로서, 현재 사용 초기 단계임에도 체중 감량 외 심혈관 관련 위험 감소 효과를 비롯한 대사 기능의 개선으로 간을 포함한 다양한 장기 기능의 개선을 보여준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GLP-1이 가진 기전이 위장관계 측면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의 건강과도 생리학적 연관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더 많은 건강상의 혜택이 밝혀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루비노 교수는 "임상 전 단계에서는 체중 감량을 질병 위험 감소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임상적 비만 환자는 이미 증상과 징후가 나타난 상태이므로 장기 기능을 개선할 수 있는 치료가 필요하다"며 "위고비와 같은 치료제가 이러한 개선 효과를 입증했기 때문에, 의학적·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보건의료 체계 전반에서 접근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질병 초기 단계에서 환자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치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환자는 더 악화된 상태로 보건의료 체계에 다시 편입될 수밖에 없다. 유독 비만만 지금까지 환자 개인의 생활 습관 개선을 권장하는 접근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비만도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 접근성이 확보돼야 환자는 물론, 보험 체계와 정부를 포함한 보건의료 체계 전반에서 효율적인 치료가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프란체스코 루비노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Q. 위고비가 GLP-1 유사체로서 단일 작용 기전을 갖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이점은 무엇이 있나.
현대 의학에서는 이론적으로 정밀 표적이 가능한 환자 맞춤형 치료제를 이상적으로 본다. 여러 표적을 동시에 겨냥함으로써 얻는 효과는 아직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며, 의도하지 않은 반응이 발생할 수도 있어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위고비는 GLP-1이라는 단일 호르몬을 표적으로 삼지만, GLP-1 수용체는 여러 장기에 존재하며 영향을 끼친다. 단일 표적으로 다수의 작용(Multi Action)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위고비는 GLP-1 호르몬이 가지는 생리학적 특성에 기반해 단일 표적 기전으로도 여러 장기를 대상으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다양한 임상 연구 결과 체중 감량뿐 아니라 심혈관 질환 위험 감소, 대사 이상 관련 지방간염의 개선 효과와 함께 우수한 안전성 프로파일이 확인된 바 있다.
Q. 위고비는 GLP-1 계열 약물 중 유일하게 뇌의 시상하부에 직접 작용하는 기전이 규명됐다. 향후 위고비의 적응증 확장 가능성은.
위고비의 주성분인 세마글루티드는 GLP-1 수용체 작용제로서 뇌의 시상하부에 직접 작용해 식욕을 조절한다. 체중 감량 효과 외에도 당뇨 조절, 대사 이상 관련 간 질환의 개선 등 다양한 이점을 보이고 있다.
GLP-1 수용체는 췌장을 포함한 다른 장기에도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GLP-1 기반 치료제의 추가 효과가 밝혀질 잠재력은 매우 크다. 실제 적응증 확장 여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아스피린과 같이 주요 적응증이 변화된 선례가 다수 존재한다.
위고비 역시 다양한 건강상의 이점을 증명한 만큼 다방면으로 적응증 확대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 추가로 GLP-1 신호 체계를 바탕으로 GLP-1과 관련한 다른 임상적 분야에서도 활용을 기대할 수 있다.
Q. 임상적 증상에 기반한 비만 진단 기준이 실제로 반영되려면 진단 프로토콜에 어떠한 변화가 필요한가.
우선 다른 질병의 진단과 같이 정확한 인체 계측이 이뤄져야 한다. BMI는 장기 기능의 이상 여부를 판단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방이 과도하게 축적돼 있는지 여부도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대표적으로 지방이 과도하게 축적되지 않았음에도 근육량이 많아 BMI가 매우 높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진단 프로토콜을 고려할 때, BMI 40kg/m²를 초과하는 초고도 비만이 아니라면, 실제 지방의 축적 정도는 정확한 계측을 통해 명확히 확인해야 한다. 진단에 있어 불명확한 요소를 최소화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두 번째는 환자가 질병 단계에 있는지 여부를 장기 기능의 이상 유무를 파악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료진이 환자에게 직접 증상과 징후가 있는지 병력 청취를 할 수도 있고, 혈액 검사를 통해 대사 기능 또는 간 기능의 장애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며, 필요 시 추가 검사를 시행할 수 있다.
잠깐 움직이기만 해도 숨이 차는 환자가 있다고 가정하면, 과거에는 단순히 체중이 많이 나가서 숨이 차는 것이라며 체중 감량을 권하는 정도로만 조치했다.
하지만 검사를 해 보면 비만으로 인해 심부전이 발생했거나, 폐 기능 손상 등 장기 기능 장애가 동반된 현상일 수 있다. 실제로 환자 중 한 분도 숨이 차는 증상을 호소했는데, 비만 수술 준비 과정에서 중증 심부전이 있다는 검사 결과가 나온 사례가 있다.
증상이 있다는 것은 비만이 이미 질병 상태에 있다는 의미이므로, 정확한 임상적 진단을 통해 신속한 개입이 필요하다. 특히 최근에는 과학적 근거 기반의 효과적인 비만치료제가 등장하면서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를 신속히 제공할 수 있는 치료 환경 변화가 나타났다. 비만 치료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이 환자의 체중 감량 여부 같은 개인의 책임에 국한되지 않는다.
Q. 한국 및 아시아 지역의 비만 관리와 치료 환경을 평가한다면.
4개의 국가에서 거주하고 협업하며 느낀 점은, 전 세계적으로 비만 정책이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비만은 개인의 책임으로 인한 상태라는 오해가 있었고, 이로써 개인의 책임을 전제로 한 예방 중심의 비만 정책이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금연이 폐암 예방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이미 폐암이 생긴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은 아닌 것처럼, 비만도 마찬가지다.
Q. 향후 비만 관리 및 치료를 위해 가장 중요한 임상적·정책적 과제는 무엇인가.
그동안의 비만 치료 정책은 비만을 단순히 위험 인자로만 인식해 왔기 때문에, 다른 동반질환과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보건 체계의 비용 증가를 고려해 제정됐다.
제 환자 중 한 분은 비만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심부전이 심각하게 진행된 상태였는데, 당뇨를 동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고비 치료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비만은 다른 질병이 동반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건강에 위해를 가한다.
단순히 BMI만을 진단 기준으로 삼아 인구의 40~50%가 치료 대상인 것으로 확인되는 현재 기준상으로는, 정책 입안자 입장에서 투자 대비 회수의 관점에서 고려해 지원을 최소화하는 것이 논리적일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현재 위고비와 같은 효과적인 치료제가 등장했음에도 환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접근성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질병으로서 비만의 개념과, 임상적 비만과 임상 전 비만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합리적인 정책 개입이 이뤄져야 한다.
이전에는 이런 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약을 동일한 용량으로 투여하는 천편일률적 방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지만, 새로운 비만 정의에 따라 현재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치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명료한 근거를 제공한다면, 정책 입안자 또한 명확한 기준을 세워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