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K칼럼] 인슐린과 동전 던지기

[백승만 교수] 우리가 쓰는 약은 어디에서 왔을까

메디파나 기자2025-06-09 06:00

우리가 쓰는 약은 어디에서 왔을까 ① - 인슐린과 동전 던지기

1921년 여름 기초 연구에 갓 관심을 보인 프레데릭 밴팅은 토론토 대학 생리학 실험실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드디어 찾았다. 

개의 췌장을 결찰해 소화효소 없이 인슐린만 분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그전부터 가시화되긴 했지만 어느 정도로 결찰해야 소화효소와 인슐린을 차별화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다. 

너무 오래 췌장을 묶어두면 인슐린이 나오지 않는다. 너무 빨리 풀어버리면 소화효소와 함께 분비돼 인슐린도 분해되어 버린다. 이 미세한 틈을 포착해 안정적으로 인슐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불굴의 의지와 정교한 실험 테크닉이 필요했는데, 밴팅은 이런 굳은 의지를 가진 의사였다.

다만 실험 테크닉이 없었다. 그의 아이디어를 들은 토론토 대학의 생리학 교수인 존 매클로드는 풋내기 의사의 아이디어 정도로 치부하면서, 이미 학계에서도 연구하는 중이며 별로 특별한 성과가 없을 거라고 흘러넘겼다. 

하지만 굳은 의지를 지닌 의사, 밴팅은 거듭 매클로드에게 부탁했고, 마침 고향 스코틀랜드로 안식년을 갈 계획이던 매클로드도 여름 방학을 맞아 실험실에서 일할 기회를 주었다. 

밴팅이 꿈에 그리던 연구 기회를 잡은 순간이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약간의 공간과 기기, 실험 동물들, 그리고 연구를 도와줄 연구원 한 명이었다.

정확히는 두 명이었다. 찰스 베스트와 클라크 노블이라는 연구원이었는데 이들은 토론토 대학을 갓 졸업한 학사연구원이었다. 그래도 두 사람 모두 실험에 대한 열의로 가득 차 있었고, 동물실험에 대한 테크닉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방학 두 달을 맞아 한 명씩 일할 계획이었다. 

당시 두 명 중 누가 먼저 할까를 정했던 방법은 지금도 관계자들 사이에 꽤 논쟁이 있는데, 그래도 정설은 동전 던지기다. 동전 던지기를 통해 찰스 베스트가 이겼고, 그가 밴팅과 먼저 연구를 진행했다.

토론토의 여름은 덥다. 그해 여름은 특히 더웠다. 그래도 밴팅과 베스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인슐린을 분리하는 조건을 찾아냈고 어느 정도 가시화된 성과도 거뒀다. 밴팅 입장에서는 한 달이 지나 이제 호흡이 제대로 맞는 베스트가 가고 신참 노블이 오는 것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베스트도 연구에 애착을 보이며 실험실에 계속 나오겠다는 뜻을 밝혔고 방학 이후에도 꾸준히 연구를 함께 했다. 그렇게 인슐린이 분리되었고, 세상을 바꿨다. 

밴팅은 베스트와 연구를 수행한지 2년만인 1923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단, 베스트는 수상하지 못했다. 이때 베스트가 받았더라면 1899년생인 그로서는 24세에 수상하는 셈이다. 하지만 노벨상 위원회는 베스트 대신 연구실 책임교수로서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했던 매클로드를 밴팅과 함께 수상자 명단에 올렸다. 지금도 회자되는, 수상자 선정의 아쉬운 사례 중 하나다.

그래도 베스트는 성공했다. 학부를 갓 졸업한 연구원일 뿐이었지만, 엄청난 연구 경력과 밴팅의 강력한 추천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헨리 데일과 함께 자율 신경계에 대해 연구하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헨리 데일도 1936년 노벨상을 수상했으니 이쯤되면 노벨상 제조기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때도 베스트가 노벨상을 받지는 못 했다. 그래도 그는 1930년 캐나다로 돌아와 토론토 대학의 생리학 교수가 됐다. 노벨상이 중요하긴 하지만,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연구의 목표도 아니다. 베스트는 그 후로도 생리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훌륭한 과학적 성과를 쌓았다. 이 모든 출발이 동전 던지기라는 사실은 좀 역설적이긴 하다.

그러면 동전 던지기에서 패한 클라크 노블은 어떻게 됐을까? 베스트의 성공이 동전 던지기 덕분에 시작됐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순수하게 동전 던지기 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후로 베스트가 땀을 뻘뻘 흘리며 조건을 최적화했다는 걸 감안하면, 밴팅과 노블이 함께 했다고 반드시 같은 결과가 나왔으리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같은 시기, 같은 연구 주제에 관심을 가졌고, 서로 결혼식 들러리도 설 정도의 절친이라면 노블의 삶도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인슐린으로 아직 노벨상이 나오기 전인 1923년 여름, 노블도 여전히 토론토 대학의 연구원이었고 절친의 성공을 보며 인슐린에 관심도 가지고 있었다. 

마침 밴팅과 사이가 틀어진 매클로드 교수가 이 점에 주목해 노블에게 인슐린과 관련한 연구 주제를 주었다. 밴팅과 베스트가 개나 돼지, 소 등에서 인슐린을 분리한다면, 매클로드와 노블은 물고기에게서 인슐린을 분리하겠다는 목적이었다. 물고기의 췌도는 소화효소 분비 세포와 구획이 분리된 경우도 가끔 있다. 이런 물고기를 찾아내고 인슐린을 분리한다면 당뇨병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이 분명했다.

노블은 밴쿠버 지역 항구까지 찾아가 선장을 섭외하고 배를 빌려 인근 해역에서 물고기를 찾기도 했다. 이때 주로 연구했던 물고기는 아귀다. 다만 실제 인슐린을 분리해보니 분리 효율이 너무 낮고, 안정적으로 물고기 확보도 어려웠다. 

비슷한 시기 밴팅과 베스트는 도축장에서 인슐린 분비 효율을 극적으로 개선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벨상이 수여됐다. 자연스럽게 물고기를 이용한 인슐린 분리는 시들해져 갔다.

노블이 동전 던지기에서 이겼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긴 하지만 역사에 가정은 없다. 그리고 베스트의 노력으로 인류가 당뇨병을 어느 정도는 관리할 수 된 것도 사실이다. 이 시기를 개척한 연구자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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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백승만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박사
- 전)美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 박사후연구원
- 현)경상국립대학교 약학대학장  
- '분자 조각가들', '대마약시대',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스테로이드 인류' 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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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작성시간 : 2025-06-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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