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보건의료노조가 보건복지부와 맺은 9.2 노정합의에 의료계가 석연치 않은 부분을 지적하며, 일종의 '정치적 거래'가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하고 나섰다.
'총파업'이라는 최후의 투쟁 수단을 통해 정부로부터 얻어낸 '의사노조' 없는 보건의료노조의 합의문에 공공의전원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 등 사실상 정부의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 내용과 거의 흡사한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일 보건의료노조가 13차례에 걸친 노정교섭을 통해 보건복지부와 합의를 이뤘다.
이에 따른 9.2 노정합의문에는 ▲공공의료 강화,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 ▲보건의료인력 확충 ▲총액인건비 관련 규정 적용 예외 ▲당정협의 ▲국무총리실 지원 ▲부문별 공공성 강화를 위한 부속 합의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국립대병원 출신 간호사가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만큼, 공공의료 및 보건의료인력 확충 등에 대한 내용이 담긴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이 같은 합의문 내용이 '선을 넘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는 '공공의료 강화', '의사인력 증원' 등 대부분의 내용이 의정합의체와 논의할 사항임에도, 정부가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을 막기 위해 실행 가능성을 보장할 수도 없는 일방적인 약속을 했다고 비판했다.
6일에는 대한병원의사협의회가 성명서를 통해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간의 9.2 노정합의는 의료 정상화나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는 무관한 정치적 거래에 불과하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의료계의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정부의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 대폭 포함
먼저 9.2 노정합의에 포함된 '공공의료 확충' 관련 내용이 지난 6월 2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복지부가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할 당시 의료계는 해당 계획이 △공공보건의료의 개념을 민간의료까지 포함한 전체 의료 분야로 확대하여 관치의료를 강화하는 정책이라는 점 △불필요한 지방의료원의 신증축 및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및 신축에만 대부분의 재원을 쏟아붓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점 △9.4 의정합의를 무시하면서 공공연히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전원 설립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 등의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노정합의에 포함된 공공의료 관련 △권역 감염병 전문병원 추가 설립 및 확대 운영 △중앙 감염병 전문병원 2026년까지 신축 △70여 개 중진료권 마다 1개 이상의 공공의료 책임의료기관을 지정 및 운영하기 위해 다수의 지방 공공병원 신증축(수도권 및 부산, 인천, 대구, 광주 울산 등의 광역시도 포함)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및 국고 지원 △국립중앙의료원의 이전 및 신축과 함께 공공보건의료 지원센터 및 개발원 설립 △공공의전원 및 지역의사제 도입 등의 의사 인력 확충 정책 △공공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설치 및 참여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확대 등 대부분의 내용이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병원의사협회의회는 "정부가 이미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으로 6월에 발표한 내용을 왜 보건의료노조가 파업까지 불사하는 투쟁의 요구안에 포함시켜 합의했는지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결국 정부는 이번 보건의료노조 파업 투쟁을 통해 기존 공공보건의료 정책 추진의 명분을 얻고, 보건의료노조는 처우 개선 및 공공의료 분야에서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 명분을 얻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보건의료 정책, 의료기관 경영에서 보건의료노조 지배력 넓히려는 시도
또 9.2 노정합의문에는 보건의료 정책, 의료기관 경영 등을 포함한 전체 보건의료 영역에 보건의료노조의 지배력을 넓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공공병원 확충 및 강화 방안에는 기존에 확정 및 발표한 대책 외에 추가 필요 사안에 대해서는 보건의료노조가 참여하는 '(가칭) 공공의료 확충 및 강화 추진 협의체'를 구성하여 논의한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결국 공공병원 신축 및 증축 과정에 노조가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나아가 사립대 병원 및 민간 중소병원의 공공적 역할과 기능 강화를 독려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공익 참여형 의료법인 제도화를 통해서 사립 의료기관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여 추진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에 병원의사협의회는 "결국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 정책 결정, 공공병원 설립 및 운영, 민간 의료기관 경영 참여 등을 포함한 전체 보건의료 영역으로 노조의 지배력을 넓히기 위해 공공의료 확충을 주장하고 이번 파업 투쟁을 이끌었다"며, "의료에는 노조가 관여할 수 있는 분야가 있는 반면, 중립적인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만이 관여해야 하는 분야도 있고, 오롯이 정부와 개별 전문가 단체들만이 결정에 관여해야 하는 분야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번 합의안에서 드러난 보건의료노조의 의도는 이러한 전문성에 대한 고려 없이, 거의 전체 보건의료 분야에 노조가 관여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8월 전국의사총궐기
◆ 의사노조 없는 보건의료노조, 의사 인력 증원·의료인 결격사유 확대법 요청
무엇보다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는 것은 의사 인력 증원 정책과 무면허 불법의료 근절을 위한 방안에 대한 합의 부분이다.
9.2 노정합의문에는 '의사' 직역이 포함되지 않은 보건의료노조와의 합의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의전원 설립', '지역 의사제 도입', '의료인 결격사유 확대' 등의 정책이 포함됐다.
공공의전원 설립 및 지역 의사제 등의 의사 인력 증원 정책은 지난해 의료계 전국의사총궐기 및 총파업 등 단체행동까지 유발시킨 4대악 의료정책의 핵심 내용으로, 당시 의협과 여당 및 보건복지부는 9.4 의정합의를 통해서 이 문제를 코로나19 유행이 안정화된 이후에 의정협의체를 구성해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아직까지 코로나19 유행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당사자가 아닌 보건의료노조와의 합의에 '의정협의'의 진행이 포함되고, 여당이 강행하려고 하는 '의료인 결격사유 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보건의료노조의 '정치적 거래'라는 반발이다.
UA(Unlicesed Assistant)에 의한 불법 의료 근절에 대해서도 '의료현장에서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의사와 진료지원 인력의 면허에 따른 업무범위를 정하고(의료인의 업무범위를 법령으로 규정하는 방안에 대해서 의료계·노·정 간 논의하여 검토), 공청회를 거쳐 의료현장에서 적용 가능성을 검증하여 2023년부터 적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사실상 진료지원인력을 합법화 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비판했다.
의료인 업무범위를 단순 공청회 등을 통해 규정해 당장 2023년부터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재 의사들의 역할로 규정된 의료행위 중 진료지원 직역 별로 가져오고 싶은 의료행위만을 취사선택해 업무범위를 재정립하고, 이를 통해 각 진료지원 인력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다.

◆ 정부·여당과 같은 목소리로 의료계 공격 가하는 '보건의료노조' 규탄
병원의사협의회는 "노조 입장에서 아무리 노조원들의 권익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 직역의 권익과 자유를 함부로 침해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폭력적"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보건의료노조의 투쟁 취지에 깊이 공감하여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았던 의료계와는 대조적으로 지난 해 보건의료노조는 정부 및 여당과 다를 바 없는 비판과 공격을 의료계에 가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꼬집었다.
마치 보건의료노조가 정부와 한 몸인 듯 행동한 점을 지적하며, 9.2 노정 합의안의 내용을 통해 의심이 확신이 됐다고 전했다.
병원의사협의회는 "저수가와 당연지정제 등 대한민국 의료 왜곡의 핵심 문제들은 외면하고, 공공이라는 이름을 빌려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는 포퓰리즘 정책만 양산하며, 의료계를 공격하여 자신들의 이익만 취하려는 보건의료노조와 정부의 파렴치한 행태는 규탄 받아 마땅하다"며, 합의문을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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