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기온이 오르자 '살 빼는 주사' 마케팅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기자는 한 산부인과로부터 '위고비 다이어트 주사제', '강력한 체중 감소 효과 입증', '체중 관리를 돕는 비만치료제'라는 문구가 포함된 홍보 문자를 받았다. 해당 문자는 내원 상담을 유도하며, 치료제보다는 마치 감량 프로그램처럼 안내돼 있었다.
단순한 의학 정보 전달을 넘어, 비만 치료제가 미용 목적의 '감량 주사'처럼 소비되는 현상은 유튜브와 SNS에서도 손쉽게 확인된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러한 흐름이 "비만을 질병으로 다뤄야 한다는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 진료 현장에선 처방 기준의 부적절함과 환자 간 형평성 문제, 약물 오남용 등 복합적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GLP-1 유사체(세마글루타이드, 리라글루타이드 등)는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식욕 억제와 체중 감량 효과가 입증되며 비만 치료제로도 각광받고 있다.
국내 출시 이후 내과·가정의학과뿐 아니라 산부인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등 다양한 진료과에서 '다이어트 주사'라는 이름으로 관련 시술과 상담을 홍보하고 있다.
다만 GLP-1 유사체는 일정 기준 이상의 비만 환자에게만 처방이 허용된 전문의약품이다. 정상 체중이거나 단순히 미용 목적의 사용은 부작용 위험을 높일 수 있으며, 약물의 의료적 신뢰도까지 흔들릴 수 있다.
이에 대해 대한비만연구의사회 전승엽 수석학술이사(잠실에프엠의원)는 "오남용은 절대 안 된다. GLP-1 유사체는 비만 치료제로 꼭 필요한 환자에게만 처방돼야 한다.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의 상담을 거쳐 처방받기를 권장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비만 치료제의 무분별한 사용을 경계하면서도, 진료 현장에서는 오히려 현행 처방 기준이 비현실적이라는 불만도 크다.
현재 GLP-1 유사체의 국내 처방 기준은 체질량지수(BMI) 30 이상, 또는 고혈압·당뇨병 등 대사 질환이 있는 경우 BMI 27 이상이다. 이는 미국 FDA 기준을 반영한 것이지만, 한국인의 대사 특성과 체형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언급돼 왔다.
대한비만연구의사회는 최근 학술대회에서 한국형 비만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에 착수했으며, BMI 외에도 대사증후군 동반 여부, 심리적 요인, 체성분 등을 반영하는 새로운 기준 정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BMI 23~25 수준에서도 대사 위험이 높은 환자들이 많다. 현장에서는 약이 필요한 환자임에도 기준을 못 채워 처방을 못 하는 일도 있다"고 설명했다.
GLP-1 유사체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주사제에 이어 경구용 알약 형태의 출시가 진행 중이며,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12세 이상 청소년에게까지 처방이 가능하도록 적응증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확산은 또 다른 걱정을 낳고 있다. 특히 외모에 민감한 청소년층이 유명인의 감량 사례를 접하고 GLP-1 유사체를 일종의 '다이어트 약'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대한비만학회 춘계학술대회에 참석한 미국 다트머스대학교 가이젤 의과대학 리 M. 캐플란(Lee M. Kaplan) 교수 역시 GLP-1 유사체가 비만 치료 목적이 아닌 미용·감량용으로 처방되는 현실을 비판했다.
치료제가 미용 수단으로 소비되는 사이 정작 치료가 절실한 환자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가장 큰 우려였다.
캐플란 교수는 "비만 치료제의 안전성은 이미 확보돼 있지만, 제한된 자원을 불필요한 사람이 소비하는 구조는 문제"라며 "누군가는 반드시 이 자원을 써야 하는데, 그 자원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구조는 공정성과 윤리 측면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고 역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