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생각한다면 약가는 낮아져야하겠지만, 무작정 낮출 수만은 없다. 약가인하로 인한 매출 감소는 제약사의 수익구조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기업이 치료제 생산을 포기하거나, 일명 '코리아 패싱'과 같이 국내 시장에서 해당 치료제 철수를 결정할 수 있다. '포시가(다파글리플로진)'가 국내 시장을 철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약가로 인한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제는 글로벌 통상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올린 공은 너무나도 무차별적이다. 지금 이러한 상황이 현실인지 믿어지지 않고, 걱정은 너무 되는데 현실감이 없어 당황스럽다."
최근 만난 한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는 곤란한 상황에 대해 토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처방 의약품 가격을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맞추는 '최혜국 대우 약가 정책(Most-Favored Nation, MFN)'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국제약협회(PhRMA, 이하 협회)로부터 의견서를 받았고, 협회는 최저가 약가 정책을 가지고 있는 나라를 선정했다. 선정된 국가들은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 영국, 유럽연합(EU)과 함께 한국도 포함됐다.
협회는 우리나라의 가격 억제 정책이 공정한 시장 가치에 맞이 않는 현저히 낮은 가격 책정을 유도한다면서, 통상 협상을 통해 개선 방안을 요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또한 복잡하고 까다로운 단계 절차로 인해 환자가 약에 대한 접근이 지연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MFN으로 인해 미국 시장 약가를 한국을 비롯한 최저가 약가 정책 국가 수준으로 맞추게 되면, 다국적 제약사들의 전체 매출은 대폭 감소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해외 본사가 한국에 신약을 출시하지 않거나, 기존에 있던 약마저도 철수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에 해외 본사와 국내 시장 상황을 조율해야 하는 국내 다국적 제약업계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폭탄'을 맞은 상황이 됐다.
한국의 약가가 다른 국가대비 낮아 본사와의 소통 시 난감하다는 것은 다른 다국적 제약사의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해당 관계자는 신약을 이미 글로벌 시장과 비교해서 가장 낮은 가격으로 한국에 도입했는데, 이를 더 낮춰야 하는 상황이 계속해서 만들어져 본사가 몇 차례는 우호적으로 약가인하를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몰렸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약은 언제나 환자를 우선해야 하지만, 제약사의 이익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약은 존재할 수 없다.
트럼프가 쏘아올린 공이 더 큰 파장으로 국내 시장을 타격하기 전에, 약가 정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이슈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