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벽력 같은 폐암‥"1차로 키트루다 선택 후 기적 실감하는 중"

[연중기획 희망뉴스] '치료제를 만나 삶이 바뀐 환자들'
"키트루다 사용으로 암 급속도로 줄어"‥언젠가 1차 치료제 급여도 해결되길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18-02-19 06:04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평소 암산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어느날부터 숫자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자주 읽던 책 조차도 제대로 발음이 되지 않고, 가족들의 생년월일도 겨우 생각해 내야했다고.

똑바로 걷는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이 왼쪽 다리를 끌고 앞으로 구부리듯이 걷는다는 소리를 하긴 했다. 더군다나 잔기침이 조금씩 있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어느날 기침이 심해져 병원에 찾아가니 오른쪽 폐에 약 8cm정도의 종양이 발견됐고, 머리(뇌)에도 종양이 전이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메디파나뉴스가 만난 올해 65세, 박찬옥 환자(1954년생·사진)가 그러했다.

그런데 현재 박찬옥 환자는 암 크기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를 1차로 사용하고 난 뒤부터다.

국내에서는 면역항암제가 비소세포폐암 2차 치료제로만 급여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박찬옥씨는 가족들의 설득과 격려로 집 담보 대출까지 받으면서 키트루다를 투약 중이다.

항암화학요법으로 고통스럽게 부작용을 견디느니, 1차로 면역항암제를 사용해 `삶의 질`을 생각하자는 가족들의 결정에 연신 '감사하다'고 전하는 박찬옥 씨였다.

◆ "PD-L1 100%, 키트루다를 쓰지않을 이유가 없었다"

박찬옥씨가 처음 '폐암'이라고 진단을 받았을 때, `마른 하늘에 날벼락`, `청천벽력(靑天霹靂)`과 같은 단어 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고 한다.

박찬옥씨는 "나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폐암은 우리 집안에서 가족력도 없었고, 평소에도 운동을 꾸준히 해왔기에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고 조심스레 운을 뗐다.

사실 암은 환자 본인도 고통스럽지만, 가족들의 삶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찬옥씨의 가족들도 온 동네 사람이 알 정도로 극심한 우울감과 괴로움에 빠졌었다. 

주치의인 한림대학교 동탄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김철홍 교수는 찬옥씨의 첫 진단 당시를 정확히 기억했다.

김 교수는 "박찬옥 환자는 약 한달 동안 기침 증상이 있었고, 이후 검사에서 X-ray 이상이 발견돼 병원을 방문한 케이스다. 지난해 6월 말 병원 방문 당시 폐암으로 인한 증상은 심하지 않았으나 암이 뇌에 전이돼 정신 지체 증상이 있었다. 대뇌(45mm), 소뇌 등 총 3개에 다발성 뇌전이가 있었고 한쪽에 집중돼 압력이 증가되면서 의식이 뚜렷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찬옥씨의 경우 뇌압이 증가되면 뇌 탈장으로 인해 사망까지 이를 수 있어 8시간에 걸친 뇌수술을 먼저 시행한 경우다.

이후 박찬옥씨가 투약하기로 결정한 것은 항암화학요법이 아닌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다. 키트루다는 국내에서 비소세포폐암, 흑색종을 비롯 총 5개 암종에서 8개 단독 및 병용 요법 치료제로 사용 가능하다. 이중에서는 지난해 8월 비소세포폐암 2차 치료제로 급여가 된 상태.

그런데 찬옥씨는 키트루다를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키트루다가 면역항암제 중 유일하게 비소세포폐암 1·2차 단독 및 병용요법으로 허가를 받은 상태이지만, 급여에 있어서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경제적인 부담에도 불구하고 찬옥씨가 키트루다를 1차 폐암약으로 선택한 것은 가족들의 격려 뿐만 아니라 여러 임상데이터들을 확인한 뒤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다.
찬옥씨는 "우선 뇌에 전이된 암을 떼기위해 8시간 수술을 받았다. 이후 호흡기 내과 진찰을 받았는데 치료를 더 늦출 수 없는 시기였다. 주치의가 설명하기로는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적은 항암제가 있는데, 고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렇다. 면역항암제는 높은 치료비용으로 인해 출시와 동시에 '급여' 요구도가 높았던 약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김 교수는 찬옥씨가 PD-L1 발현율이 100%인 것을 확인하고 키트루다 투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교수는 "박찬옥 환자는 유전자 변이 검사를 했을 때 EGFR과 ALK가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만약 표적 유전자가 있었다면 표적항암제를 사용했을 텐데, 다른 치료 대안이 없었다. 항암화학요법은 2달 이상 기대 수명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일반 항암으로는 박찬옥 환자를 예상하기 힘들었다. 또한 박찬옥 환자의 경우 PD-L1 검사에서 발현율이 100%로 나와 면역항암제 치료에 힘을 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교수도 면역항암제의 비용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한번 투약하는데 비용이 큰 탓에 쉽게 환자에게 권하기 힘들다는 의사들도 상당한 편.

김 교수는 "박찬옥 환자의 상태를 고민하다가 면역항암제를 1차 치료제로 제안했다. 면역항암제는 현재 폐암 치료 중 가장 효과가 좋은 약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차에서 급여가 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하는데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때문에 김철홍 교수는 박찬옥 환자에게 일반 항암치료를 받다가 2차로 키트루다를 투여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찬옥씨의 외동딸이 부작용을 견뎌야하는 항암화학요법을 반대했다. 경제적인 부담이 있더라도 키트루다를 투여받자고 설득한 장본인도 딸이었다.

다행히 찬옥씨가 1차 치료제로 키트루다를 투여받고 난 뒤의 결과는 굉장했다. 두 바이알씩 2회 정도 투여했을 뿐인데도  폐 종양이 절반 가량으로 줄었고, 지금도 조금씩 종양 크기가 감소하고 있는 상태다.

김 교수는 "박찬옥 환자는 지난해 7월 말부터 올 2월까지 키트루다를 약 7 사이클 투여했는데, 종양이 8cm에서 5cm로 절반 가량 줄었다. 현재는 안정기에 접어들어 종양이 더 커지지 않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러한 변화를 실질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것은 찬옥씨 본인이었다.

찬옥씨는 "투여 시에도 불편함을 못 느끼고 식사에도 큰 영향이 없어 진단 초기보다 6kg 정도 쪘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오진한 것 아니냐'고 놀릴 정도다"고 말했다.

이어 찬옥씨는 "기억력이나 숫자개념은 머리 방사선 치료를 한 뒤부터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다. 주치의 말로는 키트루다가 뇌에 있는 종양에도 작용해 머리에 있는 암도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참 감사한 일이다"고 덧붙였다.

◆ 효과가 있는만큼 치료 지속하고 싶지만‥`급여` 여부가 중요해
지금의 박찬옥씨는 환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편히 치료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찬옥씨는 언제까지 이 비싼 비용을 들여 면역항암제를 투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찬옥씨는 면역항암제를 1차 치료제로 선택한만큼 막대한 치료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이 치료비용은 집 대출을 받아 충당했고, 최근엔 대출이 어렵고 까다로워져 고민이 가중됐다.

찬옥씨는 "면역항암제를 얼마나 맞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점점 부담이 되고 있다. 키트루다를 투여하면서 암에 걸리기 전과 같이 화분도 옮기고 요리도 하는 등 일상생활을 하니 딸이 비싼 치료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구박을 하기도 한다(웃음)"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생이라는 것이 참 순조롭지 않다. 하지만 건강해졌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버텨보려고 하는데 치료비용 문제를 그저 담담히 지켜볼 수 만은 없다. 가족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엄마의 입장에서는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김철홍 교수도 이런 안타까운 케이스를 많이 봐왔다. 물론 공공재정 안에서 관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급여시스템 상, 무조건적인 치료제의 보험적용을 바랄 수는 없다. 그럼에도 확실한 효과가 예측되는 경우, 적어도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막아서는 안된다는 의견이다.

아울러 면역항암제가 2차 비소세포폐암에 급여 이외에 1차 치료에서도 보험적용이 된다면, 환자들의 `삶의 질`이 급격히 올라갈 것이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김 교수는 "국내외에서 PD-L1에 대해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면역항암제를 투여하기 위해서는 PD-L1의 발현율이 높아야하고, 환자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로도 면역항암제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비소세포폐암의 1차 치료에서도 분명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계속해서 도출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면역항암제의 사용이 정말 어려운 편이다"고 토로했다.

키트루다는 이미 지난해 11월 란셋 온콜로지(The Lancet Oncology)에 게재된 건강관련 삶의 질(HRQoL, Health-Related Quality of Life)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해당 연구는 KEYNOTE-024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키트루다는 PD-L1≥50%인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에서 치료효과뿐 아니라 삶의 질 개선까지 모두 만족시키는 1차 표준치료 옵션임을 증명됐다.

김 교수는 "비소세포폐암 1차에서도 면역항암제 급여가 필요하다. 1차에서 급여가 된다면 환자들의 생존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며 "치료 트렌드에 따라 근거가 충분히 쌓이면 보험 가이드라인도 바뀐다. 예를 들어 표적치료제도 1차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으나 현재는 1차 급여도 인정해주는 약제들이 있다. 면역항암제도 조만간 바뀌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찬옥씨는 인터뷰 말미에서 '30년 후에는 면역항암제로 인해 암이 사라질 것'이라고 들었다며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웃어보였다.

찬옥씨는 "주치의는 종양의 크기가 커지지 않고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라고 했다. 계속적으로 투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급여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확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폐암 환자이지만 찬옥씨는 요즘 '미래'를 생각하며 계획을 세운다. 본인이 힘든 환우생활을 하다보니 그동안 임해왔던 '봉사활동'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지는 것 같다고.

찬옥씨는 "10년 넘게 친구들과 70명이 넘는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대상으로 점심봉사를 해왔다. 한번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 두고싶지는 않지만 내가 암환자이기 때문에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 활동에 제한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성당 내 연령회에서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몸이 괜찮아지고 있는만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많이 찾고 싶다. 매일 최선을 다해 남을 미워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즐겁게 살고 싶다는 것이 내 목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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