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우리가 쓰는 약 중에는 자연에서 출발한 것들이 많다. '아스피린'은 버드나무 껍질에서 나왔고, 항암제 '탁솔'은 주목나무에서 추출됐다.

혈액순환제 '타나민'도 은행잎에서 추출한 약물이다. 어찌 보면 자연은 예전부터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약국이었던 셈이다. 

이에 외국에선 천연물의약품 라이브러리 구축·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은 2004년 '천연물의약품 가이드라인(Botanical drug Guidance)'을 제정하고, 천연물을 제도적으로 관리·지원하고 있다. 

유럽 각국 정부도 '식물의약품(Phytopharmaceuticals)'이라는 별도 규정을 마련, 평가 기준과 연구 지원을 동시에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일본과 중국도 각각 캄포의학(Kampo, 전통 의약 치료)과 중의학(한국의 한의학)을 기반으로, 천연물 기반 의약품을 지속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을 통해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부터 천연물의약품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번 애엽추출물에 대한 급여적정성 재평가가 그 예시다. 

약평위는 지난 8월 급여적정성 재평가에서 합성의약품과 동일한 임상 기준을 적용하며 ‘급여 부적정’ 판정을 내렸다. 그 이유로는 임상적 유용성을 근거로 들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천연물의약품은 그 특성상 성분 약리활성이 복합적이어서 동일한 임상 기준을 갖고 평가하기란 무리가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해외 임상 근거가 제한적인 것도 천연물의약품으로선 임상적 유용성 입증에 어려운 점으로 지목된다.  

물론 약이 보험급여로 인정받으려면 임상적으로 효과가 입증돼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단기적인 예산 절감을 위해 천연물의약품을 배제하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있다. 

벌써 임상 현장에선 '풍선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애엽추출물이 급여 삭제된다면, 대체약으로 꼽히는 '레바미피드' 외에 마땅한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또 레바미피드 제제가 불순물 관리나 원료 공급 차질로 인해 유통에 문제가 생기면, 환자가 사용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이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또 애엽추출물이 PPI나 P-CAB 제제로 대체되더라도 보험 재정엔 악영향일 거란 우려도 내비쳤다. 이들 보험 상한액은 애엽추출물 대비 적게는 6배에서 많게는 12배 비싸 자칫 건보재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급여 재평가의 본질은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합리적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인 약제비 절감 논리로 천연물의약품을 배제하는 것은 산업 경쟁력을 잃는 길이다. 복지부는 이달 예정됐던 급여적정성 재평가 이의신청 결과에 대한 발표 시점을 내달로 예고했다.

합성의약품과 동일한 임상 기준이 아닌 보다 유연한 기준을 갖고 평가됐으면 좋겠다. 애엽추출물이 20년 동안 쌓아온 리얼월드데이터(RWD) 및 장기간 처방 경험을 근거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내 제약사들은 천연물의약품 연구개발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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