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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근무와 복지 문제를 이유로 개선을 요구해온 전공의들의 복귀는 단순한 업무 정상화를 넘어, 수련 체계 전반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대한비뇨의학회를 비롯한 전문학회들은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일부개정안'의 취지에 전폭적인 공감을 나타냈다.
이 법안은 전공의의 근무시간을 주 60시간, 연속근무를 24시간으로 제한하고, 모성권 보장과 휴게시간 강화를 포함하고 있다.
학회들은 전공의가 안전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수련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이 의료의 지속가능성과 국민 건강권 확보의 전제라고 평가했다.
다만 근무시간 상한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전문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임상 경험과 술기 훈련이 필요하며, 이는 환자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학회들은 근무시간 단축의 취지를 존중하되, 필수 역량을 확보할 수 있는 유연한 제도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논의는 복귀 전공의들의 전문의시험 조기 응시 문제를 계기로 한층 구체화됐다.
통상 전문의 시험은 인턴 1년과 레지던트 3~4년의 수련 과정을 모두 마친 뒤에야 응시할 수 있다.
현행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수련을 받지 못한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하면 수련 기간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돼 이듬해 초 시험 응시가 제한된다.
이에 따라 지난 9월에 복귀한 전공의들은 약 1년 6개월의 공백으로 인해 2026년 초 시험에 응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은 원칙적으로는 2026년 8월까지 수련을 마쳐야 하며, 그 이후에 치러지는 다음 회차 시험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전공의 개인의 경력과 병원 인력 운용의 차질을 고려해 최근 '선 시험·후 수련'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이 방안은 내년 2월 전문의시험 응시 기회를 부여하되, 남은 6개월의 수련 과정에서 평가 기준에 미달할 경우 합격을 취소하는 방식이다.
대한비뇨의학회 박현준 수련이사는 "내년 9월에야 수련이 끝나는 전공의가 2월에 시험을 치르고 자격을 얻은 뒤 남은 수련을 이어가는 건 무리"라며 "수련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을 보는 것은 학회의 기준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학회 관계자들은 전문의시험을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수련 과정의 완결성을 검증하는 절차'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이 전공의에게도 근로기준법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장시간 근무를 전제로 한 수련 관행은 더이상 용납되기 어렵게 됐다. 이제는 근무시간 단축을 넘어, 제한된 시간 안에서 얼마나 깊이 있는 교육을 실현하느냐가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학회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진료지원인력(PA)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전공의가 본연의 수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전공의의 업무 효율화가 곧 수련의 질을 높이는 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A대학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검사 결과 확인이나 행정 처리 같은 비의료적 업무는 PA가 맡고, 전공의는 술기와 임상 판단에 전념해야 한다"며 "의료현장은 효율적 인력 구조로 전환돼야 지속가능하다. 이제는 '누가 일하느냐'보다 '어떻게 역할을 나누느냐'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박현준 수련이사는 "과거에는 전공의가 수련과 무관한 일까지 맡았다. 의국 청소, 필름 정리, 수술 준비물 챙기기 같은 일들이 그랬다"며 "정해진 시간 안에서 수련을 내실화하려면 이런 비본질적 업무를 줄이고, 의사가 아닌 인력이 보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전문간호사가 수술 중 전공의 교육과 직접 관련 없는 부분을 맡으면, 전공의는 수술 술기와 판단력 향상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학회 차원의 교육혁신 논의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한 강의형 수련을 넘어, 실기 중심 교육과 직접 참여형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박 수련이사는 "각 학회가 초음파 같은 술기 교육을 강화하고, 해외 석학을 초청해 최신 임상 지식을 전공의에게 직접 전달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며 "전문의시험에도 실기평가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근무시간이 줄더라도 수련의 밀도는 높아져야 한다. 전공의는 교육자이자 피교육자이며 동시에 근로자라는 이중적 위치에 있다. 이 현실을 반영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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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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