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관련 전문 분야의 좌담회 자리였다. 그럴만한 전문가들이 모여 제법 격식을 갖추어 진행되고 있었다. 진행자 역시 나름대로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유형준 선생님 같은 경우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라는 질문에 인내하지 못한 반사적 반응이 나섰다. "아니, 이 자리에 혹시 저 닮은 분이 계십니까?"
진행자는 물론 모든 참석자들이 당황해했고 그날 좌담회는 끝날 때까지 경직된 격식으로 내내 꽉 막혀 있었다.
그 당시를 되짚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요즈음은 어느 방송을 듣든 보든 '~ 같이'가 제멋대로 뒤섞여 어지럽게 쏟아지고 있다.
자신의 남편을 가리키면서 "우리 남편 같은 경우는", 분명히 자신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바로 그 조국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 같은 곳에선".
그렇다면 남편 말고 남편 비슷한 딴 주인이 더 있다는 말인지, 세상 어디엔가 대한민국이 하나 또 있다는 말인지.
심지어 공식 학술 대회 석상이나 강의실에서도 "이 환자 같은 경우는" 이라는 식으로 '~ 같은'은 난무하고 있다.
몇 년 동안 쌓여 있던 '도대체 쉽사리 이해가 안 되는 답답함'이 좌담회에서 인내의 역치를 넘어 튀어나왔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로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같은'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답답함 역시 꾸준히 증폭되고 있는 차에 마침 필자와 똑같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는 분을 최근에 찾았다.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교수다.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분이다. 최 교수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서 줄여 옮긴다.
「학생들이 쓰는 말을 찬찬히 살펴보았더니, "~인 것 같아요"라는 말이 입에 배었더군요. "오늘 수업이 어땠나요?" 물어보면,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맛집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출연자가 음식을 먹고 "맛있는 거 같아요"라고 말하더군요. ....여러분, 대체 이런 말들이 가능합니까? 내가 재미있으면 누가 뭐래도 그냥 재미있는 거예요. ....맛있으면 맛있고, 즐거우면 즐겁고, 슬프면 그냥 슬픈 거예요.
굳이 사전적 의미를 빌려 설명하자면, '~ 같다'는 추측, 불확실한 단정을 나타내는 말....그런데, 내가 즐거운지, 재미있는지, 슬픈지 하는 것들이 추측하는 겁니까? 그게 불확실한 겁니까? ....가장 원초적인 욕구조차도 추측해야 하고 불확실한데,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지금 뭘 원하고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 또한 죽은 사람이에요.」
최 교수의 답답함은 생과 사의 갈림길까지 치닫고 있다. 갈림길에서 죽어버린 표출 의지를 그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 교수가 밝힌 원인에 더하여 나름대로 분석한 결과를 보탠다. 불확실하게 뭉개서 표현하는 것이 자신의 속내를 똑 부러지게 드러내는 것보다 이득이 되고 자신이 보호 받는다는 심리다. 솔직하게 나타낸 후에 받을 피해, 예를 들면 평가에서 탈락, 왕따 등이 두려운 것이다.
이러한 경계 심리는 애매모호하게 답하는 것이 이득을 보는 사회 분위기와 직접적으로 이어져있다. 어느 것이 더 먼저인지 더 깊은 규명이 필요하지만 개인의 경계심과 사회의 손익 평가 기준의 모호함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빠른 속도로 악순환하며 시간과 공간을 무시하고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사람 같은 사람들이 모인 사회 같은 사회에서 말이다. 이러한 전염성 악순환은 불확실한 미래의 예측과 직접 닿아있다.
필자는 이 현상을 '오이드 신드롬(oid syndrome)'이란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
오이드(oid)란 말을 들어보지 않은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디지털이란 단어와 거의 같은 빈도로 사용하는 안드로이드(android)의 영향이다. 그리스어로 '-oid'는 '~ 같은'의 의미로 영어로 resembling, like이다.
역시 그리스어로 안드르(andr)가 인간이니까 안드로이드는 인간 같은 것을 가리켜 이른다. 더러 로봇과 똑같은 의미로 쓰지만 개인적으론 전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안드로이드의 고전적 개념을 제대로 알기 위해 안드로이드란 말을 처음 만들어 쓴 프랑스의 상징주의 소설가 오귀스트 빌리에 드 릴라당(Viller de l'Isle-Adam)의 소설 '미래의 이브(L'Eve Future)'(1886년 출간) 줄거리를 간추려 적는다.
- 앨리샤(Alicia)는 뛰어난 미모를 갖추고 있지만, 머리와 가슴은 텅 비어 있다. 유왈드 경(Lord Ewald)은 미모에 반하여 그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외적 아름다움만이 있고 감성과 지성이 궁핍한 그녀에 대하여 몹시 실망한 그는 과학자 친구를 찾아간다. 그의 간절한 청에 과학자는 앨리샤를 본뜬 아달리(Hadaly)라는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친구에게 소개한다. 바로 아달리가 앨리샤의 미모를 쏙 빼닮고 감성과 지성도 풍부한 안드로이드다. 유왈드 경은 그러한 상황을 강하게 거부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안드로이드를 사랑하게 되고 약혼에 이른다. 인간과 안드로이드, 두 남녀는 유왈드 경의 고향으로 배를 타고 가다가 배가 침몰을 당하는 사고를 당한다. 그 와중에 인간의 지식과 기술로 만들어진 아달리는 조각조각 파괴되고, 유왈드 경은 이 안드로이드 약혼녀의 장례를 치루고 어딘가로 사라진다. -
신드롬은 우리말로 증후군이지만 이제는 아주 흔한 말이 되어 영어인 신드롬을 더 자주 쓰는 경향이 있다. 신드롬은 '함께 달리다'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어떤 공통성이 있는 몇 가지 증후가 함께 나타나는 병적 증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같은 증후를 보이니까 한 통속의 병적 상태로 묶을 수는 있으나 그 원인이 확실치 않아 특정한 병명을 붙이기 어려운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같은 말이라도 노인증후군(geriatric syndrome)이라고 이를 때의 증후군은 낙상, 인지기능장해, 우울, 영양불량, 통증, 요실금 등과 같이 노인에서 눈에 띄게 자주 발병하면서 삶의 질에 영향을 주는 증상이나 징후를 일컫는다. 증후가 한꺼번에 나타나지만, 원인이 여러 가지이거나 명확하지 않을 경우에 이르는 병적인 상태라고 뭉뚱그릴 수 있다.
앞에서도 일렀지만 오이드 증후군의 원인은 물론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깨어져 사라졌던 안드로이드가 슬며시 나타나 우리의 언어 표현 세상에 침투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어 표현은 서서히 언어 표현자와 언어 청취자 두 사람은 물론 그들의 관계와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세상까지도 표현된 언어대로 바꾸어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 힘의 발휘는 직간접적으로 이미 발휘되고 있다. 무책임한 약속, 약속 불이행에 대한 미안함 부재와 그래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세태,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행동들이 정의와 규범의 자리를 차지하고 횡행하는 세상이 된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사람 같은 게 세상같은 곳에서 사는 것같이 생명을 부지하는 형국을 향해 모두 함께 달려가게 된다.
사람은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 같으면 안 된다. 휴먼(human)은 휴먼이어야 한다. 휴먼 같은 안드로이드는 사람이 아니다. 시인은 시인이어야 한다. 시인 같으면 안 된다. 의사는 의사여야 한다. 의사 같으면 안된다. 주변 환경이 아무리 흔들리고 억울하여도 쉼 없이 공부하고 익혀가며 진한 양심에 기초하여 인술을 베풀어야 한다. 환자는 환자여야 한다. 아프고 약해야 한다. 환자 같은 고객이면 안 된다.
의사 같은 의사가 아닌 의사가 환자 같은 환자가 아닌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 같은 곳이 아닌 바로 병원 그곳에서 진료해야 한다. 환자 같은 고객이 북적이고 의사 같은 기술자가 득세하는 일이 없도록 사람은 사람이어야 한다. 말 같은 말이 아니라 말 그 자체를 표현할 줄 아는 본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오이드 신드롬'을 앓지 않는다.
독자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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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2024.10.13 16:16:26
유담 유형준 의사님과 의견을 같이합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 말버릇 속에 모종의 피해망상적인 요소가 숨어 있습니다.
혹여 전쟁터 '같은' 데서 자신을 여실하게 드러냈다가 금세 적군의 표적이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잠재합니다.
우리는 좋게 말해서 조심스럽다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겁쟁이들입니다. 미국인들은 우리보다 쫌 덜한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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