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2024년 1월 국내 폐암 치료 환경은 큰 전환점을 맞았다. 유한양행 '렉라자(레이저티닙)'를 비롯한 3세대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표적치료제들이 1차 치료제로 건강보험 급여 등재되면서다. 4기 폐암 환자들로선 3년 생존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최근 폐암은 또 다른 전기를 맞고 있다. 3세대 표적치료제와 병용요법을 통해 4년 이상 생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MARIPOSA)까지 등장하면서다.
'렉라자+리브리반트(아미반타맙)' 병용요법을 진행성 폐암 환자에게 사용한 결과, 이들은 48개월 이상의 전체생존기간(OS)을 보였다. 이에 해당 치료법은 최근 미국 국립종합암네트워크(NCCN)가 정한 '1차 치료 옵션(Preferred, Category 1)'으로까지 등재됐다.
폐암 전문가들 역시 이를 매우 반기는 분위기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서정민 교수는 최근 메디파나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치료를 열심히 받아서 5년 이상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폐암 환자들이 많아졌다는 점을 체감할 정도"라고 말했다.
1년 생존이 일반적이었던 4기 폐암 치료서 장기 생존 시대가 열렸다는 서 교수.
병용요법 시대가 도래 했지만, 그럼에도 렉라자 단독요법은 여전히 중요한 치료 옵션이라 강조했다.
임상 현장에서는 여전히 단독요법을 선택하는 비율이 더 높고, 저위험군에선 병용요법과 단독요법의 효과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 "병용요법은 상당수가 부분급여로 운영돼 경제적 부담 대비 충분한 치료 이득이 예상될 때만 권고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또 병용요법은 그만큼 부작용 부담이 크고, 환자 삶의 질과 가치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최근 표적치료제 사용 단계가 1~3기 조기 폐암이나 수술 가능한 병기로 확장되는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면서 "렉라자도 수술 전후 또는 항암·방사선 동시 치료 전후 사용하는 임상 연구가 진행 중이다. 향후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다면, (렉라자 단독요법의) 치료 적용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것"이라 기대했다.
서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취득 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조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대한폐암학회 국제교류위원회에서 국제교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서정민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Q. 2024년 렉라자 급여 전후, 진료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3세대 표적치료제에 급여가 적용되면서 환자 접근성과 실제 치료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다. 이전에는 1·2세대 약제를 먼저 사용한 뒤 T790M 내성이 확인돼야만 3세대 약제 급여가 가능했다.
하지만 T790M 내성 변이가 나타날 확률은 절반에 불과해, 많은 환자들이 조직 검사까지 시행하고도 결국 경제적 부담으로 3세대 표적치료로 전환하지 못하는 상황을 반복해야 했다. 표준치료임에도 국내 환자들이 경제적 이유로 3세대 치료를 받지 못했던 점은 의료진 입장에서도 큰 아쉬움이었다.
현재는 3세대 약제로 치료를 시작하지 않는 환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치료 패턴이 바꼈다. 급여 직후 치료를 시작한 환자 중에는 지금까지 문제없이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부 장기 반응 환자들은 항암제를 혈압약처럼 복용하며 직장생활이나 여행 등 평소의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언젠가는 병이 악화되는 시점은 오지만, 그때까지 일반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은 표적치료제의 가장 큰 장점이다. 특히 과거엔 3세대 치료를 받을 수 없어 병이 악화됐다고 느끼는 환자들의 아쉬움이 컸지만, 지금은 처음부터 3세대 약제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런 후회가 사라졌다는 점이 진료 현장에서 확인되는 중요한 변화다.
Q. 급여 후 국산 신약이라는 점에서 환자 문의도 많았을 것 같다.
3세대 표적치료제에 급여가 적용되기 전, 유한양행의 환자지원프로그램(EAP)을 통해 많은 환자들이 렉라자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당시 치료 반응이 좋아 복용을 유지하던 환자들은 급여 시행 이후 보험을 통해 계속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대부분 1·2세대 치료제로 시작했을 환자들이었기에 환자들의 감사한 마음이 특히 컸다. 또한 렉라자가 국산 신약이라는 점과 환자지원프로그램 운영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약 이름을 이미 알고 외래를 찾는 환자들도 꽤 있었다.
Q. 진료에서 3세대 표적치료제 치료 전략을 세우는 기준은 어떻게 되나.
병의 진행 정도와 환자의 전신 상태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질환 측면에서는 전이의 개수와 크기, 뇌전이 여부 등 주요 장기의 침범 정도, 조직검사를 통해 예후가 나쁜 아형인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환자 상태는 환자가 치료를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의미하며, 연령, 일상생활 수행능력, 당뇨·폐질환 등 기저질환을 함께 고려해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렉라자와 타그리소 중 한 가지 약제를 선택할 때는 치료효과보다 부작용 양상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렉라자는 심혈관계 이상, 부정맥, 폐렴 발생이 상대적으로 적어 심부전이나 폐질환을 가진 환자에게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반대로 렉라자에서 조금 더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진 부작용을 이미 갖고 있는 환자라면 다른 약제 선택이 적절하다.
Q. 그렇다면 심혈관 질환이나 기저질환을 동반한 고령 환자일수록 렉라자 처방을 선호하는 편인가.
단순한 혈압·고지혈증 정도는 약제 선택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다만 심근경색 병력, 심부전, 중요 부정맥 등 의미 있는 심혈관 질환이 있는 환자의 경우에는 고려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렇다고 해서 심혈관 질환이 있다고 무조건 렉라자를 우선 처방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약제 선택을 결정짓는 '절대적 인자'라고 보기엔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환자의 전신 상태와 동반 질환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가장 적절한 치료 옵션을 결정한다.
Q. 최근 3세대 표적치료제 병용요법 연구가 활발하다. 그럼에도 단독요법이 갖는 의미는?
현재 임상 현장에서는 여전히 병용요법보다 단독요법을 선택하는 비율이 더 높다. 여러 기준으로 환자를 고위험군과 저위험군으로 나눠 분석했을 때, 저위험군에서는 병용요법과 단독요법의 효과 차이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기 때문이다. 또 병용요법은 상당수가 부분급여로 운영되고 있어, 경제적 부담 대비 충분한 치료 이득이 예상될 때에만 권고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환자의 삶의 질과 가치관 역시 중요한 요소다. 병용요법은 치료 효과가 크지만, 그만큼 부작용 부담은 크다. 고령이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 중에는 생존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부작용 부담이 큰 치료를 선택하기보다, 증상이 적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해 단독요법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또 병용요법은 대부분 주사 치료로 이뤄져 병원을 자주 방문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 요인이 된다. 직장을 다니거나 병원과 멀리 거주하거나, 혼자 이동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치료 과정 전체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이를 '시간 독성(time toxicity)'이라고 부르며, 경제적 부담뿐 아니라 치료에 소요되는 시간 자체도 환자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모두 감안해, 실제 진료에서는 치료 효과뿐 아니라 부작용, 비용, 환자의 가치관과 생활 여건을 함께 고려하며 환자·보호자와 충분한 면담 후 최적의 치료 전략을 결정하고 있다.
Q.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기준이 무엇이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그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현재 고위험군의 기준이 명확히 확립돼 있지 않다. 고위험 인자 중 하나만 있어도 고위험군으로 분류한다고 가정한다면 전체 환자의 절반 가까이가 해당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인자를 동시에 가진 경우로 기준을 설정하면 약 20~30% 수준으로 추정된다.
병용요법은 고위험군 환자에서 단독요법 대비 약 20~30% 더 높은 치료 효과를 보인다는 분석이 다수 보고되고 있다. 향후 고위험군 분류 기준이 구체화되면 병용요법의 적용 범위와 임상적 이득도 보다 명확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렉라자, 한국 환자에게 잘 듣는 약
Q. 한국 환자에서 렉라자 단독요법이 갖는 임상적 강점이나 차별점도 설명해달라.
렉라자는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으로, 임상 연구 과정에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환자가 다수 참여했다. 또한 아시아인만을 대상으로 한 세부 분석 결과도 많이 축적돼 있다. 다른 약제에 비해 한국 환자에게 '잘 듣는 약'이라는 근거가 상대적으로 더 풍부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Q. 앞으로 EGFR 변이 폐암의 정밀 치료 발전을 위해 렉라자 단독요법이 어떤 방향으로 활용되고 연구가 확장돼야 한다고 보는가.
최근에는 표적치료제 복용하던 중 병이 서서히 진행될 때, 내성이 생긴 부위만 국소 치료를 시행하고 약제는 그대로 유지하는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어 뇌전이가 발생했을 때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거나, 폐 병변 중 일부만 커질 경우 수술로 제거한 뒤 약제를 지속하는 방식이다.
렉라자를 단독으로 사용할 때 이러한 국소 치료를 더하면 약제 사용 기간을 얼마나 연장할 수 있는지, 다른 치료로 전환하지 않고도 환자의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최근에는 표적치료제의 사용 단계가 1~3기 조기 폐암이나 수술이 가능한 병기로 확장되는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렉라자를 수술 전후 또는 항암·방사선 동시 치료 전후에 사용하는 임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향후 이러한 연구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다면, 향후 치료 적용 범위가 더욱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Q. 11월은 '폐암 인식의 달'이다. 폐암 조기 검진의 중요성이 필요한 이유는.
폐암은 초기 자각 증상이 거의 없어 조기 발견이 어렵고, 병이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조기 진단이 쉽지 않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저선량 CT를 통한 조기 검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현재 국가 폐암 검진은 일정 연령 이상의 고위험 흡연자를 기준으로 보험이 적용되고 있으나, 이는 비용효과성을 고려해 마련된 행정적 기준일 뿐이다. 발암물질 또는 석면 노출, 가족력, 장기간 지속되는 비특이적 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흡연력이 없어도 저선량 CT 검사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단순 흉부 X-ray만으로는 초기 병변을 발견하는 데 한계가 있다.
Q. 마지막으로 폐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폐암 치료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환자들이 미리 공부를 해 와도 유전자 검사 결과나 다양한 치료 옵션을 한꺼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초진 외래에서 짧은 시간 안에 치료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꼭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둘러 선택하면, 치료가 잘되더라도 '그때 제대로 판단한 것이 맞았을까' 하는 마음이 남을 수 있다. 외래에서 제공된 정보가 어렵거나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조금 더 알아보고 다시 오겠다'라고 편하게 이야기해도 된다. 의료진 역시 환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