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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의료는 AI가 가장 빠르게 정착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히지만,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개원가는 초음파·심전도·내시경 등 진단과 판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AI를 도입하고 있지만, 수가가 낮거나 부재해 실질적 사용이 어렵다.
반면 대학병원은 진료·간호·행정 전반의 효율화, 스마트 물류·디지털 트윈·로봇 수술 등 'AI 기반 병원 운영'으로 확장하려 하지만, 이 역시 규제의 틀에 막혀 있다.
대한임상순환기학회 한경일 정책부회장은 "어렵게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새 질환을 판독했지만 국내 인정 수가가 너무 낮아 기업이 결국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을 들었다"고 전했다.
AI 기술이 현장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수가와 제도라는 최소한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부회장은 "우리나라에는 인재가 많지만 제도적 보상이 없으니 기술 발전이 국내에 머물지 못한다"며 "결국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된 평가와 보상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의 기술적 수준은 이미 전문가에 근접했다는 평가다. 일반 AI의 정확도는 전문가의 70~80% 수준으로 알려져 있지만, 의료용 AI는 성격이 다르다.
대한임상순환기학회 이상 학술부회장은 "일반 AI가 무한한 웹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해 오류 가능성이 높다면, 의료용 AI는 정제된 데이터를 학습해 신뢰도가 훨씬 높다"며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강화 학습을 반복하기 때문에 실제 정확도는 90% 이상으로 올라간다"고 말했다.
그는 "심전도 AI는 부정맥이 없는 환자에서도 향후 심방세동 발생 위험이나 폐동맥 고혈압 가능성까지 예측할 수 있다"며 "심전도에 익숙하지 않은 타과 의사들에게 조기 전원 판단이나 응급 대응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AI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확산은 어렵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이 부회장은 "일부 대학병원에서 제한적으로 운영 중이나, 정부가 의료 수가를 개선하지 않으면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대학병원에서는 AI가 서비스 개선과 업무 분담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개념으로 접목되고 있다. AI가 의사의 손과 눈, 귀를 대신하는 '스마트 병원'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학병원들은 진료 절차 지원, 임상의사 결정 보조, 진료기록 자동화, 영상 판독 지원, 환자 모니터링 등 의료 현장의 전 과정에 AI를 적용하며 효율화를 시도하고 있다. 기술의 효과가 입증되면서 병원 내부에서 직접 AI를 개발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대목동병원 김한수 병원장은 의료현장의 현실을 '규제의 벽'으로 표현했다. 그는 현장의 변화 의지를 제도와 규제가 따라가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이대목동병원은 현재 병원 데이터 사업단과 여러 스타트업, IT기업과 협력해 AI를 차팅·간호 인계·스마트 물류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하고 있다. 하지만 김 병원장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고 짚었다.
김 병원장은 "AI가 진료 전 과정에서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수준까지 왔지만, 문제는 이 기술을 의료현장에 얼마나 현실적으로 도입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대목동병원은 AI와 사람이 함께하는 의료 진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의료원 산하 TF팀을 구성했다. 더 나아가 선도적으로 이 분야를 이끌기 위한 제도 개혁까지 논의 중이다.
김 병원장은 "우리나라는 의료를 산업으로 인정하지 않고 규제의 대상으로만 본다. '산업'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곧바로 영리로 인식하는 풍토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료를 보건산업으로 보고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기술이 성장할 수 있다. 의료를 산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이런 혁신은 결국 연구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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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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