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노동조합, 역사적 출범…"과거 반복 않겠다"

비인간적 노동시간 단축·전공의법 개정 촉구
3대 목표·8대 요구 발표…'환자 안전=노동 인권'
신고센터 개입·실태조사·사회공헌까지 활동 예고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9-14 15:33

전국전공의노동조합 유청준 위원장.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전국전공의노동조합이 열렬한 환호 속에서 역사적인 출범을 알렸다. 불과 3주 만에 3000명의 회원이 결집한 사실은 전공의들이 얼마나 절실하게 연대의 틀을 원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4일 대한의사협회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열린 출범식에는 국회와 의료계, 노동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집행부를 맡은 전공의들은 수련 가운을 입고 무대에 올라 비인간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전공의법의 신속한 개정을 요구했다.

전공의노조는 "전공의 혹사의 대를 끊고 무너지는 의료를 바로잡기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고 선언했다.

전공의들은 오랫동안 열악한 수련 환경과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연대조차 할 수 없었다. 목소리를 낼 통로조차 닫혀 있었지만, 이제는 집단적으로 권리를 찾고 미래 의료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본격화됐다.

유청준 위원장은 "전공의들은 그동안 열악한 환경과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연대할 기회조차 없었다. 하지만 마침내 우리는 연결됐고 목소리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노조가 개인의 불만을 모은 집단이 아니라 환자 안전과 의료 개혁의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유 위원장은 "전국전공의노동조합은 우리의 처우 개선만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이곳은 환자 안전을 지키고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의료 시스템을 만드는 출발점이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노동 인권 보장이 곧 환자 안전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노조 활동의 방향성을 선명히 드러냈다.

그는 끝으로 "전공의의 노동인권 보장이 곧 환자의 안전임을 분명히 하며, 위원장으로서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환자와 의사 모두를 위한 책임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되풀이된 희생, 끊어야 할 역사
 
전공의노조 출범식. 사진=박으뜸 기자

전공의노조 출범의 배경에는 반복된 희생의 기억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2019년 가천대 길병원 전공의가 과로 끝에 목숨을 잃은 사건은 전공의 특별법이 존재했음에도 현실을 바꾸지 못한 제도의 무력함을 보여줬다. 주당 100시간을 넘는 과중한 노동은 여전히 이어졌고, 한 청년 의사의 죽음은 제도의 방치가 만든 비극이었다.

남기원 부위원장은 "이 비극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제도의 방치가 만든 참극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희생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태도를 내비쳤다.

2024년에도 의정 갈등과 의대 증원 정책 속에서 전공의의 권리와 환자의 안전은 다시 후순위로 밀려났다. 수련 공백과 의료 현장의 혼란은 되풀이됐고, 의료는 불안정해졌다.

남 부위원장은 "우리는 과거의 희생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공인의 권리를 반드시 보장하고 환자의 안전을 확실히 강화하며, 청년 의사로서 사회와 연대해 미래 의료를 책임지는 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고 반드시 지켜내야 할 약속이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다시는 젊은 의사들의 죽음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으로 들렸다.

전공의노조는 출범과 함께 구체적인 활동 계획으로 ▲신고센터 사례에 직접 개입 ▲주기적 실태조사 ▲전공의법 신속 개정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제시했다.

신고센터는 그동안 어둠 속에 묻힌 부당 사례를 드러내는 창구가 될 전망이다.

남 부위원장은 "그동안 현장에서 발생한 부당한 일들은 해결되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묻히곤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라며 "홈페이지에서 현재 운영 중인 신고 센터를 통해 단 하나의 사례도 외면하지 않겠다. 현장을 바로잡고 법과 원칙이 반드시 지켜지도록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는 현장의 불합리와 침묵을 제도적 개입으로 끊어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실태조사는 단순한 구호를 넘어 데이터를 통한 현실 기록과 공개를 목표로 한다. 이는 제도 개선 논의가 감각적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객관적 자료 위에 서야 한다는 점을 부각한다.

남 부위원장은 "이미 첫 번째 실태 조사가 시작됐다. 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 시범 사업, 직장 내 폭언과 폭행, 모성 보호 문제 등 의료 현장의 민낯을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그리고 결과에 따라 미흡한 수련 환경을 가진 병원은 반드시 개설시키겠다"고 말했다.

현행 전공의법의 한계도 도마 위에 올랐다. 노조는 개정안에 반드시 핵심 조항이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 부위원장은 법률이 선언적 문구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작동해야 한다며 "근로시간 단축과 최대 24시간 연속 근무 제한, 전공의 1인당 환자 수 제한, 임산부 전공의의 모성 보호 보장,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벌금형 강화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계획도 빠지지 않았다. 전공의노조는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 봉사활동을 정례화하고, 아동·노인·장애인·이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맞춤형 건강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가적 재난이나 공중보건 위기 시에도 전공의노조 이름으로 신속한 의료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남 부위원장은 "우리 노조는 전공의만을 위한 집단이 아니다. 청년 의사로서 국민의 건강과 사회적 책임을 함께 짊어지는 집단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가는 의료 봉사 활동을 정례화하겠다"고 말했다. 
 
전공의노조 출범식. 사진=박으뜸 기자

노조는 출범과 함께 세 가지 목표를 확정했다. ▲환자 안전을 위한 합리적 노동시간과 적정 환자 수 확보 ▲전공의 안전 보장 ▲부조리 근절을 위한 법제도 마련이다.

이를 구체화한 8대 요구안도 발표됐다. ▲72시간 시범사업 철저 준수 및 전 진료과 확대 ▲전공의 1인당 환자 수 제한 ▲임신·출산 전공의의 안전 보장 ▲방사선 피폭 대책 마련 ▲법정 휴게시간 보장 ▲연차·병가 자유 사용 보장 ▲폭언·폭행 근절 ▲전공의법 개정 신속 추진 등이다.

남 부위원장은 "8대 요구안은 협상의 조건이 아니라 환자와 의료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이다. 전공의가 무너지는 병원에서 환자의 안전은 지켜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의 권리 보장은 곧 환자의 안전 보장이다.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과거의 희생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의료계의 반응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조윤정 회장,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주신구 회장. 사진=박으뜸 기자 

정치권은 전공의노조 출범을 의료노동의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하며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이 병원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주목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간사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전공의노조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요구 사항을 협상하고 단체 협약을 만들며, 협상이 결렬되면 파업권과 노동쟁의권도 보장된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노조가 왜곡된 의료 현실을 바로잡고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노동조합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른 정치권 인사들은 권리 보장과 전문성 추구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은 노조 활동이 전문성 추구와 균형을 이뤄야 함을 상기시켰다.

이 의원은 "전공의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로 규정했다. 그리고 개인이 아니라 조합으로 연대하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는 것과 전문가로서의 최고의 탁월성을 얻는 것은 100% 함께 가기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이 전공의인 이유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다. 그것을 가장 잘 도와줄 분들은 기존의 의사들과 지금의 교수들이다. 탁월한 의사가 되는 것이 진짜 사회공헌일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의사단체에서는 전공의 특별법의 미비점을 거론하며 법 제도의 보완 필요성을 언급했다.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은 "전공의 특별법 도입 당시 줄어든 근무 시간을 대체할 인력, 지도 전문의 제도에 대한 부분이 없었다. 그리고 전공의 수련에 대한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며 "이러한 맹점들이 오늘까지 이어지면서 아직도 전공의 특별법이 정착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쉽지 않겠지만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잘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수사회는 전공의노조의 법적 지위가 문제 해결의 문을 열었다면서, 의사 개인의 건강이 의료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조윤정 회장은 "법적 지위를 가진 전공의노조 출범으로 문제 해결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젊은 전공의들이 의료 정책가이자 대한민국의 권력자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사 개인이 정신적·육체적, 경제적·사회적으로 건강해야 나라와 국민도 건강하다. 전공의노조가 건강한 의사를 양성할 사회적 환경을 구축하는 데 힘을 모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축하했다.

병원의사단체는 지난해 사직 투쟁에서 전공의들이 보여준 결단을 다시 꺼내며, 그것이 노조 성공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주신구 회장은 "2024년 2월 전공의들이 사직 투쟁에 나섰을 때, 젊은 날의 중요한 시기에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모습, 어떤 고통이 따라와도 멈추지 않고 절박한 현실 앞에서도 꿋꿋하게 마주하는 모습들, 꺾이지 않는 의지를 보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떤 노조든 단계를 중시한다. 전공의들이 노조를 만들면 분명 성공할 것이다"라며 "치열한 전장에서 보여준 용기와 헌신, 그리고 동료애는 전공의노조를 성공으로 이끄는 기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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