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저출산 대책이 20년 넘게 이어졌지만 지방의 분만 인프라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 감소와 분만 의료기관 폐업이 겹치면서 임산부와 신생아의 의료 접근성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안전한 분만 환경은 위태롭다. 실제로 전국 분만 의료기관은 2003년 1371개소에서 2023년 463개소로 66% 이상 줄었고, 산부인과 전문의는 10년 새 5.3% 줄었으며 평균 연령은 54.4세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모자의료센터 접근거리가 길수록 모성사망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모자의료센터 접근성과 모자보건의료 지표와의 연관성: 모자의료 진료권을 중심으로' 보고서는 전국 162개 시·군·구를 분석해 31개 모자의료 진료권을 설정했다.
분석 결과 이동거리가 평균(10.41km)을 초과하는 권역의 모성사망비는 평균 이하 권역보다 6.33%p 높았다(9.41% vs 15.74%).
연구진은 "모자의료 진료권별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MFICU, Maternal Fetal Intensive Care Unit) 및 신생아 집중치료센터(NICU, Neonatal Intensive Care Unit)까지 이동거리가 평균 이하인 권역과 평균 초과인 권역 간의 모성사망비를 비교한 결과, 두 그룹 간 6.33% 격차가 발생하였다"며 "모자의료센터 접근성과 모성사망비의 상관성이 뚜렷하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다른 지표에서도 이동거리가 긴 권역일수록 수치가 높아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신생아사망률은 양산시가 2.27로 가장 높았고, 영아사망률은 3.69, 출생전후기사망률은 목포권이 3.58, 태아사망률은 익산권이 19.07로 나타났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모성사망비에서만 확인됐지만, 지역 간 분만 의료 불균형이 건강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은 분명히 드러났다.
기존 70개 중진료권 체계와 달리 가임기 여성 인구 수·자체충족률·지역 간 이동거리를 기준으로 전국의 모자의료 진료권을 31개로 설정한 이유는 인구 감소와 MFICU·NICU까지의 거리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분만 건수가 빠르게 줄고,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를 치료할 수 있는 기관도 감소하고 있어 향후에는 오히려 더 넓은 권역으로 재편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모성사망비 격차의 원인에 대해서는 기존 연구 결과를 인용해 "모성사망비가 지역별로 크게 차이 나는 원인은 고령 산모 증가,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이송 여부, 의료기관 수와 관련이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는 고위험 신생아보다 산모 이송을 우선하기 때문에 골든타임 내 의료 접근성이 모성사망비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2008년부터 신생아집중치료실이 부족한 지역에 NICU를 설치했고, 2014년부터는 MFICU를 단계적으로 확충했다. 2011년부터는 분만 취약지역에 산부인과 57개소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보고서는 "분만 의료기관 수익구조 악화와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성 논란으로 산부인과 전공 기피가 이어지고, 결국 산부인과 및 소아청소년과 진료체계가 붕괴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 대안으로는 두 가지가 제시됐다. 첫째는 고위험 산모 발굴과 관리다.
연구진은 "모성사망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고위험 산모를 명확히 정의하고, 임신 초기부터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며 "우리나라는 보건소를 통한 임산부 등록사업이 있으나 간단한 임신정보만 입력하기 때문에 고위험 임산부를 분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노르웨이처럼 출생 등록정보 시스템을 구축해 임산부의 상세 건강정보를 집적·연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둘째는 권역별 네트워크 체계 구축이다. 연구진은 "분만 건수를 늘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권역별 MFICU–NICU–지역분만기관 간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며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가 위급할 때 골든타임 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핫라인과 전원·이송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엔 전문 이송팀, 닥터헬기 같은 항공이송, 기관 간 프로토콜 표준화, 네트워크 운영에 대한 별도의 보상체계가 수반돼야 한다는 조언이다.
연구팀은 결론적으로 "안전한 분만환경 조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라며 "붕괴 직전인 분만 취약지역의 인프라를 지키기 위해 일본처럼 중앙정부가 다각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전폭적인 재정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후속 연구에서는 분만 진료권 간 의료서비스 차이를 분석할 수 있는 지표 개발, 지역별 인구 특성이 반영된 이동시간 분석, 고위험 산모 연령 분포와 모성사망률의 연관성 규명이 필요하다"며 "모자의료 진료권 기반 정책은 저출산 대책을 넘어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지키는 필수의료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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