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저마다 비장한 각오로 협상에 임하려는 모습이었다. 의약단체장들은 현실을 반영한 수가 인상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필요한 분야에 적절한 수준의 수가 반영을 바라는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올해도 수가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권 공백기에 이뤄지는 협상이라는 점에 더해, 지난해 처음 시행된 환산지수 차등 적용에 대해 의원급과 병원급 모두 불만이 높은 상태다.
정부는 병원과 의원 간 수가 역전이 발생했다고 보고, 올해 요양급여비용 계약에서도 환산지수 차등 적용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에는 1조2708억원의 추가 재정이 투입돼 평균 1.96%의 인상률이 결정됐다. 올해도 약 1조3000억원 규모의 밴드가 형성될 것으로 관측되지만, 보험료 인상과 직결되는 수가 인상률을 두고 공단이 보수적인 접근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협상의 결말은 '타결'보다는 '관리'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026년도 요양급여비용 계약 합동 간담회. 사진=박으뜸 기자
9일 마포 서울가든호텔에서 개최된 '2026년도 요양급여비용 계약 관련 의약단체장 합동간담회'에서는 수가협상 제도의 한계와 각 직역의 어려운 현실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기석 이사장은 "이번 상견례는 의약계와 공단이 마음을 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간"이라며 협상의 출발점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건강보험료율이 2년 연속 동결됐고,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국내외 산업 전망이 밝지 않다"고 털어놨다. 여기에 의료급여비 지출 증가와 정부의 비상진료체계·필수의료 지원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고도 덧붙였다.
정 이사장은 "이러한 여건 속에서 건보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안정적인 재정 운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2026년 요양급여비용 계약을 준비하며 재정의 엄중함을 고려하고, 필수의료 수가는 합리적으로 조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현장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분야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안된 의견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2026년도 요양급여비용 계약 합동 간담회. 사진=박으뜸 기자
의약단체장들은 2024년도 건강보험 재정은 당기수지 1조 7000억원, 누적수지 약 30조원으로 4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이제는 수가 협상이 단순한 예산 배분이 아닌 필수의료 기반에 대한 '투자'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은 "의료계와 협의 없는 섣부른 정책 추진은 결국 의료대란을 야기해 국민과 의료계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공단과 의약단체는 요양급여비용 계약 제도의 구조적 한계와 개선 방안을 논의해 왔지만, 아직 의료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없다"며 "상급종합병원의 환자 수와 수익은 감소했고 이를 보전하기 위해 비상진료체계 지원, 수가 인상 등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쓰였다. 이번 계약도 유사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단이 지난해 발주한 '2025년도 환산지수 산출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는, 환산지수는 특정 행위에 대한 원가 기준이 아닌 기관당 수익 규모를 조정하는 모수로 병원급이 진료비와 빈도가 높은 상황에서 일부 행위의 의원급 수가가 병원보다 높다고 해서 이를 '수가 역전'으로 단정하긴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김 회장은 "2026년 계약은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붕괴를 초래한 저수가 체계에서 벗어나는 시작점이 돼야 한다. 그동안 의료계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가 아래에서 필사적으로 변화에 적응해 왔다. 더 이상 보상체계 왜곡이 심화되기 전에 수가 정상화를 위한 재정적·정책적 의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대한병원협회 이성규 회장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올해 병원계는 전례 없이 복잡하고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의대정원 문제로 촉발된 전공의 이탈 사태는 4월 의대정원 동결 발표 이후에도 복귀로 이어지지 못했음을 직시했다.
그는 "1년 넘게 이어진 전공의 미복귀는 환자와 보호자의 진료 이용 불편은 물론, 병원 내 인력 재배치, 진료 분담, 인건비 급증 등 여러 문제를 낳았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개혁과 의료전달체계 개편은 병원의 기능 전환을 요구하지만 이로 인해 재정 부담과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회장은 "공단은 매년 수가협상에서 재정 불안을 언급하지만, 실상은 작년 말 기준 약 30조원의 누적 흑자를 기록 중"이라며 "지금은 필요한 재정을 과감히 투입하고, 필요 시 정부와 가입자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치과의사협회 박태근 회장은 최근 치과학술대회 주제가 '동네치과로 살아남기 위한 전략', '덤핑치과 근절'이었을 정도로 동네 치과들이 생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드러냈다.
박 회장은 "치과계는 과잉진료를 자정하려는 노력을 지속해 왔지만 경영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복잡한 현실을 반영한 수가 인상이 절박하며, 정부의 필수의료 투자 범주에 치과계도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한의사협회 윤성찬 회장은 요양급여비용 계약은 의료 수가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과정인 만큼, 한의원과 한방병원을 구분해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회장은 "각종 자료를 살펴보면 한방병원과 한의원을 구분해 산출되고 있으나, 수가협상에서는 하나의 종별로 묶여 맞춤형 협상이 어렵다"며 "내년부터는 별도 협상이 가능하도록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한의원은 인건비와 재료비 등 원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수가 인상은 3% 내외에 그치고 있으며, 건강보험 보장률도 전체 평균 64%에 비해 한의는 59.2%로 낮아, 환자 접근 장벽이 높다고 정리했다.
윤 회장은 "3개년 단계별 수가 인상 로드맵을 마련하고, 장기 계획도 수립해야 한다. 정책 시범사업에서도 한의계가 배제되고 있고, 의료기기 사용이 법적으로 인정됐음에도 불공정한 수가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대내외적 상황이 어려운 만큼 정부의 배려와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 권영희 회장은 올해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두고 수가협상이 진행되는 만큼, 정부 기관과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 단체 모두 시기적으로 매우 민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과 필수의료 위기, 의료대란 등 연이은 보건의료 이슈 속에서, 보건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약국도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장기화되고 있는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는 약국의 기능과 역할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권 회장은 "수급 불안정에 대비해 미리 확보해야 하는 의약품 재고의 부담 비용은 고스란히 약국이 떠안고 있다"며, "의료대란 상황 속에서 급속도로 증가한 91일 이상 장기처방은 수급 불안정을 더욱 악화시키고, 약국의 업무량은 늘어나지만 이에 상응하는 수가 보상은 이뤄지지 않아 경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 매년 축소되는 약국의 행위료 점유율 ▲ 약값 결제 시 발생하는 신용카드 수수료가 조제료를 잠식하는 구조 ▲ 장기처방 증가에 따른 업무량 증가 ▲ 매월 1회 이상 빈번하게 단행되는 약가인하로 인한 약가 손실 누적 및 반품 처리 ▲ 불용 재고 의약품 손실 ▲ 인건비와 관리비 상승 등 물가 폭등에 따른 고정비 증가 등으로 인해 약국은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려운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건강보험은 공급자와 가입자 두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두 축이 조화롭고 민주적으로 어우러질 때 가장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며 "이번 협상이 약국 조제수가 개선을 통해 약국 경영 안정화의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2026년 1차 수가협상은 5월 15~16일, 2차 협상은 5월 22~23일, 최종 협상은 6월 2일로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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