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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체계 전면 개편을 향한 정부의 의지가 확고해지자, 의료계는 '범의료계 결집'으로 대응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개원가 단체들은 일제히 '필수의료 붕괴'를 경고하며, 행정 논리가 현장의 맥락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9일 '검체검사수탁 인증관리위원회' 제2차 회의를 열고 '검체검사 위·수탁 보상체계 및 질 관리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논의는 지난 7월 1차 회의에서 예고한 제도 전반의 손질 방침에 따른 후속 절차로, 복지부는 검체검사 시장의 불공정 거래 구조와 과열 경쟁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복지부는 "기관 간 개별계약과 상호정산으로 인해 검사료 할인, 담합, 질 저하가 발생하고 있다"며 "검체검사 위수탁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 질 관리 강화, 환자 안전 확보를 위해 보상체계의 근본적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복지부가 내놓은 개선안은 단순한 구조 조정이 아니라, 거래 질서를 전면적으로 재편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위탁·수탁기관 분리청구·지급 전환 ▲위탁검사관리료 폐지 ▲검사료 내 배분비율 설정 ▲수탁기관 인증기준 강화 ▲질가산 평가 개선 ▲재수탁 제한 등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복지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위수탁 과정의 공정성과 책임을 보다 명확히 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학계는 정부의 기조에 대체로 공감했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 대한병리학회, 대한핵의학회는 검체검사가 명백한 의료행위로서, 할인행위가 이뤄지는 것은 부적절하며 분리청구·지급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수탁기관협회도 "시장질서로는 과도한 할인 구조를 바로잡기 어렵다"며 "이를 제한하는 강제적 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의료계는 정부의 논리보다 절차의 일방성에 더 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개원가를 중심으로 "협의 없는 개편 추진은 제도의 신뢰를 무너뜨린 행정"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복지부가 직접 발주한 2023년 연구용역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선방안 마련 연구'에서도 '현행 체계 유지 및 공정거래 기준 보완'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이 도출됐지만, 정작 그 결과를 스스로 뒤집었다는 것이다.
또한 2024년 9월 구성하기로 한 '검체검사 제도개선 협의체'조차 단 한 차례도 가동되지 않은 채 개편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대한내과의사회는 이번 사안을 "필수의료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폭주"로 규정했다.
내과의사회는 "복지부가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한 채, 아무런 합리적 근거도 소통도 없이 제도를 흔들고 있다"며 "이는 의료 생태계를 파괴하려는 개악 시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내과의사회는 분리청구(EDI) 방안이 현실을 무시한 행정적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의사회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환자는 두 기관에 각각 결제해야 하고, 질병정보가 수탁기관으로 직접 전송돼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라며 "비급여 정산의 복잡성, 검사 오류 시 책임 불분명, 청구 시스템 관리비용 급증 등 재앙적 문제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내과의사회는 또 검체검사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진료의 출발점이자 필수의료의 핵심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의사회는 "검체검사는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국민건강의 문지기 역할을 하는 기본 진료다. 이 제도가 강행되면 일차의료기관의 존립 기반이 무너지고, 의료 접근성 악화와 의료비 급등으로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가 초래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개원가는 지체 없이 '검체검사 제도개선 협의체'를 가동해 의료계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과의사회는 "정부가 의료계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고 제도 개악을 밀어붙인다면, 필수의료 붕괴와 국민건강 파탄의 책임은 전적으로 복지부에 있다"고 꼬집었다.
대한의사협회도 정부의 강행 기조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의협은 "근거 없는 위탁검사관리료 폐지와 보상체계 개편이 강행된다면, 의료계는 현장 의견을 무시한 정책에 단호히 맞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성근 대변인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 당시 '전문가와의 소통'을 약속했지만 실제 정책 추진 과정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며 "의료현장의 전문가 의견은 배제되고, 특정 직역의 이해만 고려된 채 의료 전문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말했다.
의협은 현재 범의료계 공동 대응을 위한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를 구성하고 전국의사대표자 궐기대회를 준비 중이다.
김 대변인은 "정부의 일방적 행정이 계속된다면 제2의 의료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직역이 현실적 해법을 논의하고 공동 대응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본연의 사명을 다할 것"이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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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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