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환자 10명 중 3명이 5년 안에 사망하는 희귀난치성 질환 '폐동맥고혈압'. 국내 약 3600명의 환자들은 기존 치료제로는 증상 완화 외 뚜렷한 대안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20년 만에 등장한 신기전 치료제가 정부의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에 선정되면서, 접근성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은 생존을 위협하는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를 앞당기기 위한 정책 실험이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부터 이 제도를 운영해오고 있으며, 기존에는 약 330일이 걸리던 신약 등재 과정을 150일 수준으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 절차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120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급여평가(150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약가 협상(60일)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구조였다. 이 제도는 세 단계를 병행 처리해 행정 지연을 줄이고 환자의 치료 기회를 앞당기는 구조로 설계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27일 제2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2025년 시행계획)을 확정했다. 이 계획의 4대 추진방향 중 하나인 '의료격차 축소 및 건강한 삶 보장' 영역에서는 중증 희귀난치성 질환 의약품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이 세부 추진계획에 포함됐다.

2023년 1차 시범사업에서는 희귀질환 치료제인 콰지바(신경모세포종), 빌베이(간내 담즙 정체증) 등 2개 품목이 선정됐는데, 콰지바는 지난해 12월 신속 등재에 성공했고 빌베이는 급여 논의 중이다.

이어 2차 시범사업에는 총 10개 품목이 신청됐다. 보건복지부는 이 가운데 ▲기대여명 1년 미만의 질환에 해당하고 ▲기존 치료법이 없거나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개선 효과가 있으며 ▲신속등재(GIFT) 지정 혹은 지정 신청이 가능한 약제 등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3개 약제를 선정했다. 선정된 약제는 소타터셉트(폐동맥고혈압), 펜플루라민(드라벳증후군), 안발셀(거대B세포림프종)이다.

이 중 폐동맥고혈압은 대표적인 희귀·난치성 진행성 질환으로, 환자 대부분은 40대 여성이며 일상적인 가사나 외출도 어려운 환자가 많다. 현재까지 완치가 가능한 약물은 아직 없으며, 기존 치료법은 혈관 이완이나 증상 조절에 그친다. 치료 실패 시 폐이식까지 고려될 수 있는 만큼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 도입은 절실했다.

제2차 시범사업에 선정된 소타터셉트는 폐동맥고혈압 치료제 중 2005년 실데나필 이후 20년 만에 등장한 혁신 신약이다. 소타터셉트는 미국 FDA에서 혁신치료제(BTD)로 지정된 뒤 지난해 3월 정식 허가를 획득했고, 유럽에서는 우선 심사대상 의약품(PRIME)으로 지정돼 8월 승인됐다. 국내에서는 식약처의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GIFT) 제24호 약제로 지정돼, 시범사업을 통해 등재 절차를 밟고 있다.

이 약제는 액티빈 신호전달 억제제(ASI)로 폐혈관 내 세포 증식 신호를 억제해 병의 근본 기전을 개선하는 기전이다. 임상시험에서 소타터셉트를 병용한 환자군은 ▲임상적 악화 또는 사망 위험이 84% 감소했고 ▲6분 보행 거리도 40.8m 증가했다. 이를 기반으로 세계폐고혈압심포지엄(WSPH) 진료지침에도 빠르게 반영됐다.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은 단지 '빨라진 절차' 이상의 함의를 가진다. 정부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치료제를 보다 예측 가능하고 빠르게 건강보험 체계 안으로 들이기 위한 구조 개편이라는 점에서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면 접근성 개선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한국 환자들도 국제적인 치료 옵션에 보다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보고, 해당 제도가 더 발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2025 메디파나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