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이태원 참사가 부른 '의료재난', 재발 방지 가능한가

재난의료 시스템 막은 의료재난… 아쉬운 거점병원 마비
의료계 "인근 병원 경증환자·보호자 방문·문의 빗발… 쉽게 마비"
중증환자 진료 매진할 수 있는 재난대응 의료체계 마련돼야

이정수 / 조후현2022-11-02 06:09

[메디파나뉴스 = 이정수·조후현 기자] '총 156명 사망'.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벌어진 대규모 참사로 국내 응급대응 체계 현주소가 여실히 드러났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결과로 사망자는 우후죽순 늘어났고, 사고 4일차인 이날(1일) 총 사망자는 156명으로 집계됐다.

의료계에선 이번 참사 과정에서 발생했던 '의료재난'에 주목한다. 당시 사망자 수십 명이 인근 병원으로 집중 이송된 탓에 응급진료 체계가 작동되기 힘들었다. 의료계 내부에선 중환자가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대처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사망자를 한 명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사망자 때문에 또 다른 사망자가 나오게 되는 상황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취지다.

단 현실적 접근도 필요하다. 급작스레 발생한 대규모 참사는 여건상 적절한 조기 대응이 어렵다는 점, 연령에 따라 생존 가능성이 다를 수 있어 일률적인 조치나 분류가 적절치 않다는 점 등은 이번 사태에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벌써부터 국회·정부에서는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드러난 취약점을 보완하고 의료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재발 방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의료계도 응급대응시스템을 둘러싸고 있는 조직 중 하나로써 고민과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사진=이정수 기자
◆ 사건 장소 부근 순천향대서울병원엔 사망자가 몰렸다

1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기준으로 이태원 사고 사상자는 307명으로 집계된다. 156명이 사망했고 29명이 중상, 122명이 경상을 입었다. 부상자 151명 가운데 111명은 귀가했고, 40명이 입원한 상태다. 

사건 초기 사상자 중 상당수는 현장과 가까운 순천향대서울병원에 몰렸다. 행안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사망자 이송병원 현황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기준으로 순천향서울병원에서 타 병원으로 이송된 사망자 수는 79명이었다.

재난 현장에서는 심정지 환자가 아닌 '살릴 수 있는 중증환자'를 1순위로 두고 처치와 이송이 이뤄져야 하며, 중증환자를 위해 가까운 병원은 비워둬야 한다.

이날 순천향대서울병원에 몰린 사상자 대다수는 심정지 환자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일각선 중증도 분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 회장은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순천향대서울병원 응급실에 사망자가 먼저 이송되고, 교통 체증까지 더해지면서 중증환자 치료 역할이 마비됐다고 지적했다.

컨트롤타워 통제 하에 병원 여력을 확인하면서 중환자와 사망자를 이송해야 하지만, 이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송한 사례가 많았다고 봤다.

이 회장은 사건 직후 한 간담회에서 "현장 지휘소에서는 주변 병원을 판에 띄우고 어느 병원에 몇 명이 가는지 체크하는데, 이 같은 통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병원에 이송한 119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 입장과 차이가 있다. 복지부는 참사가 벌어진 직후 보도자료에서 '현장에서 중증도 분류에 따라 중증환자부터 순차적으로 신속하게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복지부는 순천향서울병원이 사고 지역에서 가장 가까워 이송 환자가 많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대부분 출발 시점에 사망하거나 도착 전 사망한 상태였다고 해명하고 있다.

질식에 의한 외상성 심정지 특성 상 중증도 분류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박수현 차의과대학 응급의학과 교수는 "외상성 질식사는 특성 상 다른 외상과 달리 중증도 분류가 쉽지 않다. 사망가능성이 높은 환자라고 하더라도 연령대를 고려했을 때 진료를 포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만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특정 병원에 사망에 가까운 환자가 몰린 상황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사건 직후 직접 응급실로 몰려드는 경증환자로 의료자원이 분산되는 데다, 빗발치는 보호자 연락 등으로 현장과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중환자 진료에 대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참사 현장에서 제대로 분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병원이 처하는 이같은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이정수 기자
◆ 재발 방지 나서는 정부·국회…의료계는 '중환자 진료 매진 체계' 고민

정부와 국회에서는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현재 경찰청에서 명확한 사고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조사와 분석을 진행 중이다.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1일 중대본회의에서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도 본격적으로 추진해나가겠다"며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행사에서도 시민 안전이 철저히 담보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사고 원인 분석 및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 역할에 충실하겠다"며 "대형 인파가 모이는 장소엔 안전시스템 구축을 위한 제도적 보완 및 시스템 구축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당시 대응과 관련한 질책보다는 유가족 지원 등 수습에 우선순위를 두는 분위기다.

복지위 야당 관계자는 "당장 다음주 전체회의에서는 대응 시스템에 얼마나 문제가 있었는지 질책보다는 수습을 위한 역할에 집중할 것 같다"며 "유가족 지원 등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료계에서도 재난 대응 내 의료시스템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중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형민 응급의학과의사회장은 "현장에 출동한 의료진이 지휘를 받고 일사불란하게 재난의료에 매진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현장 지휘체계 정립과 의료-소방 커뮤니케이션 등 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도 병원 거리에 따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재난상황에서 거리상 가까운 병원이 중환자에게 유리하지만, 여건 상 진료 시스템이 쉽게 마비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면서 "중앙 통제 하에 사망자와 중환자를 분배하면서 경증환자는 더 외곽지역으로 빼내는 방식 등을 활용해, 사건과 가까운 병원이 중증환자를 충분히 진료할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 보완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메디파나뉴스 : 이정수 / 조후현

기사작성시간 : 2022-11-02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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