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R-FAP`에 관심을‥"내 가족은 신약 쓸 수 있길"

[연중기획 희망뉴스] '치료제를 만나 삶이 바뀐 환자들'
가족이 유전병으로 고통받아‥'빈다켈'이라는 신약있지만 '급여'에 대한 지원 필요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18-05-23 06:01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트랜스티레틴 가족성 아밀로이드 다발신경병증(TTR-FAP)`. 이름도 생소한 이 질환은 돌연변이 트랜스티레틴(TTR) 유전자에 의해 발생하는 희귀신경퇴행성질환으로, 지속적으로 진행해 죽음을 초래하는 신경병증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1만명 이상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며, 국내에서는 2014년 10월 기준으로 18명이 집계돼 전체 아밀로이드증 환자 중 7.5%를 차지한다고 알려졌다. 말 그대로 '극'희소질환이다. 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보니 평균 4년이 지나서야 TTR-FAP를 진단받는 케이스도 많았다. 이에 실제 유병률은 조사된 것보다 높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TTR-FAP 환자는 지속적으로 병이 진행됨에 따라 상당한 고통을 겪으며 삶의 질이 크게 저하되고, 치료하지 않을 경우 발병 후 평균 10년 이내에 사망하게 된다. 이중 우리나라 환자들의 기대 수명은 약 2년 4개월(27.7개월)로 세계 평균인 10년 대비 매우 불량한 예후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메디파나뉴스가 만난 최영호 환우(1965년생)는 이 질환을 정확하게 진단받은지 11년째다. 처음 진단을 받은 나이는 39~40세 사이. 병이 진행된 지 14~15년 정도됐다고 치면, TTR-FAP을 앓고 있는 환자중에서는 비교적 치료효과가 오래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단, 최영호 환우는 어머니, 형이 같은 질환을 앓고 있었기에 비교적 병명을 찾기가 쉬웠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TTR-FAP은 산정특례 조항에 선정돼 있지만 국가적인 지원은 '제자리 걸음' 중이다. 1기 환자를 위해 최초로 승인 받은 화이자제약의 `빈다켈(타파미디스)`이 급여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23일)은 '희귀질환 극복의 날'이다. 극소수의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있음에도 정부의 관심에서 제외돼 있는 현실이 마냥 씁쓸하기만 하다.
 
◆ 유전병이라는 '아픔', TTR-FAP이라는 질환을 알기까지
 
최영호 씨<사진>는 이 질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설명할 수 있었다. TTR-FAP은 유전병인 탓이다.
 
영호 씨는 본인도 TTR-FAP이라는 진단을 받고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이미 집안에서는 이 질환으로 사망한 가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TTR-FAP가 세상에 알려진지는 얼마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질환을 잘 몰랐던 과거에는 '귀신병'이라는 별명까지 생겨났다.
 
TTR-FAP는 트랜스티레틴 유전자의 유전적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하는 희귀신경퇴행성질환이다.
 
돌연변이 트랜스티레틴 유전자는 비정상적이고 불안정한 트랜스티레틴 단백질을 생성해 아밀로이드원섬유라는 독성구조를 형성한다. 이것이 말초신경계에 쌓이면 신경기능, 심장, 소화기관, 신장 등 신체 다른 부분의 퇴화로 이어지게 된다.

TTR-FAP는 심장과 소화기계 관련 증상 및 안과질환 증상 등의 징후를 포함해 전신적 다발성 자율신경병증을 보이는 특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이상 단백질이 쌓이기 쉬운 하지의 신경에서 통증, 이상감각, 마비 등 증상이 시작돼 상부까지 영향을 미치며 점차 심장, 신장, 눈 등 다른 기관까지 합병증이 동반된다.
 
환자의 기대수명은 증상 발현으로부터 평균 7~12년이며, 이 기간 동안 신경 기능이 점진적으로 감소한다. 초기 증상이 나타난 후 3~6년 뒤에는 보행을 위해 목발 또는 지팡이가 필요하고 5~9년 안에는 병석에 누워있게 될 수 있다. 말기에는 근육이 약화되고 방광, 창자 등 자율신경기능이 상실돼 입원이 필요할 수 있다.
 
영호 씨는 TTR-FAP을 잘 모르던 시절, 이 질환으로 인해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가족 내에 이 질환이 발병하자 굿을 하기도 했고, 부적도 샀다. 병명도 모를 때라 그냥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보려 했지만 아주 어려웠다"고 말했다.
 
특히 최영호 씨의 2살 터울의 형은 15년동안 고생한 끝에 이 질환을 진단 받았다. 형의 경우 가족 유전자 검사를 한 뒤, 외국으로 보내 확인받은 케이스다. 그만큼 과거에는 TTR-FAP에 대해 의사들도 경험과 지식이 부족했다.
 
그러던 와중, 최영호 씨에게도 형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최영호 씨는 "어느 순간부터 마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걷는 게 이상해지고 다리가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 아팠다. 설사까지 시작되니 형님이 유전성 아밀로이드 다발신경병증이라고 알려줬다. 형은 이 병이 희귀하다는 것도 알고, 고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어차피 고칠 수도 없는 병을 알려주면 신경쓰일까봐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담담히 설명했다.
 
영호 씨는 곧바로 대학병원을 찾아갔고, 그 결과 영호씨도 가족과 동일한 병을 앓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진단을 받고나서 너무 힘들었다. 지금 형님은 돌아가셨지만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다가 같이 요양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다. 요양병원에서 형님하고 계단에 앉아 서로 끌어안고 많이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TTR-FAP은 유전병이기에 가족 전체가 아픔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영호 씨.
 
영호 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외갓집과 20년간 연락하지 않았다. 분명히 외갓집에도 환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본인의 병세를 돌보기 조차 힘들었다고.
 
아니나 다를까 영호 씨와 나이가 비슷한 사촌도 같은 병에 걸려 여러 병원을 전전한 상황이었다. 사촌의 경우에는 병명을 찾아내지 못해 잘못된 수술을 받았고 지금 걷지 못하는 상태다.
 
영호 씨는 "외갓집에서도 우리 가족처럼 전체가 피검사를 하고 외국으로 보내 누가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했다. 결국 외갓집 식구들 중에 나를 포함, 환자만 8명이 넘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미 외갓집에서만 어머니, 외할머니와 외삼촌 3명 모두 이 병으로 돌아가셨다. 사실 어머니는 병명도 모른 채, 이 병이 유전병이라는 사실 때문에 정신적 충격을 받아 돌아가셨다. 아마 나까지 이 유전병에 걸렸다는 걸 아셨다면 마음이 더 아프셨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어느 날 영호 씨는 주치의인 건국대병원 신경과 오지영 교수의 환우회 모임에 갔는데, 낯익은 얼굴 두 명을 발견했다. 바로 형의 딸과 아들이었다. 영호 씨는 그날을 '눈물이 마르지 않던 날'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나도 모르게 회의 중에 눈물이 쏟아졌다. 주치의에게 나는 죽어도 되는데 아이들은 살리고 싶다고 문자까지 했다. 검사 결과, 다행히 형의 아들은 괜찮았고 딸은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 경제적인 어려움과 삶의 질의 저하‥"'희망'을 찾고 싶었다"
 
처음 영호 씨의 질환을 진단한 대학병원에서는 중간에 치료를 포기했다.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살아야 했다. 영호 씨는 희망을 갖고 여러가지 치료 방법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서울대병원 암센터에 전화를 해 치료해 줄 의사를 문의했다. 다행히 관심을 보이는 의사가 있었고, 해당 의사는 열흘동안 공부할 시간을 달라고 할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영호 씨는 "열흘 뒤에 병원에 방문하니 배에 '스테로이드'와 '옥트레오티드' 복부 피하주사를 맞으면 설사가 멈춘다는 서울대 논문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 당시 옥트레오티드는 급여가 되지 않아 굉장히 비쌌다. 많은 양을 맞아야 했는데, 비용 문제도 있으니 조금씩 제일 작은 용량부터 시작했다. 치료를 받으니 설사도 조금 멈추고 살도 조금 쪘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TTR-FAP는 진행성이다. 심장과 신장에도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영호 씨는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당시, 간과 심장을 동시에 이식을 받자는 제안도 받았다.
 
영호 씨는 "이식을 받아야한다는 이야기에 `이제 나는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을 결심했지만 막상 간은 너무 깨끗해 수술이 불발됐고, 이후 심장내과, 신경계 손상을 치료하기 위해 신경과를 다녔지만 치료 방법은 신경약을 먹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호 씨는 건국대병원 신경과 오지영 교수를 만났다. 신약 임상을 하고 있고, 효과가 좋으니 찾아가보라는 제안을 받은 덕이다.
 
그곳에서 영호 씨는 TTR-FAP 환자도 투약할 수 있는 치료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기 환자가 투약할 수 있는 '빈다켈'이 그 주인공이다.
 
빈다켈은 비정상적이고 불안정한 트랜스티레틴(TTR) 단백질을 안정화함으로써, 아밀로이드 축적으로 인한 TTR-FAP 진행을 지연시킨다.
 
빈다켈은 지난 2015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TTR-FAP 1기 성인 환자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으며, 유럽에서는 2011년 11월 TTR-FAP 1기 성인 환자 치료제로, 일본에서는 2013년 9월 TTR-FAP 1~3기 성인 환자 치료제로 승인 받은 바 있다.
 
빈다켈 주요 임상연구인 Fx-005는 V30M 돌연변이 유전자를 보유한 아밀로이드 양성 TTR-FAP 환자를 빈다켈군(20mg, 1일 1회, n=65)과 위약 투여군(1일 1회 경구투여, n=63)으로 나눠 치료 효과를 비교한 무작위, 이중맹검, 위약대조, 다기관 2/3상이다. 
 
빈다켈은 TTR-FAP를 유발하는 이상 트랜스티레틴 단백질을 98% 안정화시켜 위약(0%) 대비 질환 진행 지연 효과를 입증했다. 빈다켈 투여군은 V30M 외에 다른 돌연변이 유전자 보유 환자가 포함된 ITT(Intent-to-treat)군에서도 하지 신경병증 손상 비율(NIS-LL Responder)에서 위약군 대비 54% 적은 수치를 보이며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변화했다.
 
동일 임상시험(Fx-005)내 유효성 평가 가능 그룹(EE)에서 위약군은 치료 18개월 시점에서 삶의 질 개선 지표(TQOL, Total Quality-of-Life Score) 중앙값이 8.9점 감소한 데 비해 빈다켈 투여군은 0.1점만이 감소해 삶의 질 항목에서 빈다켈 투여를 통해 이 통계적으로 유의한 변화를 보였다.(p = 0.045)
 
아울러 지난해 9월호 아밀로이드지(Amyloid: The Journal of Protein Folding Disorders)에 게재된 '유전성 TTR-FAP 환자 치료에 있어 타파미디스의 안전성 및 효능: 최대 6년간의 임상 결과'에서는 장기 임상연구 4개를 중간 분석한 결과, 빈다켈이 예상치 못한 이상반응 없이 우수한 내약성을 보이며 TTR-FAP 질환의 진행을 지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영호 씨는 "사실 난 이미 3기까지 진행된 환자고, 같은 병 1기를 겪고 있는 사촌 동생은 빈다켈을 얼마 전부터 먹기 시작했다. 이종사촌 형님도 먹을 예정이다. 빈다켈은 초기에만 듣는 약이기에 이미 3기인 나는 쓸 수 없지만, 신약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가족들에겐 정말 기적같은 일이다"고 말했다. 
 
◆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 결국은 '관심'
 
TTR-FAP은 현재 국내에 산정특례 대상으로 선정돼 있다. 그러나 모든 정책이 그렇듯, 치료제 자체가 '급여'가 되지 않으면 산정특례에서도 실질적인 혜택이 없다.
 
지금도 TTR-FAP은 치료에 있어 간 이식술을 제외하면 진통제 투여나 임상연구 참여를 통한 약물 치료 등으로 옵션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다.
 
'빈다켈'의 경우 장기임상이나, 환자들의 삶의 질적인 면에서 이미 우수함이 드러났다. 개발하기 힘든 희귀질환 치료제들은 상대적으로 환자수가 적다는 이유로 외면받고 있는 현실이며, 실질적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전문가도 많지 않다.
 

영호 씨도 TTR-FAP를 치료받으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본인 외의 다른 가족들도 같은 과정을 반복할 것이라 생각하니 무거운 마음이 든다는 그다.
 
그는 "예전에 너무 힘들어 자살을 결심했었다. 그 때 사보험은 모두 해약해서 돈이 없었고, 기초수급자가 돼 재난적 의료비를 받은 적도 있다. 욕창 등의 치료는 의료보험이 되지 않아 치료비가 2000만원이 넘었다. 비보험 치료했더니 진료비는 800만원, 앞으로 다리를 고치는데 2000만원이 든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극희귀질환 치료제로 개발된 빈다켈 치료비용도 고가다. 과연 이미 여러 치료로 인해 경제적인 부담이 극심한 가운데, 본인부담으로 신약을 투약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영호 씨의 가족 중에서 TTR-FAP을 겪고 있는 사람만 10명이다. 영호 씨는 유전병인만큼 영호 씨의 가족과 같은 부류가 또 있을 것이라 바라봤다.
 
영호 씨는 "유전되는 병인만큼 TTR-FAP는 온 집안의 비극이었다. 우리 가족은 4대째 이 병이 이어지고 있다. 병의 진행속도도 느려 오랜 시간 고통받는 것이 너무 힘들다. 현재 트랜스티레틴 가족성 아밀로이드 다발신경병증을 위해 출시된 치료약은 빈다켈밖에 없어 급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5월 23일, '희귀질환 극복의 날'을 맞이해 기자는 최영호 씨에게 소원을 물었다.
 
그는 단번에 희귀질환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라고 답했다. 영호 씨는 "당장의 내가 문제라기보다 앞으로 치료받을 우리 가족들, 특히 조카들과 그 자식들을 위해 현재 출시된 신약에 대한 급여가 빨리 이뤄지길 바란다. 또한 희귀병으로 입원을 하게 되면 2, 3차적인 합병증에 대해서는 보험이 안 된다. 국가 차원에서 보험이 확대됐으면 좋겠다.
 
여기에 영호 씨는 주치의인 오지영 교수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TTR-FAP에 대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환우를 위해 힘써주시고 있다는 부가 설명과 함께.
 
영호 씨는 "오 교수님과 같이 희귀질환 연구에 열정을 갖고 애착을 가져주는 의사 분들께 감사하다. 공부하고 있을 테니 다시 찾아오라고 했던 서울대병원 암센터 교수님도 잊지 못한다.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다 이러한 의사분들 덕분이다. 존경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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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2018.11.29 08:28:03

    좋은 의사가 많네요. 힘내시고 희귀병도 의료보험이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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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2018.05.23 11:26:47

    이런 기사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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