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범위 초과 약제 사용, 현장과 괴리…개선 필요성 커져

응급환자도 승인 기다려야…현장선 "제도가 치료 지연시킨다" 불만
같은 약, 다른 병원…승인 절차 또 밟아야 하는 '이중 구조'
IRB 생략·사후보고 도입…연구팀, 제도 전면 개편안 제시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5-15 11:50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중증 질환 치료에서 약제의 '허가범위 초과 사용'은 종종 최후의 수단이 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를 위한 사전 승인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특히 의료진은 신속한 처방이 필요한 응급 상황에서도 승인 여부를 기다려야 하고, 이후에도 반복되는 행정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제 및 치료재료 허가범위 초과 사용제도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약제의 허가범위 초과 사용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승인한 효능·효과, 용법·용량을 벗어나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의학적 필요에 따라 의료진의 재량 하에 이뤄지는 관행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위해 반드시 심평원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IRB(기관생명윤리위원회) 심의 등 복잡한 절차가 수반된다.

의료진들은 승인까지 긴 시간이 소요돼 치료 개시가 지연되고,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동일한 약제를 사용하더라도 병원마다 다시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하는 이중 구조에 대한 불만이 컸다.

보고서는 항암제의 허가범위 초과 사용 신청이 최근 3년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급종합병원은 2021년 91건에서 2023년 70건으로 감소했으며, 종합병원도 같은 기간 13건에서 8건으로 줄었다. 

아울러 승인률은 일반약제가 80~90% 수준인 데 반해 항암제는 40~60%에 그쳤다. 종합병원의 경우 2023년 승인률은 37.5%에 불과해, 병원 간 정보 접근성과 다학제 위원회 운영 여부가 승인 결과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절차의 복잡성과 기관별 격차는 실제 사용 감소와 승인률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지역 대학병원 7개 진료과에 근무하는 전문의 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75%는 일반약제와 항암제 모두 허가범위 초과 사용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에서도 중증 만성질환자나 말기 암 환자에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최근 1년간 일반약제의 초과 사용 환자 비율은 19.9%, 항암제는 8.7%로 조사됐다.

의료진은 사용 승인 신청 시 가장 큰 업무 부담으로 '신청서 작성'(64.3%), 'IRB 신청'(17.9%), '근거자료 수집'(10.7%) 등을 꼽았다.

또 응답자의 95%는 IRB 승인 절차 유지에 반대했으며, 이를 대체하기 위한 방안으로 '환자동의서 표준화'와 '전담 심의위원회 운영'을 지지했다.

포커스 그룹 인터뷰에 참여한 의료진, 제약사 전문가, 소비자 단체 대표들 역시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의료진은 현재 심평원 시스템의 사용자 친화성이 낮다고 꼬집으며, 허가범위 초과 사용만을 위한 통합 플랫폼 구축을 제안했다. 

제약계는 법정감염병 치료제처럼 높은 수준의 임상 근거 확보가 어려운 약제에 대해서는 기준을 완화하고, 사용기관도 전체 요양기관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소비자 단체는 부작용 위험이 존재하는 만큼, 환자 권리 보호와 체계적 보고 시스템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며, 전담 심의위원회에 환자 대표 참여를 제안했다.

보고서는 제도 개선의 핵심으로 ▲허가범위 초과 사용 정의의 명확화(기준 초과 vs 허가사항 외 사용 구분) ▲사전 승인절차에서 IRB 생략 ▲환자동의서 도입 및 부작용 보고 강화 ▲심평원 내 전담 심의기구 운영 ▲긴급상황에 대한 사후보고 체계 도입 등을 제시했다.

이 외에도 2008년 제도 도입 이후 누적된 사용 내역을 기반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약제를 조건부 승인하는 체계도 고려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 경우 IRB 대신 심평원의 심의 결과를 근거로 하고 이상반응은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한다는 것이 조건이다.

연구팀은 "약제의 허가범위 초과 사용 정의를 재정립하고 IRB 승인 절차를 간소화, 환자동의서와 심평원의 전담 심의위원회 운영을 통해 효율적인 보고 체계로 개선할 수 있다"며 "긴급 상황에서는 사후보고 체계를 통해 신속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팀은 "의료진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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