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료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변곡점을 넘어섰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가 의료 붕괴 1년의 현실을 '뉴노멀(New Normal)'로 규정하고 전공의 복귀부터 수련 시스템 혁신, 의대 교육 인프라 재건, 공공의대 신설 반대에 이르기까지 구조적인 개편안을 담은 정책 제안서를 9일 발표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대책 일방 추진으로 촉발된 이번 의료 위기는 전공의 약 1만명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고, 의대생들이 국가시험 거부 및 대규모 휴학에 나서며 수련·교육 체계가 동시에 무너진 사태다. 협의회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일시적 혼란이 아닌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 변화"로 규정했다.
붕괴된 수련·교육…의료공급 기반 '실제' 무너졌다
협의회에 따르면 병원을 떠난 9천여 명의 전공의 중 절반 이상은 전문의 수련을 포기하고 봉직의(비수련 일반의)로 임상에 투입됐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전공의 수는 1년 만에 급감했고, 2025년도 신규 전공의 모집 지원자는 전국 125명에 불과해 지원율이 2.2%까지 추락했다. 수련 체계 붕괴가 현실화된 것이다.
의대 교육 인프라도 붕괴됐다. 다수 의대생의 휴학과 실습 중단, 정원 증원에 따른 교수 인력 공백까지 겹치면서 수업은 정상화되지 못했다. 기초의학교수는 전국적으로 1600여 명에 불과하고, 5년 내 15%가 정년퇴직 예정인 반면 최근 3년간 신규 임용은 고작 245명에 그쳤다.
"인구 고려 없는 단순 증원…의사 배치 왜곡 초래"
의대 정원 증원의 명분은 ‘지역의료 인력 확충’이었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정책이 추진됐다고 협의회는 지적했다. 서울에만 전체 의사의 28.1%가 몰려 있는 상황에서, 지역 의대 졸업생 상당수가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구조는 이미 고착돼 있다.
협의회는 "지역 격차의 본질은 단순 수 부족이 아니라 일자리와 교육·생활 인프라의 집중"이라며, 단순 정원 증가는 지역 의료 불균형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치화된 추계위 아닌, 전문가 주도의 독립기구 필요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뒷받침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 직속 '의료인력 수급 추계위원회'를 설치했지만, 협의회는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 모두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의사단체 추천 없이도 구성 가능하고, 실질적 결정 권한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다.
협의회는 ▲의료전문가가 70% 이상 참여하는 구조 ▲정부 개입을 최소화한 법률상 독립기구 설립 ▲다원적 재원 기반 마련 ▲빅데이터·AI 기반 수요 예측 체계 구축을 제안하며 "정권 교체에 흔들리지 않는 장기적 인력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공의 복귀, 획일화된 대책으론 안 된다…"맞춤형 복귀 트랙 필요"
전공의 복귀 대책에 있어서도 협의회는 '형평성'과 '개별 상황'에 주목했다. 군 복무 여부, 수련 연차, 임상 지속 여부 등 다양한 배경을 반영해, 복귀 대상자별로 복귀 경로를 달리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군 복무자는 의무장교 경력을 수련으로 인정하고 전역 시 우선 매칭 및 별도 정원 배정 등을 통해 복귀를 촉진해야 하며, 저연차자는 신규 수련 시작, 고연차자는 인증 기반 잔여 수련 과정을 운영하는 방식이 제시됐다.
프리랜서형 수련제도 제안…"모듈 단위 능력 인증"
기존 도제식 수련 모델의 한계를 넘어, 협의회는 '모듈 기반 프리랜서형 수련제도'를 공식 제안했다. 수련을 일정 연한의 연속 과정이 아닌 '교육 모듈의 집합'으로 보고, 모듈별 교육을 다양한 병원에서 이수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개인의 탄력적 경력설계를 가능하게 하며 단절 이후 복귀도 수월해진다.
협의회는 "능력 기반 인증을 통해 수련을 유연화해야 한다"며 이미 네덜란드·캐나다 등에서 도입된 CBME(역량기반교육)의 흐름과 결을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공공의대? "특혜성·지역정착 실패·제2 서남의대 우려"
협의회는 공공의대와 지방의대 신설에 대해서는 "현실성 없는 정치적 접근"이라고 단호히 반대했다. 특혜성 선발 구조, 교수 확보의 어려움, 수련병원 미비, 장기적으로 수도권 유출 우려 등 다수의 위험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협의회는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여전히 10% 남짓에 불과하고 지역 의료환경은 투자 부족으로 열악하다며, 단순히 의사 수를 늘려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이 오히려 지역 의료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협의회는 "지금의 위기는 국가가 의료인을 통제 대상으로만 봐왔던 구조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며, 헌법적 가치와 시장원칙 위에 자율성을 보장하는 새로운 정책 철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이번 위기를 계기로 의료정책의 틀을 바꿔야 한다. 의료계와 국민의 신뢰 회복이 그 첫걸음이다. 정책 제안의 실행을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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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2025.06.09 20:06:36
육사,공사,해사처럼 공공의대 내지 의료사관학교 만들어서 직업군인 내지 일정기간 필수과 지방근무하도록 해야 합니다. 대신 이들는 학비면제 내지 많은 혜택을 줘야하고요. 그리고 지금 사직전공의 내지 군복무 전공의는 각자 정상적으로 군복무후 전공의 고정 재수료 내지 일반의로 처리해야할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직전공의는 정해진 기간에 해당 과정미수료시특혜금해야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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