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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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1년 반 넘게 이어진 의정 갈등 이후 사직했던 전공의들이 지난 9월부터 복귀했지만, 수련기관은 여전히 정상화와 거리가 멀다. 일부는 기존 병원으로 복귀했지만 상당수는 수련환경, 교육 여건, 업무 강도 등을 고려해 병원을 이동했다.

복귀 흐름이 있었다고 해서 상황이 회복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복귀 이후부터 전공의 배치가 특정 권역으로 더 쏠리는 흐름이 선명해졌다. 지역 수련병원은 여전히 빈 자리를 메우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는 이번 현상을 단순한 '충원율 변동'으로 보지 않는다. 전공의 수급은 한 해 인력 충원의 문제가 아니라, 전문의 배출 구조, 필수과 유지, 지역 의료 접근성, 환자 안전과 맞물린 의료체계 전반의 변동 요소다. 의료현장에서는 지금의 흐름이 필수의료 기반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대한의학회 산하 필수의료 정책위원회가 공개한 자료는 이러한 우려를 수치로 보여준다. 내과는 올해 하반기 1752명 정원 중 1137명이 선발돼 충원율은 64.9%였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은 75.8%, 비수도권은 48.5%였다.

또한 9월 기준 수련 중인 1·2·3년차 전공의를 합산하면 충원율은 74%였으나, 연차별·지역별로 나누면 차이는 더 선명하다. 1년차는 수도권 73% / 비수도권 40%, 2년차는 수도권 90% / 비수도권 63%, 3년차는 수도권 80% / 비수도권 59%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특히 내과 1년차 기준 정원의 70% 이상 충원이 이뤄진 병원은 수도권 23곳, 비수도권 4곳뿐이었다. 반대로 충원율이 30% 이하인 병원은 수도권 6곳, 비수도권 16곳에 달했다. 수치는 이미 '선택받는 병원'과 '비어가는 병원'의 분기점이 만들어졌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대한내과학회 김대중 전 수련이사는 이를 필수의료 기반이 흔들리는 중대한 신호라고 진단했다.

김 전 수련이사는 "지역 간 격차가 너무 크다. 비수도권 16개 대학병원은 전공의 모집에서 이미 심각한 사태를 맞았다. 전공의가 이렇게 확보되지 않으면 내년 모집에도 그 여파가 그대로 이어질 것이다. 그 어려운 환자들을 누가 감당하겠나. 지금 상황이라면 다른 진료과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공의 수급난이 수련 구조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봤다.

김 전 수련이사는 "전공의도 전문의도 지역별 차이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수련의 질이 담보될 수 있는지는 큰 문제다. 충원이 비고 채워지는 과정을 반복하는 구조에서 안정적인 수련 시스템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외과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과는 응급·외상·암 수술 비중이 높고 진료 강도가 크며, 의료소송 위험과 장시간 노동이 상존하는 분야다.

올해 하반기 외과 전공의 복귀율은 36.8%에 그쳤다. 외과학계는 단순한 기피 현상을 넘어, 해당 전문 영역의 지속 가능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올해 9월 기준 69개 외과 수련병원 중 전공의를 보유한 기관은 49곳뿐이었고, 외과 전공의의 75% 이상이 서울·경기·인천에 집중됐다. 충북과 제주에는 전공의가 없었으며 강원 지역은 6명에 그쳤다.

대한외과학회 최동호 수련이사는 "외과는 응급·외상·암 등 생명 유지의 핵심 분야지만 전공의 기피가 심해졌다"며 "충원율은 의정 갈등 이후 더 악화됐다. 내년에는 외과 전공의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충북과 제주는 인구 규모가 적지 않은 지역임에도 전공의가 없다.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산부인과도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올해 하반기 복귀율은 48.2%, 11월을 기준으로 하반기 추가모집까지 포함해 재직 전공의는 총 345명으로 정원 대비 확보율 41%다. 전공의의 76.5%가 서울·경기에 집중된 점은 내과·외과와 동일한 양상이었다.

소아청소년과는 여러 과 가운데 극단적인 수치를 보였다. 올해 하반기 복귀율은 13.4%였으며, 10월 기준 전체 전공의는 141명에 불과했다. 이 중 서울에 100명(70.9%)이 몰려 있었고, 충북·전북·제주·충남·강원은 각각 2명뿐이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윤신원 수련이사는 "전공의 지원 급감과 필수과 기피로 전문 인력 수급에 중대한 차질이 예상된다"며 "지역불균형뿐 아니라 분과 간 불균형으로 중증·고난도 소아진료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 부족과 지역 격차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의료계 내부에서는 단기 충원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론도 나온다. 현장에서는 전공의를 확보하는 것뿐 아니라, '수련과 현장에 머무르게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

윤 수련이사는 "전공의 확보를 위해 파격적 수가 개선, 중증진료 보상, 의료소송 부담 완화 등 다각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동호 수련이사 역시 "지금 필요한 건 지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전공의가 수련을 계속할 수 있도록 남게 만드는 구조"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데이터가 계속 쌓이고 있는 가운데 필수의료의 안전망을 유지하려면 학회도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의견을 내고 정책에 반영되도록 움직일 때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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