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상호보완 취지 무색‥'의한방 교차고용'이 남긴 재정 구멍

협진 취지 무너뜨린 교차고용, 한방병원 수익 수단으로 변질
건강보험·자동차보험 재정 수천억 누수, 필수의료 재원 잠식 우려
병의협 "입법 금지·재정 분리·급여 기준 강화 시급"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9-29 11:58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학과 한의학의 상호보완적 협진을 도입하겠다던 '의한방 교차고용 제도'가 본래 취지를 잃고 왜곡되고 있다.

병원급 의료기관이 한의사를, 한방병원이 의사를 채용하도록 허용한 교차고용은 학문적 발전과 환자 치료의 다양성을 기대했던 제도적 장치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보험 청구 수단으로 악용되며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 재정 누수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한방병원이 의사를 고용해 의과 진료를 확대하는 방식이 일반화되면서, 제도의 존립 근거 자체가 흔들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 의-한 협진 건강보험 시범사업 평가에서 의사가 한의사에게 협진을 의뢰하는 비율은 1.67%에 불과했지만 한의사가 의사에게 의뢰하는 경우는 98.33%에 달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이 수치가 제도가 상호보완이 아니라 사실상 한방병원의 의과 진료 확장을 위한 장치로 변질됐음을 방증한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협진과 교차고용은 막대한 보험 재정 낭비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병의협에 따르면 한방병원이 의사를 고용하는 주된 목적은 각종 검사와 시술을 통해 보험 청구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다. 영상검사나 도수치료 등 한의사 면허만으로는 불가능한 행위가 의사 고용을 통해 가능해지고, 이는 곧 환자 유치와 수익 증대로 연결된다. 한방병원에서 근무했던 일부 의사들이 "실제 진료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처방전에 서명만 했다"고 증언할 정도로, 의사 고용이 진료 개선보다는 청구 도구로 전락한 현실이 확인된다.

자동차보험 영역에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한방병원이 교통사고 환자에게 물리치료, 침, 추나 요법을 묶은 패키지 진료를 제공하고 대규모로 청구하는 관행이 자리 잡으며, 보험사와 소비자 부담이 함께 커지고 있다.

병의협은 "교차고용을 통해 각 학문의 발전이나 진료의 전문성이 높아진 흔적은 찾기 어렵고, 오히려 국민 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구조적 문제만 심화됐다"고 꼬집었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자료는 문제의 심각성을 수치로 보여준다. 2022년 한방병원의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 5739억 원 가운데 의과 진료는 1034억원(18%)을 차지했다. 2023년과 2024년에도 같은 비중을 유지하며 1483억원에 달했다. 자동차보험도 예외가 아니다. 2022년 1월부터 2025년 4월까지 한방병원이 청구한 자동차보험 진료비 3조1487억원 가운데 의과 진료는 3073억 원(9.76%)에 달했다. 환자의 중증 질환 치료보다는 목·허리 염좌 같은 경상 환자 진료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에서 문제의 본질이 드러난다.

반대로 의료기관이 한의사를 고용해 청구한 한방 진료 규모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2022년 전체 진료비 50조원 가운데 한방 진료는 0.28%에 불과했고, 이후에도 0.5%를 넘지 않았다. 자동차보험 청구에서도 의료기관의 한방 진료는 393억원으로, 한방병원이 의사를 고용해 청구한 의과 진료의 13%에 그쳤다.

병의협은 "교차고용 제도가 학문적 교류와 발전을 도모했다면 기꺼이 재정이 투입될 수 있었겠지만, 실제로는 한방병원 수익 확대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국제 비교는 한국 제도의 특수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일본은 의사 면허만 인정하고 한방 치료를 의사의 보완 행위로 통합했으며, 미국은 침구사를 준의료인으로만 인정해 독립적 진료권을 주지 않는다. 유럽 주요국에서도 한국처럼 의사와 한의사를 이원화해 교차고용을 허용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결국 보험 청구 영역을 넓히기 위해 교차고용을 제도화한 한국은 국제적으로도 특수한 형태라는 평가다.

교차고용으로 인한 보험 재정 지출도 가볍지 않다. 2024년 기준 교차고용으로 발생한 건강보험 지출은 3618억원에 달했고, 2022년부터 2025년 4월까지 자동차보험 지출은 3466억원에 이르렀다. 병의협은 과잉진료와 편법 청구, 면허 사각지대 활용이 모두 교차고용이라는 구조적 허점을 통해 가능해졌다고 분석했다. 보험연구원에 의하면 교통사고 경상환자 대상 한방 세트 처방 청구는 2017년 1926억원에서 2022년 7440억원으로 급증했다.

병의협은 "교차고용이 한방병원 운영을 위한 핵심 수단이 된 지금,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해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병의협은 개선 방향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먼저 교차고용 자체를 금지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시행규칙은 병원급 교차고용을 허용하지만 상위법은 면허 외 진료를 금지하고 있어 제도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병의협은 "의원급에서 이미 금지된 교차고용을 병원급까지 확대해야 한다. 한방병원에 의사를 두거나 병원에 한의사를 두는 편법을 차단해 각 면허 고유의 업무만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의 재정 관리 방식도 손질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지금처럼 의과와 한방 진료가 같은 재정에서 지출되면 특정 분야의 과잉 지출이 필수의료 재원을 잠식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병의협은 "의과와 한방 재정을 분리하거나 별도 회계로 관리해 남용의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근거가 부족한 항목은 과감히 급여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개편도 요구됐다. 모든 기관을 강제로 보험 요양기관으로 지정하는 현 제도는 부당청구를 걸러내기 어렵고, 보험자의 통제 수단도 제한적이다.

병의협은 "선택계약제를 도입하면 보험자가 교차고용 남용 기관과 계약을 거부할 수 있고, 의료기관도 자율적으로 보험자를 선택할 수 있다"며 "계약 자율성이 보장돼야 진료가 적정화되고 재정 누수도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경미한 염좌까지 무제한 보장되는 구조가 과잉진료를 부추기고 있는 상황에서 자동차보험 한방 진료의 급여 기준 역시 강화가 필요했다. 병의협은 "효과 입증이 부족한 첩약은 보험 보상 범위에서 제외하거나 본인부담으로 전환하고, 한방 치료의 기간과 횟수에도 상한을 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끝으로 관리·감독 강화도 빠질 수 없는 대목이다. 교차고용을 통해 부당 청구가 이뤄지는 사례에 대해 전수조사와 현지조사를 확대하고, 허위 청구 기관에는 급여 지급 보류나 형사고발 같은 강력한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병의협은 "의사와 한의사 모두 교차고용을 통해 허위·과잉청구에 연루되면 면허 취소까지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처럼 느슨한 관리로는 국민 피해를 막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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