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업계에 따르면,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지난달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 2명 이상 선임 시, 의결권 있는 주식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에 해당하는 투표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내년에 법률 시행 후 의무 대상 기업이 주총에서 이사 3명을 뽑는다고 가정하면, 의결권 있는 주식을 보유한 주주는 주식 1주당 3표를 행사할 수 있다. 해당 주주가 원하는 이사 후보 한 명에게 3표를 몰아주거나 후보 3명에게 각각 1표씩 나눠서 줄 수 있다. 이후 득표 수에 따라서 순위대로 이사가 선임된다.
찬반 형식이 아닌 득표 수에 따라서 이사를 선임할 수 있기 때문에, 소액주주 측에서 한 후보에게 표를 집중할 경우 이사로 선임시킬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사내이사 3명을 선임키로 하고 후보자가 5명이라면, 최대주주 측은 후보자 3명에게 표를 분산해서 투표해야 하지만 소액주주는 후보자 1명에게 표를 집중 투표함으로써 이사로 선임시킬 수 있다. 선임되는 이사가 많을수록 투표할 수 있는 표가 많아져 소액주주에게 유리해진다.
특히 이번 상법 개정으로 소액주주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영향력이 커질 전망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제약·바이오기업을 포함해 국내 주식 시장에 상장한 여러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자산 2조원이 넘는 제약·바이오기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국민연금 지분율은 지난 6월 30일 기준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7.3%, 셀트리온 6.64%, 녹십자 9.95%다. 또한 국민연금은 유한양행 지분 7.85%(지난 8월 21일 기준)를 갖고 있다.
자산이 2조원에 근접해있는 제약·바이오기업으로 대웅제약과 HK이노엔도 있다. 공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6월 30일 기준으로 대웅제약 지분 11.73%와 HK이노엔 지분 5.43%를 보유 중이다.
그간 국민연금은 제약기업 주총을 통해 이사 선임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낸 이력이 있다. 지난해 부광약품 정기주총에서 과도한 겸임으로 충실의무 수행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이제영 대표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반대했다.
대웅제약 주총에선 이창재 사내이사 선임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반대 이유는 직전 임기에 이사회 참석률이 75%에 미치지 못해서다. 또한 국민연금은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 당시에 열린 임시주총에서 같은 이유로 임종윤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한 바 있다.
아울러 제약·바이오업계 일각은 집중투표제 의무화에 따라 주주 권리를 높일 수 있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제약·바이오 특성을 반영한 주주 행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업계 관계자 A씨는 메디파나뉴스와 질의응답에서 "집중투표제 도입 시 최대주주가 아닌 다른 주주 의견이 반영되는 수준을 높일 수 있다"면서 "연구개발(R&D)을 중요시하는 제약·바이오산업을 고려한 주권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 B씨는 "주주 권리를 강화하고 이사회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한다"며 "제약·바이오산업은 신약 개발 등 장기적인 투자가 필수적이기에, 단기적 이해관계보다 R&D에 초점을 둔 의결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