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서민지 기자] 기획재정부가 내년 6월까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 업무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이관하는 기능 조정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에 건보공단과 심평원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최근 기재부에서 검토하고 있는 진료비 부당 청구 방지를 위한 '건강보험 심사 체계' 심층평가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기관의 진료비 청구 접수와 심사, 사후관리까지 건보공단에서 수행하도록 하는 개선방안이 담겨 있다.

보고서에는 건강보험 자격부터 진료비 청구, 심사, 지급 등의 모든 과정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공단에서 청구와 접수, 가입자 자격 등을 심사하는 개선안이 제시됐다.

건보공단에서 가입자 여부 등을 확인한 다음 심평원에서 전문적인 내용을 심사하고, 다시 공단이 진료비를 지급, 사후관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는 심평원이 진료비 청구서를 요양기관으로부터 받아 심사하고, 급여비 지급을 건보공단에 통보하면, 공단이 요양기관에 급여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현행 건보법상 심평원이 통보를 한 후 공단은 즉시 급여비를 지급해야 한다. 즉 심평원의 심사가 불확실하거나 부당청구가 의심되더라도 공단은 지급을 거절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보고서에는 "심평원은 가입자의 정보(DB)가 없어 외국인 진료나 증 도용 등에도 속수무책이며, 심사 인력이 부족해 의료기관들의 진료비 허위, 과다청구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심사-지급의 분리 체계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요양기관에 지급되는 급여비는 국민의 건강보험료에서 나오기 때문에 가입자 집단인 건보공단에서 진료비 청구를 직접 감시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내용도 있다.

기재부 "아직 발표 시기상조"라지만, 중복 업무·방만 공공기관 '칼질에 방점'

이에 대해 기재부 측에서는 "건강보험 진료비 심사체계 개편과 관련된 기능조정 방안, 데이터 베이스 통합 등은 아직 검토 중인 사안"이라며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내년 6월까지 논의가 이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재부가 이번 연구를 통해 제시된 방향으로 따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 기재부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건보공단과 심평원 뿐 아니라 공공기관에 대해 대대적인 기능 점검을 이행하고 있는데, 이를 시행하는 이유는 공공기관들의 관료제 습성을 철폐하기 위함이기 때문.

조세재정연구원은 공공기관 기능점검 브리프를 통해 "공공기관은 시장실패의 보완이나 정부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설립됐으나, 설립 후 여느 관료제 조직처럼 자기증식을 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능점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 처음 심평원이 생겨날 당시 목표는 '진료비의 객관적 심사'를 위함이었다. 제3자가 철저하게 진료비를 심사해 부당청구를 억제할 목적으로 마련된 것.

하지만 심평원은 약제 유통관리, 적정성 평가, 의료자원 관리, 의료 질 평가, 빅데이터 분석, 건강보험 수출, 해외 교류, 치료재료 관리 현지조사 지원, 자동차보험 위탁 심사 등 역할의 범위와 기능, 업무량이 대폭 늘어났다.

연구원 측은 "관료제 기관은 공통적으로 업무량, 기능, 역할의 범위와 무관하게 조직과 인력을 늘리려는 습성이 강하다"며 "지속적인 확장의 결과로 다른 기관과의 유사 기능을 갖출 여지가 있어 주기적 또는 상시적 점검이 요구된다"면서 기능조정을 강행하려는 의지가 큰 상태다.

심평원 부정..공단은 2014년 자체 계획대로 '착착'

이 같은 기능조정 방안이 대략적으로나마 공개되자, 공단과 심평원의 희비가 갈리고 있다.

심평원 관계자는 메디파나뉴스와의 통화에서 "기재부의 의견이 아니라, 기재부가 건보공단에 용역을 준 연구 결과로 알고 있다"면서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바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기능조정 자체를 부정하고 나섰다.

공식 해명자료에서도 "건강보험 진료비 심사 체계 개편과 관련된 기능조정 방안, 데이터베이스 통합 등은 아직 연구용역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확정되지 않았다"며 아직 결정되지 않은 사안임을 거듭 강조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심평원이 설립된 제1의 목적은 '심사' 때문이며, 이는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그런데 다시 해당 업무를 건보공단으로 통합, 이관하는 것은 목적과 취지를 잊는 것"이라며 난감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건보공단 관계자는 "이미 수년전부터 공단 내부에서 재정 누수 방지를 위해 이 같은 내용을 주장해왔다"면서 "기재부에서 심사 통합을 지시하면 바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아직까지 이에 대한 기재부의 지시는 없었으나, 내년 쯤 이에 대한 확정 발표가 이뤄질 것"이라며 "발표가 나는대로 그간 검토해왔던대로 시스템을 개편하면, 내후년부터는 공단에서 정상적인 심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건보공단은 지난 2014년 '진료비 청구·지급체계의 법률적 문제점 및 해결방안'을 주제로 지속적으로 심평원의 청구권 이양<표>을 주장해왔고, 이와 관련한 전문가 토론회, 간담회를 여는 것은 물론, 이에 대한 보고서를 책자로도 만들어 배포했다.

공단은 대다수 해외사례를 근거로 이미 건강보험에서 진료비의 청구, 지급이 일원화돼 있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리나라는 진료비 청구, 지급 등 관리체계 현황이 이원화돼 종별 가산율, 입원료 체감, 급여범위 등이 상이해 다양한 문제를 낳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이원화된 진료비 관리체계로 인해 △보험자는 지출관리의 비효율성, 부당수급 및 부당청구로 인한 재정누수, 관리운영의 비효율성이 발생할 뿐 아니라 △요양기관에는 진료비 청구업무 가중, 심사 불확실성 등 불편을 주고, △환자에게는 급여보장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즉 현재 진료비 관리체계로 국가 전체적으로 효율성, 형평성이 저해된다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공단과 심평원을 통합해 청구·지급을 통합하거나 △요양기관에서 공단과 심평원에 진료비를 동시 청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뿐만 아니라 최근 당선된 건보공단 통합노조의 공약에서도 이 부분이 두드러졌다.

기호1번 황병래(위원장)·황계성(수석부위원장) 후보 측은 "건강보험 청구·심사·지급시스템 개편을 통해 사전적 재정 누수를 방지하겠다"면서, 이 같은 공약은 2017년도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 및 시민사회노동단체들과의 연대로 시행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는 기재부가 내년 상반기까지는 확정적인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며, 이에 따라 건보공단과 심평원을 비롯한 기능이 비슷하거나 역할이 중복되는 공공기관들이 대거 개편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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