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필수의료 위기는 더 이상 특정 진료과의 문제가 아니다.
22일 열린 대한의학회 '필수의료 회복을 위한 정책포럼'에서 5개 학회 수련이사들은 현재 의료현장을 "전공의 부족의 시대를 넘어, 전문의가 동시에 사라지는 단절의 연쇄"라고 규정했다.
전공의가 줄면 시간이 지나 전문의 부족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면, 지금의 붕괴는 그보다 빠르고 구조적이다.
가르칠 사람이 부족해 수련의 질이 약화되고, 이어받을 전문의는 다시 그 자리를 떠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필수의료는 이제 '충원 실패'가 아니라 '계승 불가 체계'라는 진단이 제기됐다.
내과 - '유지'가 아니라 '붕괴를 늦추는 단계'
내과는 외형상 전공의 충원이 유지되는 진료과로 보이지만, 내부 구조는 이미 한계선에 도달했다. 전공의 충원율은 지역 간 격차가 심각했고, 특히 1년차 복귀율은 수도권 73%, 비수도권 40%로 나타났다. 이러한 불균형은 수련 공백으로 이어졌고, 전공의가 남아 있는 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의 진료 체계는 점차 분리되고 있다.
분과전임의 감소는 더 뚜렷하다. 소화기내과·순환기내과·호흡기내과·혈액종양내과 등 중증 필수 질환을 담당하는 핵심 분과일수록 지원 하락이 심했고, 최근 2~3년간 전임의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이 흐름은 대학병원 진료 역량의 축소로 이어지며, 필수 분과 인력 공백은 이미 본격화 단계에 접어든 상태다.
대한내과학회 김대중 전 수련이사는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인력난이 아니라, 수련 체계와 전문의 구조가 동시에 흔들리는 현상으로 진단했다.
김 전 수련이사는 "전공의법 강화 이후 전공의는 의사가 아니라 학생이다. 환자 안전과 수련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 모든 병동에 입원전담전문의를 배치하고, 전문의 1명과 전공의 1~2명이 협력하는 체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의료 격차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김 전 수련이사는 "전공의들이 교수를 희망하지 않는 이유는 삶의 질 저하 때문이다. 의료사고 및 소송 위험을 해결하고, 비수도권은 필수의료과 인건비 지원과 지역의료 특별기금 등으로 수도권 교수의 두세 배 이상 받을 수 있도록 경제적 유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과 - 응급과 수술을 지탱해온 과, 이제 한계선
외과는 필수의료 중에서도 가장 뿌리 깊은 인력 위기에 직면한 진료과다. 전공의 지원 감소는 수년 전부터 이어져 왔으며, 의정 갈등 이후 그 속도는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전공의 충원율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가 크게 벌어졌고, 일부 지방 수련병원에서는 전공의 자체가 없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지도전문의·전담전문의·전공의로 이어지는 수련 기반이 연속적으로 무너지면서 응급수술과 중증진료 체계는 이미 일상적인 지연·축소 국면에 들어섰다.
인력 구성의 불균형도 두드러진다. 수도권 대형병원은 교수 인력과 분과 역량이 상대적으로 집중된 반면, 비수도권 병원은 외과 전문의 수뿐 아니라 연차별 구성에서도 심각한 공백을 보였다. 전임의가 존재하지 않는 외과 수련병원도 절반 가까이 확인됐으며, 취약분야인 소아외과·혈관외과·장기이식 분야는 치료가 가능한 병원의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이러한 인력 쏠림은 응급·외상환자의 수도권 집중을 부추기고, 지역 의료체계의 붕괴를 재촉하고 있다.
대한외과학회 최동호 수련이사는 외과 인력 구조가 지금처럼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외과는 응급수술과 암치료 등 국가 의료안보의 중심 분야다. 그런데 인력은 부족하고 수련 기반은 흔들리고 있다. 전공의들이 이탈하고 전문의가 줄어드니 수술이 연기되고, 결국 현장의 신뢰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필수의료를 떠받치는 지원 체계가 현장에서 체감될 만큼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 수련이사는 "수가 체계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응급·중증 진료, 수술 난이도와 시간을 반영한 제대로 된 보상이 있어야 외과가 유지된다. 지방 격차도 심각하다. 지역 가산과 인센티브, 교육 인력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아청소년과 - '기피과'가 아니라 '미래가 끊긴 과'
소아청소년과는 이미 전공의 지원 붕괴를 넘어, 미래 세대 전문의 자체가 사라지는 위기 단계에 들어섰다. 2015년까지 100%, 2016년 123.9%, 2017년 116.5%, 2018년 101.0%의 전공의 지원율을 기록하던 과였지만, 지난해 의정갈등 후 올해 지원율은 2.4%로 추락했다. 올해 10월을 기준으로 전체 전공의는 141명이며, 이조차도 서울 70.9%, 경기·인천 2.8%로 약 73.7%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전임의 구조도 심하게 쏠려 있다. 신생아와 소아내분비 전임의가 전체 전임의의 절반을 차지했고, 전임의 92.8%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소아청소년과에서 중증 치료의 핵심 역할을 맡는 혈액종양·심장·감염·중환자 영역은 이미 심각한 충격을 받고 있으며, 향후 대체 인력이 없는 분과가 사라지는 시나리오가 가시화되고 있다.
진료 수요가 감소했음에도, 진료의 난도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 6년 전과 비교해 외래·일반 진료량은 줄었으나 신생아 중환자실 비중은 증가했고, 많은 병원에서 지도전문의 1~2명이 고위험 환자와 수련을 동시에 떠받치는 구조가 굳어졌다. 비수도권 병원들의 스텝 당직 횟수는 수도권 대비 몇 배에 달했고, 대부분의 병원에서 전담전문의·전담간호사 체계가 필수 인프라처럼 자리잡았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윤신원 수련이사는 현재 상황을 "소멸 구조"로 정의했다.
그는 "현재 남아 있는 전공의는 정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마저도 대부분 수도권에 있으며 지방은 지도할 전문의도, 이어받을 전공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래 구조 단절에 대해 경고했다.
윤 수련이사는 "혈액·종양·심장 같은 필수 분과는 앞으로 5~10년 안에 전문의가 없어질 수 있다. 지금 있는 세대가 은퇴하면 그 다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해결책으로 전공의 유입·전담전문의 활성화·분과전문의 양성 정책의 동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수련이사는 "전공의를 확보하려면 파격적인 수가 개선과 중증진료 보상, 의료소송 위험 완화가 필요하다. 전담전문의를 단순 대체 인력이 아니라 미래 분과전문의로 성장시키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의학과 - 환자는 몰리는데, 의사는 떠난다
응급의학과는 필수성과 전문성은 높게 평가받지만, 근무환경·보상·발전 가능성 측면에서는 가장 낮은 평가를 받는 진료과 중 하나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중증 응급환자 진료를 유지했지만, 의정 갈등 이후 전공의·전임의·전문의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수련 기반과 중증 응급진료 체계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특히 전공의 복귀율은 절반 수준에 그쳤고, 신규 지원율 역시 비수도권에서 급격히 감소했다. 응급실은 24시간 365일 운영돼야 하는 구조적 특성 때문에 전공의 및 전문의의 공백은 즉시 진료 공백으로 이어진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중 상당수는 상급종합병원·권역응급의료센터가 아닌 민간병원·비수련병원으로 이동했고, 일부는 아예 진료를 중단했다.
수련·근무 구조도 악화됐다. 야간·주말·연휴 근무가 당연시되는 구조에도 불구하고 야간·휴일 노동에 대한 보상은 법정 기준에 못 미치고, 응급실 수술·중환자 진료 과정에서는 진단보다 치료가 우선되는 전문적 특성 때문에 의사들이 감당해야 하는 법적·심리적 부담은 매우 높아졌다.
대한응급의학회 김수진 수련이사는 이러한 상황을 "버틸수록 손해가 되는 구조"라고 표현했다.
그는 "응급의학과는 24시간 환자를 받아야 하는 구조인데, 법적 책임은 환자를 본 순간부터 전원 결정까지 모두 전문의가 떠안아야 한다.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도 소송 위험 때문이다. 환자를 보지 않은 순간까지도 법적 책임이 전가되는 구조에서는 버티고 싶어도 버틸 수 없다"고 부연했다.
또 그는 단순한 전공의 충원이나 수련환경 개선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응급의료 정책이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김 수련이사는 "응급의학과는 단순히 '24시간 열어두라'고 명령한다고 유지되는 진료과가 아니다. 야간근무, 경증환자, 중증환자, 전원체계, 수가, 법제도, 인력 구조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사법 리스크 완화, 중증응급환자 진료 인력에 대한 보상, 전공의·전임의 수련 지원 없이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지금은 인력을 늘릴 때가 아니라, 남아 있는 인력을 지켜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산부인과 - 분만 인프라와 교육체계 동시에 붕괴
산부인과는 이미 분만 인프라 붕괴가 수련체계 붕괴로 이어진 대표적 필수의료 분야다. 2010년 106개였던 산부인과 수련병원은 2020년 88개로 줄었고, 전체 수련 기반은 10년 사이 18% 이상 축소됐다. 이러한 의료기관 감소는 단순한 공급 축소가 아니라, 분만을 담당하는 전문의 교육 체계 자체가 함께 무너지고 있다는 구조적 신호다.
올해 기준 산부인과 전공의는 총 345명이며, 이 중 264명(76.5%)이 서울·경기 지역에 몰려 있다. 지역 불균형은 전임의 단계에서 더욱 심화된다. 산과 전임 교수는 전국 총 129명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일부 권역에서는 전임 교수가 단 한 명도 없는 의대까지 있다.
아울러 69개 산부인과 수련병원 중 63%는 산과 교수가 1~2명뿐인 구조였으며, 4명 이상 확보된 병원은 14%에 그쳤다. 지도전문의가 최소치로 유지되는 기관에서 고위험 임산부 치료, 전공의 교육, 전임의 양성까지 동시에 떠맡는 체계는 이미 지속 가능성을 상실한 상태에 가깝다.
후속 전문 인력 확보 전망도 어둡다. 산과 전임의 배출 숫자는 2021년 45명에서 지난해 12명으로 급감했으며, 이는 상급종합병원조차 향후 분만 기능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한산부인과학회 홍순철 수련이사는 현재 구조를 '붕괴의 전조'라고 짚었다.
그는 "69개 수련병원 중 산과 교수가 1~2명인 병원이 절반을 넘는다. 향후 5~10년 내 많은 대학병원 산과 교수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공의 기피 원인도 명확히 제시했다.
홍 수련이사는 "산부인과가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임신·출산 관련 저수가와 의료사고 부담이다. 분만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모성 사망, 뇌성마비에 대한 공적보상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해결책에 대해 "100~300병상 종합병원에서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를 필수과로 지정하고, 분만실을 운영하는 기관에는 분만취약지 지원 기준에 준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수가 개선과 수련 보상 확대 없이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거듭 환기했다.
홍 수련이사는 "산부인과 수가를 대폭 개선하고, 의료소송 국가 책임제와 산과 교수 인력 충원·근무 환경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