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학과 임상의학 넘어선 교육‥'의료시스템과학'으로 전환

현재의 의학교육, 전통적인 의사-환자의 일대일 관계 중시‥전체적이고 거시적 시각 필요
정부 유도와 정책적 지원 아래 학생, 전공의, 교수까지 연속적인 교육 과정 개편 준비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3-09-19 11:48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지난 100여 년 동안 의과대학을 포함한 의료계는 최적의 의료 역량을 갖춘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에 초점을 맞춰 교육해 왔다.

그런데 최근 의학교육계는 이러한 생의학적 접근만으로는 빠르게 진화하는 의료시스템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의료 전달 방식, 의료 전문가가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협력하는 방식, 의료시스템이 환자 진료와 의료 제공을 개선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가 의학교육에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맥락에서 '의료시스템과학(health systems science)'이 제시됐다. 의료시스템과학은 의학교육 기관의 사회적 책무성 강화에 대한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며, 의료 현실과 사회 요구와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언급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의료시스템과학 교육 확산을 위한 교수개발 사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의학교육은 전통적인 의사-환자의 일대일 관계를 중시하는 진료 모델(one-physician plus one-patient model)에 적합한 의사를 양성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건강과 환자 치료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결정 요인, 의료전달 체계, 의료의 불평등, 의료 비용 등은 강의실에서 전달되는 지식 수준에서만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현대 의료는 만성 건강관리에 따른 부담이 날로 증가해 이에 대한 시스템적인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현대 의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꼽힌 '의료시스템과학(health systems science)'은 팀워크, 인구 건강, 환자 안전, 의료 질 향상, 사회의학 및 행동의학을 포괄하는 응용과학으로 발전하고 있는 분야이다.

의료시스템과학 교육은 환자 중심적 사고에 충실하고, 단지 질병 치료에만 국한하지 않고 복잡한 요소를 볼 수 있는 전체적인 시각(holistic perspective)에 집중한다. 또한 환자 개인의 질병 치료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환자, 사회와 인구집단 전체를 고려하는 거시적인 시각을 갖추게 한다.

연구팀은 "의학의 발전으로 치료 기술이 고도화되고, 평균 수명과 만성질환이 증가함에 따라 우리나라 역시 의료비의 상승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의료 비용과 접근성이 우수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의료진의 번아웃과 필요치 않은 자원의 소모로 인한 의료 질 저하가 우려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팀은 "이런 상황에서 의료시스템과학은 우리가 처한 의료 상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접근이다. 의사를 포함한 모든 의료진과 정부, 시민사회 모두 의료시스템과학에 대해 이해해야 하고 미래 세대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에 대해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의료시스템과학은 아직 낯선 개념이므로 정부, 의료계, 시민의 인식 향상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울러 정부 주도의 예산 투입과 함께 의료계의 자발적인 학문 체계 구축과 수용, 관련 교육 과정의 개발과 확산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연구팀은 "의료시스템과학을 이해해야 하는 가장 우선적인 대상은 임상의사라 할 수 있다. 의료시스템과학에 대한 요구도는 실제 환자를 보고 있는 임상의사에게 높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의료시스템과학 교육은 학생 교육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전공의 교육의 한 축이 돼야 하며, 평생 교육으로도 확대해 의학교육의 연속성(BME-GME continuum)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의료시스템과학 학습 성과를 다양한 수준으로 확대하고 개편하며 교수-학습 방식도 학습자의 수준과 상황에 맞게 다양화해야 한다고 꼽았다. 

더불어 의료시스템과학을 적용시키려면 의과대학 교육 과정을 손봐야 하지만, 대학 입장에서는 교육 과정의 전면적인 개편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의 유도와 정책적 지원이 중요하다.

교육 과정 개발과 설계에는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이 소요된다. 연구팀은 정부가 이를 지원하면서 교육 과정 개편을 유도 및 감독한다면 선도 사업이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다.

연구팀은 선도 사업에 대해 사업 준비를 위한 예비기간 6개월, 사업 기간 4년, 그리고 사업 평가 6개월로 총 5년을 설정했다. 

연구팀은 "의과대학의 규모, 소재 지역, 국공립 등의 맥락에 따라 5개 이상의 의과대학에 선도 사업을 시행한다면 효과적인 확산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팀은 "현재 국내 의과대학은 6년제로 학제 개편을 시도하는 과정에 있다. 학제 개편이 이뤄진다면 선도 사업을 시행할 적기라고 생각되며 의료시스템과학이 의과대학 교육에 정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교육은 교수자에 의해 학습자에게 전달되므로 의료시스템과학 확산을 위해서는 교수 개발도 필수적이다.

연구팀은 향후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가 전국 의과대학 교수를 대상으로 하는 실제 교수 개발을 위한 워크숍을 시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수 개발을 통해 의료시스템과학에 대한 교수자의 인식을 바꿀 수 있고, 교수 개발 참여자는 소속 대학의 교육 과정을 개선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의료시스템과학 각 영역의 성과 및 학습 목표를 설정하고, 개별 의과대학에서 학교가 처한 상황과 맥락에 맞는 교육 과정을 개발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했다.

개발한 모든 교육 콘텐츠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 40개 의과대학에 공유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또한 교육 과정 개발로의 연착륙을 위해 의료시스템과학 교수자를 훈련하는 교수 개발 프로그램을 개발해, 의료시스템과학 콘텐츠를 바탕으로 개별 학교에서 원활하게 교육할 수 있도록 준비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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