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가를 중심으로 성장클리닉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성장클리닉에 대한 문의가 이어졌다.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서울 학원가나 신도시 상가를 중심으로 '성장'을 내세운 의원 간판이 부쩍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일반 소아청소년과 의원이지만 간판이나 홈페이지에는 '성장평가', '소아비만', '성조숙증', '키가 작은 아이' 등 '성장'을 전면에 내세운 키워드가 큼직하게 적혀 있다. 일부 의원은 아예 '성장'이라는 단어를 병원 이름에 넣어 개원하기도 한다.

학부모들의 조기개입 선호, 경쟁적인 교육환경, 키에 대한 사회적 가치(heightism) 등이 맞물리며 '성장'은 더이상 단순한 건강 문제가 아닌 관심과 불안의 상징이 됐다.

치열해진 개원가에서는 성장에 대한 불안 심리를 타깃으로 차별화된 진료영역을 내세우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비급여 중심의 수익구조, 장기 진료 유도가 가능한 영역으로 인식되며 '성장'은 새로운 개원 트렌드로 부상했다.

실제로 성장호르몬 주사제의 공급량과 청구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성장호르몬 주사제 실태파악 및 현황 연구'에 따르면, 성장호르몬 주사제의 공급금액은 최근 5년간 2.5배 증가해 2023년 약 4800억원에 달했다. 의원급 비율도 상승세를 보이며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중심으로 처방이 집중되는 경향을 나타냈다.

2023년 성장호르몬을 청구한 환자 수는 약 3만 7000여 명, 청구금액은 약 1400억원으로 최근 10년간 7~8배 이상 증가했다.

다만 성장 결핍이 없는 '정상아동'에게도 성장호르몬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를 낳는다. 해당 보고서의 설문조사 결과, 성장호르몬 주사제를 사용한 보호자의 절반 이상이 '단순 키 성장'을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응답했다.

성장호르몬 주사제는 주로 비급여로 사용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실제 국내에서 사용되는 전체 규모는 건강보험 청구자료만으로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에 성장호르몬제의 사용은 보고된 것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정상 신장 아동에 대해 성장호르몬의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한 비교 임상이나 장기 관찰 연구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성장호르몬은 저신장 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일반적 치료법이지만, 질환이 없는 아동에게 단순한 키 성장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14년 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10년간 보고된 성장호르몬 부작용 건수는 총 6309건에 달했다. 이 중 주사부위 통증이 가장 많았으며, 중대한 이상사례도 317건 보고됐다. 사망 2건과 암종 4건은 '가능성 낮음' 또는 '평가 불가'로 분류됐다.

이 같은 흐름은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제22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에서 성장호르몬 오남용에 따른 실태 조사와 대책 마련 필요성을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은 "성장호르몬 주사제가 학부모 사이에서 키 크는 주사로 인기를 끌며, 성장 결핍이 없는 아동에게도 처방돼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같은 당 김남희 의원도 "성장호르몬 오남용 실태조사와 허위·과대 광고 점검이 시급하다"며 이를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등과의 협력을 촉구했다.

이러한 트렌드에는 의료진의 자정 작용도 요구된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적절한 진단과 의학적 판단 아래 이뤄질 경우, 키 성장과 자존감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정상 소아를 대상으로 한 치료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은 상업화로 기울 수 있는 의료행위에 대한 사회적 경계가 필요한 지점이다.

따라서 성장호르몬 주사제를 미용 목적이 아닌 질병 치료로 사용하는 사회적 인식 정립과, 정상 아동에 대한 장기적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와 정보 제공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의료기관의 양심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인식 변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부모 대상 온라인 카페 게시판에는 "아기 키가 너무 작아요", "성장클리닉 어디가 잘해요?"와 같은 고민 글이 빈번하게 올라오고 있다. 특정 병원을 추천해달라는 요청과 후기, 상담 경험 공유가 이어지며 키에 대한 불안이 사회적 현상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기관을 제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성장호르몬제가 단순히 키를 키우는 약이 아니라는 점을 보호자들이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며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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