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독일 월드컵. 한국 국가대표팀의 조별예선 두 번째 경기였다. 우승 후보인 프랑스와 대전에서 한국은 시종일관 밀리다가 후반 36분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다. 당시 동점골의 주인공은 박지성이었다.

이름이나 소개 정보를 나타내는 선수 자막에는 당시 소속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새겨져 있었다. 박지성은 2004-2005 시즌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그해 맨유로 이적, 1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냈다.

당시 실시간으로 중계를 봤던 기자로선 속된 말로 '국뽕'이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해외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이 한국 선수 자막에 표기됐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손흥민이나 김민재, 이강인 등 빅클럽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많아졌다지만, 당시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늘 축구 변방에 머물러 있던 한국 축구로선 빅클럽 선수를, 그것도 월드컵에서 자막으로까지 영접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최근 이와 유사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국적 제약사를 취재하는 기자로서 국내 신약 급여 관련한 상황을 주로 취재하긴 하지만, 글로벌 매출 기사도 종종 쓰기도 한다.

신약에 대한 글로벌 매출 추이는 어떤 약이 임상 현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지표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로벌 빅파마들의 분기 실적이나 연례보고서를 훑어보곤 하는데 반가운 이름이 등장했다. 존슨앤드존슨(J&J) 올해 1분기 실적 보고서였다.

'라즈클루즈(제품명 렉라자)'가 J&J 분기 보고서에 매출 품목으로 당당히 언급된 것이었다. 라즈클루즈는 J&J '리브리반트(아미반타맙)'와 병용요법을 통해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에서 표준치료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작년 8월 미국 FDA 허가를 받고 하반기부터 본격 처방된 만큼, 국내 업계에서도 렉라자 매출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두 제품을 합한 1분기 글로벌 매출은 1억4100만달러(한화 약 2006억원)였다. 직전 분기(2024년 4분기) 매출인 4700만달러(한화 약 668억원)와 비교하면, 약 200% 증가한 셈이다. 경쟁약 아스트라제네카 '타그리소(오시머티닙)'의 가장 최근 분기 매출(2024년 4분기)이 17억300만달러(한화 약 2조4000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아직 적은 수치다.

그럼에도 대단한 사건이다. 국산 신약이 글로벌 분기보고서에 품목 매출로 표기된 건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에서 늘 변방에 머물러 있던 국내 제약업계로선 이마저도 실로 대단한 사건이다.

이제 처방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매출이 올라갈 여지도 충분하다. 라즈클루즈+리브리반트군은 전체 생존율 중앙값(mOS)에서 타그리소 단독요법보다 최소 12개월 이상을 연장하며 임상적 이점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이에 J&J는 두 병용요법 매출이 연간 10억달러 이상을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리브리반트 피하주사(SC) 요법이 글로벌 규제기관 승인을 목전에 두고 있는 점도 목표 달성을 위한 청신호로 보여 진다.

박지성이 그랬던 것처럼 렉라자 또한 글로벌 신약 대전에서 '개척자'로서의 첫 등장이다. 향후에도 제2, 제3의 렉라자가 세계 유수의 신약과 맞붙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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