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정 갈등의 후폭풍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정부가 지역·필수·공공의료, 이른바 '지·필·공'을 축으로 한 5년 로드맵을 꺼내들었다.
필수의료 붕괴를 지역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위기이자 의료체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바라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지난 22일 대한의학회 '필수의료 회복을 위한 정책 포럼'에서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총괄과 강준 과장은 "의정 갈등을 초래한 데에 일정 부분 정부 책임이 있다는 점을 무겁게 인식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제시한 방향은 지역 필수의료 생태계를 다시 세우기 위한 재정 투입, 전달체계 개편, 보상 구조 재설계로 요약된다.
강 과장은 "과거에는 필수의료 공백을 일부 지역 문제로 봤지만, 지금은 대도시·서울도 예외가 아닐 만큼 전국적 현상"이라며 "이제는 필수의료 위기를 넘어 지역 필수의료가 사막화 수준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표현한 '사막화' 상태를 되돌리는 첫 번째 수단은 보상 체계를 전면적으로 손보는 일이다. 단순히 행위별 수가 수준을 올리는 문제를 넘어, 지불제도 전체를 다시 설계하겠다는 것이다. 고위험 분만, 소아 중증, 지역 응급 등 필수영역에 의료진이 몰릴 유인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핵심 질문으로 제기됐다.
강 과장은 "행위별 수가 조정에 그치지 않고, 보상 구조와 지불 방식을 근본적으로 고민하겠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축은 건강보험이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에 대한 직접 재정 투입이다. 대기비용과 상시 인력 유지비, 병원 시설 운영비처럼 간접적인 '수가에 녹여 넣기' 방식으로는 정확한 지원이 어려운 부분을 별도 재정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검토되던 지역필수의료기금은 재량과 확장성 한계로 인해,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로 방향을 튼 상태다.
강 과장은 "처음에는 지역필수의료기금을 검토했지만 재정 확장성에 한계가 있어 특별회계 도입으로 방향을 바꿨다"며 "1조원대 초반 규모로 시작하되, 사업 성과와 국민 지지가 확인되면 크게 늘릴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특별회계를 채우는 내용 역시 '전국 일률'이 아니라 '정밀 타격'에 가깝다. 정부는 분만·응급·소아·내과 수술 등 이미 공백이 발생했거나 기능 제한이 뚜렷한 분야를 우선 지원 대상으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2027년 제도 시행에 앞서, 2026년에 어떤 사업과 수단을 담을지에 대한 '아이템 발굴'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강 과장은 "분만과 소아청소년과 세부전문의 같은 영역은 이미 공백과 기능 제한이 분명히 드러난 분야"라며 "이런 영역을 중심으로 재정을 정밀 타격하는 형태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달체계 재편의 축은 '지역 거점'과 '지역 종합병원'이다. 국립대병원을 중심 거점으로 세우되, 국립대만으로는 지역 필수의료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전제로 한다. 사립대병원·민간 의료기관과의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방의료원에는 민간이 들어가기 어려운 틈새 영역을 맡기는 구조를 구상 중이다.
강 과장은 "국립대병원을 지역 거점으로 삼는 것은 맞지만, 국립대만으로는 중증·응급 환자를 모두 커버할 수 없다"며 "사립대병원과 민간의료기관이 참여하는 중증 진료체계를 만들고, 지방의료원은 민간이 공급하기 어려운 영역을 채우는 보완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그리는 최종 그림은 전국 70개 중진료권 각 권역마다 24시간 응급 대응과 기본 필수의료가 가능하고, 약 350개 지역 종합병원이 '대부분의 수술·시술'을 수행하는 구조다.
동시에 정부는 전국 일률 수가 체계가 지역 병원의 생존을 오히려 갉아먹는 구조라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손보겠다고 예고했다.
강 과장은 "같은 진료량 안에서 전국 일률의 보상체계로는 지역 병원이 생존하기 어렵고, 오히려 대형병원 보상만 늘어나는 역효과가 있었다"며 "진료권 분석과 지역 현황을 바탕으로 취약 지역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지역 수가를 차등 적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제도 개편 논의는 새로 출범할 '의료혁신위원회'와 지·필·공 5개년 로드맵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기존 '의료개혁특위'라는 이름에서 '의료혁신위'로 간판을 바꾸고, 약 30명 규모 위원회에 수요자·의료계·전문가·시민대표를 함께 참여시켜 중장기 과제를 논의하겠다고 했다. 위원회는 이르면 12월 초 출범이 목표다.
강 과장은 "의료개혁이라는 표현은 마치 개혁의 대상이 따로 있는 듯한 뉘앙스를 줄 수 있어, 시스템을 혁신하는 방향이라는 뜻을 담아 '의료혁신위'로 바꾸고 운영 방식도 다르게 가져가려 한다"며 "수요자와 의료계,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정하고, 공론화와 투명한 논의를 거쳐 로드맵을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가 내놓은 키워드는 '지역'이다. 필수 진료과 인력 확보가 서울 대형병원에서도 어려운 상황에서, 지역 병원은 고사 수준을 넘어 '궤멸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위기 인식이 전면에 놓였다. 정부는 앞으로 10년간 발생할 인력 공백을 메우는 문제를 의료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강 과장은 "지역 의료 생태계의 문제는 우리 의료체계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응축해서 보여주는 사례"라며 "앞으로 10년간의 인력 공백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가 가장 큰 질문이며, 학회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 사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