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K칼럼] 우리가 쓰는 약은 어디에서 왔을까 - 프레드니솔론

백승만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메디파나 기자2025-10-13 05:51

프레드니솔론(Prednisolone)

1940년대 스테로이드의 개발을 이끈 화합물은 단연코 프로게스테론이다. 당시로서는 유일하게 대량생산할 수 있는 스테로이드였기 때문이다. 소도 비벼댈 언덕이 있어야 비벼댄다. 화학자도 출발물질이 있어야 연구를 한다. 프로게스테론은 스테로이드 연구를 하는 학자들에게 훌륭한 처음이 돼주었다. 

프로게스테론 자체의 생산법도 진화했다. 처음에는 멕시코의 마에서 원료물질을 얻어서 다섯 단계만에 생산하다가 콩기름을 정제하고 화학적으로 가공해 두 단계만에 만드는 형태로 발전했다.

언제까지 사람들이 프로게스테론만 만들 리는 없다. 더 우수한 유도체를 만들어 약으로 개발하고 싶은 것이 학자들의 심리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게스테론을 화학적으로 반응시켜 우수한 물질을 만들고자 했다. 

이때 사람들이 주로 목적했던 물질은 코르티손이었다. 코르티손은 1950년대 들어 관절염 치료제로 혁신을 보여줘 세상을 놀라게 했던 물질이다. 다만 소의 부신에서 얻거나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방법이 너무 어려워 그림의 떡처럼 여겨지던 물질이다. 사람들은 프로게스테론을 코르티손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값싼 물질을 값비싼 물질로 전환하는 일. 많은 직업의 본질이다.

생각대로 잘 풀리면 얼마나 쉬울까. 아쉽게도 이 일은 생각처럼 잘 안 됐다. 구조적으로는 약간의 산화만 일어나면 될 것 같은데 기존의 산화제로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몸이나 곰팡이의 효소들은 이런 작업을 쑥쑥 해내는데 플라스크와 시약으로는 안 됐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자연은 위대하다.

사람들은 어느덧 출발 물질 프로게스테론을 포기했다. 원하는 자리에 산화가 안 되는 걸 어떡하겠는가. 대신 산화가 일어난 물질을 다른 식물에서 찾았다. 어쨌든 그 탄소에 산화가 일어난 물질이 있긴 하다. 코르티손과는 많이 다르지만. 다른 작용기들은 어쨌든 바꿀 수 있다. 이후 18단계의 화학반응을 거쳐서 코르티손으로 전환했다. 궁여지책이다. 그럭저럭 인정.

그런데 한 제약회사에서 발상의 전환을 한다. 이 회사는 그래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프로게스테론을 출발 물질로 삼고자 했다. 산화는 어떻게 하려고? 그냥 곰팡이에게 프로게스테론을 먹여서 해결하려 했다. 곰팡이는 어쨌든 산화효소를 가지고 있다. 이 효소가 프로게스테론을 만난다면 혹시 원하는 자리를 산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 과정이 제대로 진행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곰팡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프로게스테론보다 영양분이 필요하다. 온도가 맞아야 하고 배지가 산성으로 변해도 안 된다. 원하는 산화 반응이 일어나려면 산소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정도 조건은 맞춰주면 된다. 영양분 충분히 넣어주고 산소도 불어 넣어주면 된다. 온도나 산도도 곰팡이가 잘 자라는 조건 찾아서 유지하면 된다. 뭐가 어렵겠는가. 이 연구를 수행한 회사는 업존이라는 제약회사다. 이 회사 연구원들은 각종 곰팡이와 프로게스테론, 배양 조건을 다양하게 조합해 보며 최적의 조건을 찾았다.

화합물이 생물체 내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합성이라 한다. 중요한 무언가를 만들 때 꼭 플라스크에 화합물만 넣어서 반응할 필요는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던가. 효소든 시약이든 중요한 것은 생성물이다. 연구원들은 원하는 자리에 산소가 들어간 화합물을 찾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고 1953년 결실이 나왔다. 곰팡이를 이용해 원하는 프로게스테론의 원하는 자리에 산소를 넣는 데 성공한 것이다. 수득률이 거의 100% 정도. 완벽한 반응이었다.

이후는 마무리 작업이었다. 산소를 하나 도입하긴 했지만 코르티손으로 완성하려면 추가적으로 구조를 조금은 더 변경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단계를 지났다고 바로 합성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마무리 작업은 어렵지 않았다. 무난한 반응들을 이어가며 최종적으로 11단계만에 코르티손을 합성할 수 있었다.

반전은 그 후에도 이어졌다. 코르티손을 목표로 연구원들이 실험혼을 불살랐던 것인데 정작 코르티손의 부작용이 불거진 것이다. 의학계는 어느덧 코르티손의 미네랄 조절 효과를 줄이고 염증 개선 효과만을 원했다. 연구원들이 이런 물질을 위해 추가로 작업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도 그전보다는 쉬웠다. 시작에서도 언급했듯이 연구를 하려면 어쨌든 비벼댈 언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952년 이후로는 코르티손이란 출발물질을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었다. 업존사 뿐 아니라 많은 제약회사 연구원들이 코르티손의 구조를 변경하기 시작했다. 1955년 프레드니솔론이 개발되며 이러한 연구는 결실을 맺었다.

프레드니솔론은 오늘날에도 염증 치료 목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약이다. 프레드니솔론 이후에 개발한 덱사메타손, 베타메타손, 플루티카손 같은 물질도 마찬가지다. 이런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발상의 전환과 이를 구현해 냈던 연구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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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백승만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박사
- 전)美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 박사후연구원
- 현)경상국립대학교 약학대학장  
- '분자 조각가들', '대마약시대',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스테로이드 인류' 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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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작성시간 : 2025-10-13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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