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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안에서 삭감 기준이 만들어지고, 수가가 낮아 최신 치료와 재료가 도입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의료의 전문성과 환자 안전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젊은 전공의들은 '이상적인 의료계'의 핵심을 '소신 있는 진료 환경'으로 제시하며, 의학적 근거와 양심이 존중받는 시스템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한전공의협의회 한성존 회장은 최근 대한의학회 E-NEWSLETTER 기고에서 "대한민국의 의료를 넘어 전 세계 의학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큰 포부를 가진 젊은 전공의로서, 우리가 이 시점에 가장 강력히 호소하는 것은 '소신 있는 진료 환경'의 확보"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의 본질이 '예산의 논리'가 아니라 '과학의 원리'에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현재의 의료체계가 진료보다 비용 관리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을 짚으며, 근거중심의학이 제도의 출발점이 아닌 뒷순위로 밀려났다고 꼬집었다.
한 회장은 "우리 의사들은 현재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진료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지급받고 있다. 보험은 필연적으로 지급 기준에 따른 심사를 요구하며,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진료 행위에 대해서는 삭감이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삭감 자체가 아닌, 그 기준의 설정 원칙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 뿌리가 '제도의 순서가 뒤바뀐 구조'에 있다고 분석했다. 의료의 기준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먼저 세워지고, 그 위에 재정계획이 설계돼야 하지만, 지금의 제도는 예산이 먼저 정해지고 그에 맞춰 진료기준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한 회장은 "근거중심의학(EBM)에 기반한 명확한 진료 기준을 선행해 수립하고 그에 맞춘 재정 계획을 세우는 순서 대신, 정해진 재정 틀 안에서 기준과 삭감을 도출하는 역전된 구조로 인해 정작 환자들에게 최적의 치료가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낮은 수가로 인한 구조적 부작용이 환자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기술의 발전이 아무리 빨라도, 제도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환자들은 최신 치료의 기회를 잃게 된다. 한 예로 심장 혈관 스텐트 등 첨단 의료 분야에서는 선진국에서 임상 표준으로 자리 잡은 재료가 국내에서는 수가 문제로 적용되지 못하고, 일부 국가에서 사용을 중단한 재료가 대신 활용되고 있다.
한 회장은 "대한민국의 세계 최저 수준인 의료 수가는 국제 의료 기기 공급망에서 우선순위가 밀린 재료들이 국내 시장으로 유입되게 하는 구조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환자의 안전과 최적의 치료 선택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이상적인 의료의 핵심은 결국 '진료의 자유와 양심'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젊은 의사들이 말하는 이상은 거창한 제도 개혁이 아니라, 의사로서의 전문성과 과학적 판단이 존중받는 구조였다.
한 회장은 "의사는 대학에서 배운 과학적 근거를 환자를 위해 최선의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료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며 "그러한 소신 진료가 가능할 때 환자에게 최고 수준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젊은 세대가 스스로의 현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이유가 대한민국 의료의 구조적 한계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 회장은 "'이상적인 의료계'라는 비전이 현 상황에서 이러한 주장들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치부될까 하는 우려가 먼저 앞섰던 것도 사실"이라며 "동시에 대한민국 의료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왜 이러한 자조적인 고민이 젊은 세대에게 먼저 드는지에 대해 그 일원으로서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의료'라는 평가의 그늘에 젊은 의사들의 희생이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한 회장은 "세간에서는 대한민국 의료가 '세계적'이고 '이상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며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의료'라는 평가에 이견은 없지만, 정말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시스템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완성된 이상향이라면, 젊은 의사들이 왜 변화를 요구하며 더 나은 제도를 고민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지금의 의료 시스템이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기적을 달성했지만, 그 효율성의 이면에 젊은 의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자리하고 있다. 이 시스템이 지속 불가능한 한계점에 다다랐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회장은 이상적인 의료계의 기준을 명확히 정의했다. 단순히 의사의 권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미래에도 최신 의학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그는 "이상적인 의료계는 재정적 논리가 아닌 의학적 전문성이 우선시되는 사회"라며 "의료인의 양심과 과학적 판단이 존중받고, 그 판단에 필요한 적절한 보상과 지원이 뒤따르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이는 단순히 의사 개인의 복지를 넘어, 국민들이 미래에도 최신 의학의 혜택을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미래 투자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현 의료시스템의 근본적 개혁 없이는 젊은 의사들이 좌절하고 의료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한 회장은 "현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다음 세대의 의료를 책임질 젊은 의사들이 좌절하고 이탈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선배 의사들의 지혜와 경험을 존중하며,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지키는 지속 가능한 의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상을 낮추지 말고 현실을 끌어올릴 때라고 주장했다.
한 회장은 "이제는 미래를 위해 구조를 바꿀 때다. 현실 수준에 이상을 낮추기보다는, 이상을 현실에 적용하고 현실을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모멘텀이 필요하다"며 "젊은 의사들의 소신 있는 진료가 존중받는 이상적인 대한민국 의료를 위해 모두의 관심과 연대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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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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