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인환 기자] 유럽연합(EU)이 바이오기술 '기초 연구 강국'에서 '제품화·시장화 강국'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법제화에 돌입했다. EU의 이번 '바이오기술법(EU Biotech Act)' 제정 추진은 단순한 산업 육성을 넘어 EU의 공급망 회복력, 기술주권, 경제안보를 포괄하는 전략적 조치로 평가된다.
19일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유럽집행위원회는 지난 14일부터 4주간 '공개 증거수집(Call for Evidence)'을 시작했으며, 올해 4분기 이해관계자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 3분기 최종 법안 채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법은 실험실에서 공장과 시장으로 이어지는 전환의 병목을 해소하고, 바이오기술 전반의 산업화 생태계를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EU는 의료·제약(레드바이오), 농식품(그린바이오), 산업·환경(화이트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바이오기술을 적용하고 있으며, 2022년 기준 해당 산업의 총 부가가치는 381억유로에 달했다. 이 중 의료·제약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바이오화학 분야가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연구성과가 시장 제품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낮은 편이다. 규제 복잡성, 투자 제한, 인력 부족 등으로 인해 혁신성과가 산업화로 전환되지 못하는 사례가 다수이며, 유럽의 바이오기업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점차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것이 유럽집행위의 평가다.
대표적으로 EU 내 임상시험 비중은 10년 전 25%에서 현재 19%로 줄었고, 초기 단계 벤처 투자 역시 미국 대비 3분의 1 수준이다. 상장 사례도 미국 나스닥 중심으로 몰리는 등, 자본시장 기반 역시 약한 상황이다.
유럽집행위는 이번 증거수집을 통해 ▲규제 간소화 ▲자금조달 체계 개선 ▲제조 인프라 확대 ▲전문인력 확보 ▲데이터 및 AI 활용 등 5가지 핵심 영역을 중심으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적 영향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의견 수렴은 6월 11일까지 이어지며, 이후 연내 공개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 3분기 법안 채택이 추진된다.
EU는 현재 기초연구 분야에서 강점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사업화하는 구조는 여전히 취약하다. 유럽 내 바이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기술 이전, 투자 유치, 시장 진입 측면에서 미국,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특히 바이오제조 부문은 EU가 비교적 우위를 점한 분야이지만,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투자 유치 경쟁 심화로 인해 선도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유럽집행위는 "현 상태를 유지할 경우, 바이오 분야에서도 제3국 의존도가 높아지고 경제적 자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EU는 이번 바이오기술법을 통해 규제환경을 재정비하고, 혁신의 시장 전환을 가속하며, 스타트업·스케일업·중소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전방위적 생태계 개편에 나설 예정이다.
유럽집행위는 "바이오기술은 지속가능한 성장, 보건 안보, 경제 안정의 핵심 동력"이라며 "이번 법 제정은 EU가 바이오산업의 세계적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한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