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해진 기자] 대한약사회가 환자가 직접 약을 선택할 수 있는 성분명 처방의 한국형 모델을 제시하며, 성분명처방 도입 가속화를 위한 본격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개최된 '국민의 조제약 선택권 확대를 위한 성분명 처방 한국형 모델 도입' 정책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김대진 의약품정책연구소장은 '성분명처방 한국형 모델 도입 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대진 소장은 "해외 주요국은 성분명 처방이 일반화 돼 사전·사후통보가 불필요 하고, 제네릭 점유율이 60~80%대이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 제품명 처방이어서 대체조제가 거의 불가하다"며 "제네릭의 품목이 한 성분에 대해 91개를 기록할 정도로 과다하고, 고가 제네릭 사용 비율이 높은 것에 비해 점유율은 다른 국가 대비 낮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사와 약사, 환자 간 소통 오류를 줄여 환자 안전을 강화하고, 제네릭 사용률을 높여 약품비를 절감함으로써 재정 효율성을 가져올 수 있으며, 리베이트나 불법 마케팅을 억제해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분명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대진 의약품정책연구소장. 사진=조해진 기자
이어 김 소장은 대한약사회 연구비로 의약품정책연구소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국형 성분명 처방 모델'을 제안했다.
이 모델에 따르면, 성분명 처방의 정의는 제품명을 병기하지 않고, '[주성분코드]+성분명+제형+함량'만을 기재한 처방을 의미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형 성분명 처방의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먼저 의사가 성분과 함량을 처방전에 입력하면, 전산시스템이 이를 건강보험공단 추천 의약품 목록, 약가, 본인부담 차등화 기준 등에 따라 후보 의약품을 자동으로 선정한다.
단 ▲혈중 농도 변화에 따라 치료 실패나 심각한 부작용 위험이 큰 치료역이 좁은 약물 ▲생물학적 제제·바이오시밀러 ▲흡입제 등 투여 장치 사용 설명이 다르고 환자 교육이 필요한 약물 ▲허가받은 적응증이 여러 개인 약물 ▲복합 소화제, 국소 코르티코스테로이드 함유 피부·두피용 제제와 같은 복합제 등은 해외 문헌 검토 및 전문가 자문을 통해 성분명 처방 적용 제외 대상이다.
이후 약사는 시스템에서 자동 선정된 약 리스트에 대해 환자에게 설명을 하고, 환자의 선택에 따라 최종 조제를 진행한 뒤, 성분명과 제품명을 기록한다. 이어 성분명과 제품명이 병기된 복약지도서를 환자에게 제공하고 복약지도를 진행한다. 환자는 어플 등을 통해 조제 내역을 확인, 공유하는 프로세스다.
김대진 소장은 "성분명 처방이 이뤄지면 최대 7조9000억원의 약품비를 절감할 수 있으며, 제품명 사용으로 인한 의약품의 사용 과오를 감소시킬 수 있다. 불필요한 약 처방과 리베이트 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낭비를 줄일 수 있고, 폐의약품 규모 역시 감소해 연간 최대 9조3614억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성분명 처방 제도는 환자 안전과 권익을 강화하고,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국내 의약품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분명 처방을 사회적 요구도와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 중요성이 큰 성분군부터 단계적 도입 ▲환자 중심으로 의약품 선택이 가능하도록 선택 기준 설계 및 환자 정보 접근성 강화 ▲약가인하·본인부담 차등화·제네릭 경쟁 촉진 등 재정 효율화 장치 병행 ▲처방·조제 소프트웨어에 성분명 자동 변환 및 조제 지원 기능을 포함시켜 의료기관과 약국의 행정부담을 완화하는 지원 등이 선행된다면 충분히 한국형 성분명 처방이 도입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성분명 처방 한국형 모델 도입 정책토론회 토론 패널들. 사진=조해진 기자
이어진 토론에서는 최보윤 차의과학대학교 약학대학 교수가 좌장을 맡아 박성민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 오선영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 김대진 의약품정책연구소장, 이광민 대한약사회 부회장, 서한기 연합뉴스 기자, 조원준 더불어민주당 보건의료수석전문위원, 강준혁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장 등이 패널로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박성민 교수는 "제네릭은 복제약이란 뜻이 아니라 상품명을 쓰지 않는 일반 명칭이라는 뜻이다. 용어가 잘못돼 있다는 점에서 제자리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며 "제네릭은 오리지널과 동일한 성분, 효과를 가지면서도 가격은 평균 85% 인하 효과를 갖는다는 FDA, AMA의 자료가 있다"며 성분명 처방의 당위성을 밝혔다.
남은경 사회정책팀장은 한국형 성분명 처방 모델이 약제비 효율화와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제도라는 점에 찬성하면서도, 약가 인하 전제 대체조제 허용 시 근거와 기준이 불명확하고, 환자 본인부담 차등제는 실효성이 낮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가 제네릭에 대한 안전성과 효과를 공식적으로 확인해야 불신이 해소될 수 있다"며 "향후 민주당과 정부의 공론화 과정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오선영 정책국장 또한 성분명 처방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약가 차등제 적용에 대해서도 환자의 차별이나 불안을 유발할 소지가 있으며, 환자들이 약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부담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이에 환자 교육·정보 제공과 복약 순응도 저하 방지책이 필요하며, 제도의 성공을 위해서는 의사와 약사 사이 전산 공유 시스템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상단 왼쪽부터) 박성민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 오선영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 이광민 대한약사회 부회장, 조원준 더불어민주당 보건의료수석전문위원, 강준혁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장. 사진=조해진 기자
이광민 부회장은 "성분명 처방은 의약분업 취지 실현의 마지막 열쇠"라며 "상품명 처방은 의료기관과 약국의 1대1 종속 구조가 심화돼 대체조제율을 저조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성분명 처방을 도입할 시 단골약국이 활성화돼 중복약 또는 금지약 관리를 강화할 수 있고, 환자 역시 거주지 인근 약국에서도 편리하게 조제를 할 수 있으며, 건강보험 재정 절감 및 환자 복약 이행도를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또한 "의사와 약사가 싸우고 싶지 않다. 성분명 처방은 정부 기관과 보건의료단체, 우리 사회가 함께 나서서 확대해 나가야 할 일이지 직능 간의 갈등 문제가 아니다"라며 "처방과 조제 단계에서 비용 효과성이 높은 의약품이 사용될 수 있도록 촉진하기 위해서 성분명 처방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해서도 성분명 처방은 약사회의 정책이 아닌 우리 사회 모두의 정책이다. 다시 논의가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원준 수석전문위원은 민주당 공약으로 대체조제와 성분명 처방을 추진한 것은 팬데믹 당시 마스크, 백신, 타이레놀 대란 경험이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분명 처방의 법제화가 필요하지만, 의무화나 처벌조항 등은 과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국민을 위한 제도임이 명확하게 설계돼야 하는 것이지 보험재정 절감은 목표가 아닌 부수적 효과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 측인 강준혁 약무정책과장은 의사와 약사 간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강준혁 과장은 "정부는 성분명 처방을 의약품 접근성 강화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국민 다수가 성분명 처방 수용이 가능하지만 일부는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원인 분석이 필요한 것 같다"면서 "대체조제나 성분명 처방이나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의사와 약사가 결국 합심을 해야 환자가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견 조정 가능한 정책으로 접근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앞으로 논의가 투쟁이나 전진대회가 아닌 의사와 약사가 서로 토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지길 바란다"며 직능간의 원활한 소통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영희 대한약사회장. 사진=대한약사회 출입기자단
한편, 권영희 대한약사회장 또한 성분명 처방 논의가 직능 간의 갈등이 아닌 미래 보건 의료 시스템에 대한 준비임을 강조했다.
권 회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약물 복용의 체계적인 관리,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 등 미래 보건 의료 시스템을 준비해야 할 때"라며 "성분명 처방은 약의 선택권이 의사에서 약사에게로 이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성분명 처방은 환자 자신이 복용하는 약의 성분을 알고, 국민의 알권리와 합리적이고 경제적으로 약을 선택하는 국민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국민 건강권의 실현이다. 특정 제약사의 약을 찾아 약국을 전전하는 국민적 불편을 해소하고,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는 국민 건강권의 향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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