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리병 치료 "질환 진행 근거 있다면 보험 급여 적용해야"

[인터뷰]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홍그루 교수
경구제 '갈라폴드' 급여 추가확대 필요성 지적…"의료진 관심 높아져야"

김창원 기자 (kimcw@medipana.com)2021-11-23 06:06

[메디파나뉴스 = 김창원 기자] 최근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일자로 한독의 경구용 파브리병 치료제 '갈라폴드(성분명 미갈라스타트)'의 급여처방기간을 기존 최대 30일에서 최대 60일로 확대하는 새로운 고시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갈라폴드를 처방 받는 환자들은 처방기간 확대에 따라 병원 방문 횟수를 기존보다 절반으로 줄일 수 있게 된 것으로, 이전보다 편의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급여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으로, 편의성 확대와 함께 더 일찍부터 처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치료 가능한 희귀질환…조기 진단·치료 매우 중요

 

 

파브리병은 알파 갈락토시다제 A(α-GAL, α-gal A; α-galactosidase A, α-GAL)라는 효소가 적거나, 아예 없어 체내에 글라보트리아오실세라마이드(GL-3; globotriaosylceramide)가 축적, 조직과 기능을 손상시키면서 합병증을 초래하는 질환이다. 

 

리소좀이라고 하는 세포 내 소기관에서 특정한 당지질 대사에 필요한 효소의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는 리소좀 저장질환 중의 하나로, X염색체 관련 열성유전을 하는 유전성 대사질환이다. 다른 질환들과 달리 유사한 증상이 전신에 걸쳐 발생하기 때문에 진단이 어렵고 파브리병으로 인한 심장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홍그루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파브리병은 심근증 질환 중에서도 일찍 진단하기만 하면 치료가 가능하고 예후가 좋을 수 있는, 치료법이 존재하는 질환이다. 만성질환이지만 치료법이 있는 당뇨병처럼 희귀질환인 파브리병 역시 치료법이 있는 것이다.

 

홍 교수는 "고혈압이나 심부전, 당뇨병 같은 질환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어서 주로 생기는 반면 파브리병은 유전질환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병을 가지고 태어나며, 증상 발현 시기는 환자마다 다르지만 소아 때부터 증상이 발현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가족 스크리닝을 통해 일찍 발견만 한다면 치료 약물이 있기 때문에 조기 진단이 매우 중요하며, 치료가 제대로만 진행된다면 평생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치료제로는 부족한 효소를 대체하는 ERT(Enzyme Replacement Therapy, 효소대체요법) 주사제가 오랜 기간 사용돼 왔다. 여기에 지난 2017년 경구제인 갈라폴드가 허가를 받아 환자들의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기존 주사제의 경우 치료를 위해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해야 했는데, 경구제인 갈라폴드는 2일 1회 복용만으로 치료할 수 있어 병원 방문 횟수를 대폭 줄인 것이다.

 

특히 복지부의 처방기간 확대 고시에 따라 60일에 한 번만 병원을 방문해도 돼 환자들의 편의성은 더욱 높아졌다.

 

◆다양한 부위에서 증상 발견…ECHO360서도 진단·치료 논의

 

파브리병은 신경내과나 통증의학과, 심장내과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련 증상이 발견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신체 부위에 걸쳐 발병하기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 팀워크가 이뤄지기 어렵고, 분야별로 제각각 스크리닝이 이뤄지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한다.

 

심장내과의 경우 주로 좌심실 비대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스크리닝을 진행하고, 심초음파학회에서는 심장이 비이상적으로 원인 모르게 두꺼워진 환자를 대상으로 스크리닝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를 수년간 지속한 결과 많은 환자들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고, 파브리병 진단 환자는 2배 정도 늘어 다른 과에 비해 발견 건수가 가장 많았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구조심질환에 대한 심장 영상 기법을 논의하는 국제학술대회 'ECHO360'에서도 파브리병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지난달 국내에서 개최된 ECHO360에서 파브리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반영해 Satellite 심포지엄에서 논의가 이뤄졌던 것으로, 조기 진단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 치료가 어렵다는 점, 치료 효과 평가 방법, 유전 질환 측면에서의 논의 등이 이뤄졌다.

 

홍 교수는 "이런 환자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심장 기능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등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ECHO360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원인 모를 좌심실 비대가 있을 경우 파브리병을 의심해 스크리닝하고 있다"면서 "보통 고혈압이 있거나 심장 판막 질환이 있는 경우 심장이 두꺼워지게 되는데, 아무 원인이 없는데도 좌심실 비대가 목격될 경우 스크리닝 대상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어 "정상인은 10mm를 넘지 않고, 13mm 이상부터 좌심실 비대로 판단한다"면서 "일반적으로 비후성 심근증 환자들 중 1%가 파브리병으로 진단된다는 보고가 있다"고 덧붙였다.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경구제 선호도…1차 치료제 사용 가능해야

 

기존에는 파브리병 환자의 치료법이 정맥을 통해 부족한 효소를 주기적으로 투여해 신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효소대체요법 뿐이었다. 2주 간격으로 병원에 방문해 수시간 동안 정맥 주사를 맞아야 하는 치료법이다.

 

반면 체내에 효소가 남아있는 상태라면 이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이 가장 좋다. 경구제는 결핍된 효소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체내에 남은 알파 갈락토시다제 A 효소와 결합해 효소의 활성화를 복원시키고 축적된 당지질을 분해하는 기전으로 작용한다. 주사제와 달리 환자가 직접 약을 복용하면서 스스로 관리할 수 있고, 주사제보다 병원 방문 횟수가 절반 이하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주사제에서 경구제로 스위칭하는 환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 홍 교수의 설명이다.

 

홍 교수는 "파브리병 환자들에게 주사제에서 경구제로 치료제를 바꾸자고 할 때 선호하지 않는 환자들도 분명 존재한다"면서 "효소대체요법이 20년 이상 표준 치료로 시행됐다 보니 도입된지 얼마 되지 않은 경구제에 대한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사제보다 적긴 해도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는 것이 힘들었는데, 최근에는 급여 확대를 통해 두 달에 한 번만 병원을 방문하면 돼 상황도 점차 좋아지고 있다"면서 "실제로 경구제로 스위칭을 한 환자들은 편의성, 치료 효과적인 면에서 대부분 만족하고 있다"고 말해 처방을 변경한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 홍 교수는 경구제를 1차 치료제로 사용할 수 없는 국내 환경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해외 대부분의 국가에서 경구제가 1차로 처방될 수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1차 치료로 주사제를 1년간 치료한 후 경구제를 쓸 수 있도록 돼있다는 것.

 

대표적인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영국은 경구제와 효소대체요법 치료제의 환자군을 나누지 않고 모두 1차 치료제로 보험 급여 적용이 가능하고, 캐나다는 파브리병 치료 가이드라인에서 경구제와 효소대체요법이 동일한 환자군에서 보험 급여가 가능하다고 명시돼있다. 핀란드에서는 경구제와 효소대체요법을 나이 제한을 제외하고 동일한 보험 기준으로 1차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다.

 

홍 교수는 "국내와 글로벌 간 가이드라인에 차이가 있다는 상황이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처방 기간이 60일로 확대된 것이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90일까지도 확대돼야 한다고 본다. 국내 임상 결과가 나오면 더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장기의 손상과 같은 파브리병으로 인한 뚜렷한 합병증 증상이 있어야 보험 급여가 가능하다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홍 교수는 "아버지가 파브리병일 경우 딸은 100% 파브리병인데도 심장 두께가 10mm이기 때문에 급여를 못 받는 상황은 황당하지 않은가"라며 "현재의 급여 기준은 심장질환, 콩팥 등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야지만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질환이 진행되고 있다는 근거가 있다면 보험 급여를 받는 것으로 기준이 확대돼야 할 것"이라면서 "주사제는 비용이나 항체 생성 측면에서 부담이 존재하기 때문에 경구용이 최적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브리병에 대한 관심 필요…"작은 의심 하나로 환자 삶 바뀔 수 있어"

 

홍그루 교수는 급여의 한계와 함께 조기 진단의 어려움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파브리병 환자들은 보통 10~20년 동안 병을 앓고 있다가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진단을 받는데, 파브리병에 대한 관심을 가져 조기에 진단해 당뇨병처럼 잘 조절함으로써 평생을 문제 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홍 교수는 최근 조기에 진단한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한 어머니 환자가 두 아들의 검사를 해달라며 병원을 찾았던 사례다. 

 

보통 파브리병 여성 환자들의 경우 증상이 크게 나타나지 않는 편인데, 이 환자는 증상이 없는데도 검사를 요청한 사례로, TV에서 본 파브리병의 증상이 두 아들의 증상과 비슷해 어머니가 먼저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이 어머니는 파브리병이 맞았고, 덕분에 두 아들은 파브리병을 조기에 진단 받아 치료를 받게 됐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는 유전병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일단은 숨기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파브리병은 치료만 받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질환이기 때문에 진단을 받으면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가족 스크리닝에 임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숨어있는 파브리병 환자들이 많다"면서 "국내에서 약 200명 정도만 파브리병 진단을 받았는데, 유병률을 고려했을 때 약 1000명 정도의 환자가 있지 않을까 예측한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환자들의 관심뿐만 아니라 의사들의 관심도 높아지길 바란다. 의사들의 작은 의심 하나로 환자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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