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학영 국회 부의장, 김영남 보건진료소장회 회장, 임은실 대구보건대학교 간호대학 교수, 나백주 을지대의대 교수, 김진환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교수. 사진=김원정 기자
[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농어촌 의료체계가 1980년대 제정된 농어촌의료법에 갇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고령 인구 증가, 만성질환 확대, 의료 인력과 자원 부족 등 현실을 반영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방문진료 서비스 확대, 보건진료 전담공무원 교육 강화, 다인 근무체제 전환, 보건진료소, 보건소, 지방의료원, 공공병원등과 연계 협력 등이 주요 과제로 지목됐다.
9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열린 '헌법보다 낡은 농어촌의료법 이제는 바꿀 때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이 같은 의견을 공유하며 의료취약지의 역할 및 기능 재설계를 촉구했다.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이하 농어촌의료법)은 1980년 12월 제정됐다. 농어촌의료법 2조에 명시된 '보건진료소'는 의사가 배치돼 있지 아니하고 계속해 의사를 배치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의료 취약지역에서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으로 하여금 의료행위를 하게 하기 위해 시장·군수가 설치·운영하는 보건의료시설을 말한다.
이번 토론회를 공동 주최·주관한 이학영 국회 부의장은 “농어촌 의료 서비스는 1980년대 제정된 농어촌의료법에 근거해 운영돼 왔다. 하지만 당시 법의 목적은 보건지소, 진료소를 중심으로 한 1차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주민의 의료 접근성을 보장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인구 고령화, 만성질환 환자 증가, 지역사회 통합돌봄 체계로의 전환 등 사회적 변화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담기에는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루빨리 예방 중심 의료, 만성질환 관리, 지역사회 통합돌봄, 원격진료 등 다양한 서비스 모델을 구축·확대하고, 보건지소와 진료소의 역할 강화, 의료 인력 유인, 장기적 재정 지원 방안 등 구조적 지원을 포괄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선희 조국혁신당 의원은 "농촌지역의 고령화 인구는 늘어나고 의료자원은 너무 부족해 의료 사각지대에 있다고 생각된다.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건강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매우 미흡하다. 재정 자립도 역시 취약하다"며 의료취약지 해소를 위한 포괄적 논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첫 발제자인 김영남 보건진료소장회 회장은 '취약지역 보건진료소의 현황과 제도 개선 방향'을 주제로 농촌 현실에 맞는 법 개정과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의 역량·인력 체계 강화를 강조했다.
김 회장은 "농촌지역 공공자원은 행정복지센터, 보건지소, 보건진료소가 있다. 그러나 보건지소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의 경우 자원이 줄어 1명이 2~3개소 순환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의사 인력 부족을 지적했다.
또 "농촌지역 고령화는 뚜렷하지만 만성질환, 치매질환, 생애말기 임종 등을 수용할 의료기관 및 의료서비스가 부족하며 지역사회 내 상급병원과의 보건의료전달체계 부재로 치료 연속성 유지가 어렵다"며 현재의 상황을 반영한 농어촌의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농어촌의료법 제16조는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의 자격을 24주 이상 직무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현재는 의료·돌봄 수요가 커지고 있고 고령화로 만성질환자, 치매 등 노인성 질환자가 많아진 만큼 최소한 52주 이상 확대해 전문간호사 이상의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정위원회 구성을 통해 환자진료지침을 보건진료소 현실에 맞게 지속적으로 정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보건진료소의 근무 인력을 현행 1인 체제에서 다인 체제로 개선할 수 있도록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번째 연자인 임은실 대구보건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는 '보건진료소 제도 개선과 인력운영 방향'을 발제로 법과 현실의 한계를 짚었다.
임 교수는 "농어촌의료법 19조는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이 '경미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경미한 의료행위'의 범위가 구체적이지 않고 애매하다. 또 의료행위를 할 때 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환자진료지침에 의한 통상 질병의 종류와 처치방법들로 하도록 돼 있지만 현행 91종의 처방약으로 의료취약지 주민의 요구를 대응하기가 충분한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방문진료 대상을 와병, 장애인, 거동이 불편한 자에서 고령화에 대응해 노쇠해 걷기 어려운 노인들로 변경하고 약 배송 문제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임 교수는 "약사법의 '의약품 조제'의 예외 지역은 보건지소는 해당 되지만 보건진료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래서 '진료+조제+즉시 교부'가 하나의 의료행위로 진행돼야 하기 때문에 방문진료 후 보건진료소로 돌아와 조제한 약을 환자집으로 가져다 주면 약배달 행위가 될 수 있어 이에 대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헌법보다 낡은 농어촌의료법 이제는 바꿀 때다' 토론회가 국회 의원회관 8간담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사진=김원정 기자
지정 토론에 나선 나백주 을지대의대 교수는 1980년에 시행된 농어촌의료법이 현재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공중보건의사나 보건진료소의 역할도 현재의 상황에 맞게 재설정하고 변화해야 한다. 또 보건진료소에서 진행하기 어려운 환자를 보건소, 지방의료원, 공공병원등과 연계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당뇨, 고협압 등 만성질환 관리 기능도 강화돼야 한다. 투약 등의 문제는 일정한 복약관리 기능과 생활습관 개선, 진료의사와 협력 상담 기능이 중요할 것 같다. 실제 투약에 의한 만성질환 관리 부분은 전문의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해당 전문의와 긴밀한 연계 협력이 이뤄지도록 체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진환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교수는 "보건진료소 전담공무원이 전문간호사 수준의 교육훈련을 받더라도, 의사와의 협력체계가 병행되지 않으면 운영 목적 달성이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의사 부족을 단순히 간호사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건진료소를 중심에 두고 농어촌 의료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등이 협력해 포괄적으로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현재 '농어촌의료법'과 '지역보건법'이 병존하면서 보건진료소가 지역보건의료기관에 포함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어 제도적 충돌과 불명확성이 지속되고 있다. 농어촌의료법을 별도로 유지할 경우,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에 대한 중앙정부 통제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으나, 지역보건법 체계 내에서 요구되는 일관된 전달체계 관리는 미흡해질 수 있다. 반면 지역보건법으로 편입할 경우, 군 지역 내에서도 취약성이 높은 지역의 특수성이 희석될 수 있다"며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어 "농어촌의료법의 또 다른 축인 공중보건의사 제도 역시 보건진료소 개편 논의와 함께 다뤄져야 한다. 최근 복무기간 단축 논의가 있지만 복무기간이 단축될 경우 의사인력 총량이 더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공중보건의사 제도를 통해 의사인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지역의료취약지 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복지부 내에 농어촌 담당 부서나 일차진료 담당 부서 부재를 지적하며 신설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아울러, 지자체가 중심이 돼서 주민 필요에 맞춘 대안을 검토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한과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중앙 정부의 책무가 방기되지 않는 방향의 대응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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