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K칼럼] 의약품 세계화, 전문지식과 열정 가진 인재가 하는 일

정원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부사장

메디파나 기자2025-09-15 06:00

확대이미지제약산업 산책 <2> - 제약의 인재상

필자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제약회사로 취직했다. 약사가 부족해서 졸업예정자를 회사가 미리 월급을 주고 김장철 배추처럼 입도선매한 것이다. 

한 학기 등록금이 45만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첫 월급은 40만원이였으니 학생 티를 못 벗은 사회초년생치고는 과분한 대접을 받은 셈이다. 사람을 뽑아야 될 입장이 된 지금도 느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 뽑기가 참 힘들다는 것이다. 

어느 교수님께서 쓰신 칼럼에 약사는 두 가지 분야에서 일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하나는 용약(用藥)이고 또 하나는 창약(創藥)이다. 약품을 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이 용약이고, 제약산업에서 약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창약이다. 

6년제의 약사를 배출한지도 수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많은 후배들은 창약보다는 용약을 선호한다. 근거는 면허를 받으면 대한약사회에 신상신고를 하는데,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되기 전 통계에서 창약에 종사하는 약사의 비율이 5%남짓인 것으로 기억된다. 공직, 교직을 제외하고도 졸업생 대다수가 용약분야로 가는 것이다. 

약학대학이 많은 단체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6년제로 된 까닭은 더욱 내실 있는 교육을 받음으로써 지역사회의 건강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잘하라는 점도 있지만, 병원이나 산업계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라는 것이다. 

그런 목적을 위해 대학에서도 약국, 병원, 공직, 제약 등으로 실습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어떤 분야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지 미리 경험해서 미래를 설계하라는 의도다.  

필자도 대학 4학년때 당시 영등포에 위치한 종근당 공장에 간 적이 있다. 학점도 부여되지 않는 단 하루의 방문이어서, 실습이라기 보다는 견학에 가까웠지만 '시날라 크림' 같은 약을 잔뜩 선물로 받고, 개국보다는 제약에 몸담겠다는 결심을 한 계기가 되었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회사는 적극적으로 실습생을 유치하고 밥이라도 한끼 사주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회사로 지원하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제약회사치고 능력이 있다면 새로운 의약품을 갖고 싶지 않은 곳은 없을 것이다. 임상적 요구가 있고 시장성 있는 효과적인 연구개발이 이뤄져야만, 남들이 갖지 못한 경쟁력 있는 의약품을 가질 수 있고, 그런 제품이 있어야만, 국내시장은 물론 해외에 더 많이 수출할 수 있고, 수출이 잘 되어야만, 양질의 일자리가 더 창출된다. 연구개발 능력이 회사 발전의 시발점인 이유다. 

연구개발분야만 세분해보면 합성, 제제, 바이오, 비임상, 임상, RA, 개발 등이 있다. 약제학, 제제학, 기기분석 등은 아마 약학대학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가르치는 분야로 약사들이 업무를 수행하는데 가장 강점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제약은 질병의 진단, 처지, 경감, 예방을 위한 원료의약품을 포함한 완제의약품의 개발, 제조, 유통하는 산업으로 정의된다. 우리나라에서 보건복지 분야 중 복지를 제외한 보건의료서비스의 규모는 약 90조원이고 그 중 의약품의 규모는 22조원에 달한다. 국내 총생산(GDP)중 의약품은 약7%를 차지한다. 건강보험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정부규제, 고부가가치, 기술지식집약, 시장세분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거쳐 기술자립기, 대한민국 최초의 항암신약탄생, 의약분업과 국민건강보험제도 정착 및 발전기에 이르는 지금 제약산업은 올해로 128살을 맞는 유서 깊은 산업이다. 

경공업-중화학공업-에너지-통신-IT를 거쳐 미래산업으로 제약바이오산업을 꼽는다. 최근 국내 여러 회사의 성과에서 보듯 개량신약을 거쳐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해 세계 유수의 다국적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요즘 최저임금, 청년일자리 창출 등이 매일 매스컴에 오르는 화두다. 세계적으로도 손색없는 보건의료의 빅데이터나 인적자원 등을 활용해 비정규직이 거의 없는 '고용 있는 성장'을 이뤄내고 있는 유일한 산업분야로 제약산업이 꼽히고 있다. 

제약이 기술 축적을 해나가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우리 의약품의 세계화를 앞당기는 것은 단순히 인력이 아니라 전문지식과 열정을 가진 인재가 하는 일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기고| 정원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부사장(약학박사)

-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학/석/박사
- 전) 일본 국립공중위생원(NIPH) 연구원
- 전) 일본 시즈오카대학 강사
- 전) 한미약품 개발 상무
- 현) 유나이티드제약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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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작성시간 : 2025-09-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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