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인환 기자] "지금은 제약 초지능(Super Intelligence) 시대입니다. AI를 활용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지금, 우리가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할 때입니다."
AI 기술이 신약개발 전반에 깊숙이 관여하는 가운데, 업계 전문가들은 AI가 단순한 자동화 도구를 넘어 신약개발의 '전략적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기존에는 AI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경쟁력의 척도였다면, 이제는 이를 어떻게 조합하고 전략화하느냐가 제약사의 차별점을 결정짓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CPHI/Hi Korea 2025' 컨퍼런스에서 권진선 파로스아이바이오 센터장은 '인공지능 활용 신약개발 비임상과 임상단계에서 적용사례'을 주제로 발표에 나서, 단순한 타깃 탐색을 넘어 비임상·임상 설계와 예측, 환자 선별까지 AI가 신약개발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개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권 센터장은 AI의 활용이 드럭 디스커버리(Target ID)에만 국한되지 않고, 비임상 독성 예측, 임상시험 설계, 환자 식별, 디지털 대조군(Synthetic Control Arm) 설계 등 다양한 단계로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ADMET 예측 기술에 대해 그는 "AI의 예측 정밀도가 높아지면서 동물실험 일부를 대체할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며, 미국 FDA 사례를 들어 글로벌 규제 기관들이 AI를 기반으로 한 일부 의사결정 도구를 점차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을 제시했다.
AI의 강점으로는 '텍스트마이닝'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권 센터장은 "방대한 문헌과 DB에서 타깃 간의 관계성과 질환 연결성을 시각화하는 방식은 연구자에게 매우 직관적인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하며, 자사 플랫폼에서도 이를 비임상 설계 단계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그는 오가노이드 기반 실험 데이터를 AI가 학습해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형태로 구현하고, 환자 반응을 예측하는 신약개발 기술이 부상하고 있다며, "향후 동물 모델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정밀한 예측 기술로 고도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임상시험 단계에서도 AI는 프로토콜 설계 오류를 줄이고 환자 모집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프로토콜 설계 오류 시 건당 수십만달러, 수개월의 지연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IQVIA 등은 수천개의 임상 데이터를 학습해 불필요한 문항 제거, 설계 간소화, 환자 부담 완화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 그는 "AI가 환자와 연구자 모두의 피로도를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글로벌 기업 사례를 언급하며, AI 기반 바이오마커 분석과 디지털 대조군 활용이 희귀질환 분야에서 실제 임상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 센터장은 "AI가 모든 걸 자동으로 해결해주는 시대는 아니지만, 연구자들이 쥐고 있는 수많은 레고 블록들을 전략적으로 조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또한 ADMET AI 등 다양한 AI 플랫폼들이 오픈소스나 SaaS 형태로 제공되며 제약기업 연구자들이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인재 측면에서는 AI 전문 인력보다는 제약·BT 분야의 기존 전문가들이 AI 역량을 함께 키워가는 융합형 인재 모델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IT인력의 진입 장벽은 여전히 존재하기에, 오히려 기존 바이오 전문가들의 AI 전환이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트렌드와 관련해서는, AI 기업과 병원, 유전체 분석 기관이 협력하는 생태계가 활발히 구축되고 있으며, 이들은 독점 데이터와 공개 데이터를 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 기반으로 성능 고도화를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복지부 주도의 초기 투자 이후 정부 예산이 축소된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국내 AI 신약개발 플랫폼 기업들이 자금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언급했다.
권 센터장은 "AI 기술 혁신 자체는 이미 충분히 진행됐다"며 "앞으로는 사회적 신뢰와 규제기관의 공조, 연구자의 창의력이 AI 신약개발을 실현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데이터 공유'와 '거버넌스 체계'가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권진선 센터장은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처럼 대규모 단일 기업 중심 투자가 어렵다"며 "플랫폼과 데이터를 공유하는 협력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병원·제약기업 간의 '콘소시엄형 AI 신약개발'이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는 "AI 기반 기술보다 더 시급한 건 정책과 제도"라며 "AI 동물대체시험의 인정, 바이오 특위 중심의 정책 프레임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윤사중 프리딕티브AI 대표는 "국내에도 장수노인 유전체 기반의 한국형 레퍼런스 지놈이 구축돼 있다"며 이를 기반으로 한 정밀 신약개발 가능성을 제시했다.
참석자들은 AI 기술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하며 민간 협력을 유도하는 환경 조성이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