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해진 기자] 과학의 발전에 따라 좋은 약들이 개발되면서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자는 6개월 이상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ART)를 통해 바이러스 억제가 되고 있다면 성접촉을 하더라도 HIV를 전염시키지 않지만,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병원에서조차 차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레드(RED) 마침표 협의체가 대한에이즈학회와 함께 'HIV 차별 종식을 위한 레드 마침표 캠페인 출범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진범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내과 교수는 'HIV 치료 환경의 과학적 발전과 사회적 낙인 현황 및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와 제언'에 대해 발표했다.
진범식 교수는 "HIV가 처음에는 굉장히 무서운 병이었지만, 치료제가 개발되고, 여러 치료 환경들이 좋아지면서 지금은 하루 한 알만 먹으면 된다. 더욱이 최근에는 두 달에 1번 맞는 주사제가 도입되면서 치료 환경이 과거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과거 HIV 감염자의 사망률은 전체 생존 감염자 중 2.5%였지만, 지금은 1% 미만으로 더이상 사망하지 않는 병이 됐다"며 "조기 진단을 받아 치료를 시작한다면 비감염인과의 기대수명이 거의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건강수명 측면에서는 악영향을 줄 수 있고, 평생 복용해야 하는 치료제이기 때문에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같은 동반 질환에 대한 부분에서는 좀 더 많은 비중을 갖고 진료를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진범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내과 교수. 사진=조해진 기자
진 교수는 과거 HIV에 대한 치료가 절대적인 과제였다면, 지금은 치료제를 통한 예방 측면에 많이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HIV 감염인의 배우자들을 무작위로 나눠 한 군에서는 바로 치료를 시작하고, 다른 군에서는 지연 표준 치료를 시작한 것을 비교한 연구 결과에서 지연 치료를 한 군에서는 27건이고, 바로 치료한 군에서는 단 1건만 발생했다. HIV 감염 배우자를 둔 커플 1500쌍을 1년동안 관찰한 결과에서도 단 한 건의 전파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치료제 조기 복용을 통해 HIV 감염을 96%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HIV 치료제가 예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 교수는 "약제 복용을 충분히 해서 바이러스가 체내에서 억제가 되면 성접촉을 통해 전파되지 않는다"며 '미검출=전파 불가(Undetectable=Untransmittable, U=U)'라는 원칙에 대한 글로벌 합의가 확립됐음을 밝혔다.
이어 "이는 감염인들도 결혼이나 출산 등의 과정을 다른 추가 조치 없이 비감염인과 똑같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따라서 의학적인 부분을 떠나 HIV 감염의 사회적 편견이나 낙인을 최소화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됐다. 이는 란셋 등과 같은 학술단체에서도 공감해 관련 발표를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조해진 기자
그러나 HIV 감염인에 대한 부족한 인식 및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차별은 질환의 진단 및 치료를 위해 필수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도 발생하고 있었다. HIV 감염인들 중 절반은 병원이 우호적이지 않다고 답변했다.
2023년도 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22년 디스크 절제술을 받기로 한 환자가 HIV 양성이라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당했다는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피진정병원은 소규모병원으로 HIV 전담 관리팀이 없고, 수술 중 출혈 등 긴급상황에서 HIV 같은 전염성 질환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이런 것들이 가능한 병원으로 진료를 권고했다고 답변했지만, 인권위는 수술 거부 행위가 두려움과 편견에서 비롯된 평등과 침해의 차별행위로 판단하고 개선을 요청했다.
이 사건에 대해 진 교수는 "병원에서 얘기한 수술 중 출혈 등 긴급상황에서 전문적인 처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 환자를 수술 거부했다는 이야기는 아마 못 들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HIV 역시 이와 같은 감염 질환이고, HIV 감염으로 발생하는 상황은 의료 현장에서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 피가 튀는 경우는 점막 노출이어서 감염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문제가 되는 것은 주사침 노출인데, 이런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가급적 빨리 70여시간 내에 HIV 약제, PEP(노출 후 예방요법)를 한다면 감염을 방지할 수 있다"면서 "다만 일반 병원에서 PEP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질 수는 있다. 이에 대한 접근성을 조금 더 강화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감염 관리와 병원에서 하는 표준 노출 치료와 같은 일반적인 원칙만 준수한다면 별도의 시설이나 인력이 필요하지 않으며, 의료와 관련한 HIV 감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진 교수는 HIV 감염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위해서는 HIV 감염 후 증상이 발생하는 에이즈(AIDS)와 다르다는 구분만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용어로 대체하는 것과 같은 실질적이 행동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어 "의료 현장에서 HIV 노출 후 예방방법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는 방안들을 시행하면 안전한 진료가 가능한 점, 진료비 지원 대책 등이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홍보해서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에 마침표를 찍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레드 마침표 협의체는 의료진, 감염인 단체, 산업계 및 학계 등이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 종식을 위한 뜻을 모아 구성됐다. 에이즈를 상징하는 붉은 리본에서 유래해 편견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의미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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