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성장클리닉' 쏠림…부모 불안·의사 탈출이 만든 풍경

부모 불안과 키 중심 가치관, 성장클리닉 확산 불씨
대학병원 한계·저수가 구조, 젊은 의사들 개원으로 이동
성장호르몬제 처방 5년 만에 3배…"남용 우려 커져"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10-04 05:57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서울 학원가와 신도시 상권에 '성장클리닉' 간판이 부쩍 늘고 있다. '성장평가', '성조숙증', '키가 작은 아이' 같은 문구가 의원 전면에 내걸리며, 일부는 아예 병원 이름에 '성장'을 집어넣기도 했다. 부모들의 불안을 정조준한 개원 풍경이자, 최근 의료시장에서 두드러진 변화의 단면이다.

성장은 단순한 건강 문제를 넘어 사회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 키 중심 가치관(heightism)이 여전히 뿌리 깊게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키는 단순한 신체 조건이 아니라 경쟁과 비교의 잣대로 기능한다. 학부모들은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조급함 속에 성장클리닉을 찾고, 개원가는 장기 진료와 비급여 구조라는 특성을 앞세워 이를 새로운 전략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성장클리닉의 확산은 단순히 학부모 수요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의료 공급 측의 구조적 요인, 특히 대학병원 소아내분비과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낮은 보상이 젊은 의사들을 개원으로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강남구 A성장클리닉 원장은 "대학병원에서 일하다 개원을 했지만 현재 제자들, 후배들도 성장클리닉을 개원한 케이스가 많다. 소아내분비, 소아청소년과의 환경과 여러 상황이 맞물려 그렇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의정 갈등도 길었고, 대학병원에서는 당직과 환자 예약이 밀려 늘 바쁘다. 소아내분비는 보험 수가가 워낙 낮아 하루 100~150명을 봐도 인센티브가 없어 젊은 의사들이 버티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젊은 전문의들이 빠져나오면서 성장클리닉은 전국적으로 늘고 있지만, 실제 개원은 수도권에 집중되는 양상이 뚜렷하다. 수도권 쏠림은 경쟁을 심화시키고, 결국 개원가의 마케팅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성장클리닉 관계자는 "지방에 있다가 서울에 개원을 했는데, 방문 환자 수는 솔직히 서울이 더 적다. 아무래도 지방에는 성장클리닉이 적으니 환자가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서울은 경쟁이 심해 환자 수 자체는 많지 않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홍보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성장호르몬제 사용 급증과도 궤를 같이 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선민 의원(조국혁신당)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9세 이하 처방 인원은 2020년 1만 2507명에서 2024년 3만 4811명으로 5년 만에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청구 금액도 같은 기간 596억원에서 1592억원으로 불어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증가세가 곧 남용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장치료의 필요성 자체는 분명하다. 저신장증이나 성조숙증처럼 조기 개입이 예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질환에서는 적절한 치료가 아이의 건강과 자존감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정상 아동에게까지 치료가 확대되는 현실은 상업화로 기울 위험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경계가 필요하다. 결국 성장클리닉의 확산은 환자의 치료 기회를 넓히는 동시에 불필요한 남용을 방지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남기고 있다.

성장클리닉 A원장은 "성장호르몬제는 반드시 필요한 아이에게만 사용돼야 한다. 부모들의 불안을 이용해 불필요한 검사를 남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의학적 근거를 토대로 한 신중한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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