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국가예방접종사업(NIP)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년 전부터 학계와 정치권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지만 제도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이 가운데 최근 대한가정의학회, 대한노인병학회, 대한류마티스학회, 대한신장학회, 대한장연구학회, 대한통증학회 등 6개 학회가 공동성명을 내고, 국회에서도 다시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번에는 결이 달라졌다. 단순 제안이 아니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압박으로 전환된 것이다.
6개 학회는 성명서를 통해 한국 사회가 이미 초고령화에 진입했음에도 여전히 치료 중심의 사후 대응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은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고, 사회적 비용 또한 불필요하게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학회는 "예방 중심의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노인 건강을 특정 세대의 문제로 한정할 수 없다는 점도 강조되며, 노인 예방접종이 개인의 치료비 절감을 넘어 국가 자원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고 풀이했다. 특히 대상포진이 대표적인 '예방 가능한 질환'임에도 정부의 예방정책에서 여전히 도외시돼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혔다.
학회는 "여러 선진국이 이미 대상포진을 국가예방접종에 포함한 만큼, 우리 정부도 예방 중심의 정책 전환을 위해 조속히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상포진 NIP 도입 필요성은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과정에서 수차례 공약으로 제시됐고 지난해 국회에서는 관련 토론회도 개최된 바 있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법률 개정안 2건(박희승·서명옥 의원 발의)이 계류 중이며, 올해 정부 예산 심사 과정에서 대상포진 NIP 예산이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최종 예산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자체 예산으로 예방접종을 지원하고 있으나 편차가 크다. 현재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172곳에서만 접종을 시행하고 있으며, 지역별로 대상 연령과 지원 금액이 제각각이다. 이로 인해 같은 조건의 환자라도 거주지에 따라 접종 여부가 갈리는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지원 지자체의 약 95%는 생백신만 포함하고 있어, 면역저하자는 지원 대상에 포함되더라도 실제 접종을 받을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대상포진은 50대부터 발병률이 급격히 증가한다. 지난해 기준 환자의 63%가 50대 이상이며, 70대 이상도 18%를 차지한다. 당뇨병·심혈관질환·신장질환자는 일반인보다 발병 위험이 1.3~1.5배 높고, 류마티스·염증성 장질환·암 환자는 2~3배, 이식환자는 최대 9배까지 위험이 커진다. 환자의 5~30%는 대상포진 후 신경통을 겪으며, 이 통증은 수개월에서 수년간 이어져 삶의 질 저하와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
경제적 부담 역시 막대하다. 질병관리청이 지난해 발표한 국가예방접종 신규 도입 및 대상 확대 비용-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대상포진 신환자의 의료비는 1837억원, 후 신경통 관련 의료비는 1221억원에 달했다. 환자 1인당 의료비는 50대 26만원 수준에서 80대 55만원 이상으로 급증했다.
같은 보고서에서 한국인이 포함된 사회적 비용 연구는 환자의 57.7%가 업무시간 손실을 경험했다고 밝혔고, 근무를 이어가더라도 효율성은 50.3%에 불과했다. 삶의 질(EQ-5D) 점수는 발병 전 0.91에서 발병 후 0.65로 떨어져 약 180일간 저하가 이어졌다. 이는 중증 만성질환인 COPD 환자의 수치(0.62)에 근접한다.
그럼에도 예방접종은 전액 개인 부담이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이 심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현재 비급여 항목에서 '스카이조스터주'는 7만4700원~30만원, '조스타박스주'는 7만5000원~40만원, '싱그릭스주'는 13만~42만원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저소득층에게는 접종 기회가 막혀 있는 셈이다.
반면 주요국들은 이미 국가 차원의 지원 체계를 정착시켰다. 영국은 2013년 생백신으로 NIP를 시작해 2023년 재조합백신으로 전환, NHS 예산으로 100% 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올해 4월부터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국가예방접종을 시행하며, 5년간 단계적 따라잡기 접종을 병행한다. 호주는 연방정부가 전액 지원하고, 프랑스는 건강보험이 65%, 개인이 35%를 부담하는 구조다. 싱가포르도 올해 9월부터 60세 이상과 면역저하자를 대상으로 정부가 최대 75%를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경제성 분석도 명확하게 도출됐다. 국내 연구에서는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대상포진 예방접종의 사회경제적 편익(ROI)이 1.52로, 투입 비용보다 효과가 크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영국 보건경제연구소는 인플루엔자·폐렴구균·대상포진·RSV 등 4대 성인 백신 접종이 투입 비용 대비 최대 19배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고 결론냈다.
이처럼 경제적 근거와 해외 사례까지 누적됐지만, 한국의 제도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결국 정치권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박희승 의원은 "지난 6년간 환자가 350만명을 넘었고, 접종 비용은 수십만원에 달해 저소득층이 접근조차 어렵다"며 "윤석열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65세 이상 무료 접종'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의학계는 더는 늦출 수 없다는 데 공감했다. 6개 학회는 성명서를 통해 "다가오는 노인의 날을 맞아, 정부와 국회는 고령층의 삶과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다시 점검하고, 대상포진 국가예방접종 도입과 성인 예방접종 확대 논의를 구체화해야 한다"며 "각 학회는 국가적 성인 예방접종 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필요한 학문적·임상적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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