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뜻 알려야"‥의사들이 공감한 바로잡을 질환 '명칭'

과거 '뇌전증', '조현병'의 사례‥1형 당뇨병·치매·HPV 용어 변경 언급
병명 변경에 따른 파급 효과 고려 필요‥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3-11-28 06:02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최근 '질환'의 제대로 된 뜻을 알려야 한다며 명칭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명칭을 정확하게 씀으로써 질환에 대한 의미가 명확해지고, 진료 영역에 대한 혼선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뇌전증'은 우리나라에서 오래도록 '간질(癎疾)'이라고 불렸다. 미디어에서는 이 간질을 입에서 거품이 나오거나, 쓰러져 몸을 심하게 떠는 경련으로 나타내 부정적인 이미지가 컸다.

그런데 뇌전증 발작은 환자 개인만 느낄 정도의 특이한 느낌이거나, 미묘한 움직임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에 대한뇌전증학회는 질환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명칭을 공모했고 '뇌에 전기적 이상 현상이 나타나는 질환'이라는 의미로 뇌전증을 선택했다. 이는 질환에 대한 편견을 없앤 사례로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정신분열병'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타파하기 위해 개정된 '조현병'도 마찬가지다. 조현(調絃)병은 조율되지 않은 현악기의 줄처럼 불안정한 상태, 기능에 장애가 생겨 고통을 느끼는 상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명칭 변경 필요성이 꾸준히 언급되는 질환이 있다.

'1형 당뇨병'의 경우 희귀하고 치명적인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당뇨병이라는 명칭을 공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책이나 치료제 개발 등이 2형 당뇨병에 치우쳐 있거나 가려져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2형 당뇨병은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 기능 문제가 생겨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질환이다. 

반면 1형 당뇨병은 베타세포 자체가 사멸돼 인슐린의 생성 자체가 안 되는 질환이다. 2형 당뇨병처럼 유전의 영향을 받지도 않고, 식습관이나 운동 부족으로 생긴 질병도 아니다.

췌장 기능이 손상돼 있기 때문에 1형 당뇨병 환자는 평생 인슐린 투여를 해야 한다. 흔히 당뇨병이 만성질환이라고 여겨져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1형 당뇨병은 유형에 따라 정확히 구분돼야 하며 중증난치성질환이라는 인식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직관적인 개념을 넣어 1형 당뇨병을 '췌장장애' 등의 용어로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관련 학회는 1형 당뇨병의 용어 변경으로 경증질환인 2형 당뇨병과 구분 짓고, 관련 보건 정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치매'도 명칭 변경이 거론되고 있다.

치매는 한자로 '어리석을 치'와 '어리석을 매'를 사용한다. 이 연장선으로 치매 환자를 비하하는 '노망'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치매의 'dementia'라는 어원은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정신이 없어진 것', 또는 '정신이 부재한 상태'라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부정적 어감과 인식으로 인해 이미 외국에서는 치매 명칭 변경이 이뤄지기도 했다.

대만은 2001년 '실지증'으로, 일본은 2004년 '인지증'으로, 홍콩과 중국은 2010년과 2012년에 '뇌퇴화증', 미국은 2013년 '주요 신경인지장애'로 이름을 바꿨다.

우리나라는 치매가 기억력과 인지기능 장애 등이 나타나는 증상이므로 '인지흐림증', '인지저하증', '신경인지장애' 등의 다양한 후보군이 제시되고 있다.

최근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백신'과 관련해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도 접종을 해야 한다는 분위가 고조되고 있다.

이 HPV 백신이 자궁경부암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하지만 실제로 인유두종 바이러스(HPV)는 성매개 질환으로 남녀 모두에게 감염 및 전파될 수 있는 바이러스다. 성인 인구의 70%가 일생 동안 적어도 한 번의 생식기 HPV 감염을 경험한다고 조사된다. HPV에 지속적으로 감염되는 경우 남성에서도 생식기 사마귀, 항문 상피내 종양, 항문암 등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성별 구분 없이 HPV 백신 접종을 통한 질환 예방이 권장된다. 대한감염학회도 2019년부터 HPV 백신 접종 권고 대상에 남성을 추가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HPV 백신이 남녀 모두에게 접종할 수 있다는 이해가 부족한 편이다. 처음 국내에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이 등장했을 때 '자궁경부암 백신'으로 알려져, 여성 백신으로 인식된 탓이다.

그래서 의사들이 직접 남성도 HPV 예방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는 인식 전환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한비뇨의학과의사회를 비롯해 다양한 국내 의료 단체들은 HPV 예방 접종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자궁경부암 백신을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으로 변경하는 등 인식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다만 의학 용어는 각 질환을 직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국민의 호응도 검토 등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병명 변경에 따라 사회에 미칠 파급 효과도 중요하기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실시간
빠른뉴스

당신이
읽은분야
주요기사

독자의견

작성자 비밀번호

0/200

메디파나 클릭 기사

독자들이 남긴 뉴스 댓글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