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피부과 전문의들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국민들 사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피부과=미용'이라는 오해, 전문의가 아님에도 간판에 피부과를 내거는 왜곡된 현실, 그리고 만년 저수가 구조까지 겹치면서 전문의들은 깊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우리는 미용의사가 아니라 국민 건강을 지키는 필수의료 인력"이라는 절규다.
'피부과=미용'이라는 오해가 만든 억울한 현실
강서구의 한 건물에는 피부과 의원 간판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습진 때문에 먼저 A의원을 찾은 환자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 "우리는 피부과 전문의가 아니라서 질환은 보지 않는다." 분명 간판에는 피부과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일반의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환자는 결국 같은 건물에 있던 B의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곳은 피부과 전문의가 상주하고 있어 습진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사례는 피부과를 표방하는 비전문의 의원의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환자 입장에서는 두 곳 모두 피부과처럼 보이지만, 치료 가능 여부는 천지 차이다. 이 같은 혼란은 결국 '피부과는 질환을 보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이어지며, 정작 전문의들의 명예와 역할을 가려버린다.
대한피부과의사회 안인수 홍보이사는 "타과에서 피부과를 표방하는 의사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진료과목 피부과라는 방패를 삼아 개원하고, 일반인뿐 아니라 한의사나 비의료인까지 피부 미용 치료 영역에 무분별하게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라고 꼬집었다.
겉으로 보기에 피부과 전문의가 늘어난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매년 일정한 수련 과정을 거쳐 배출되는 전문의 숫자는 고정돼 있다. 문제는 비전문의 의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국민들이 이들을 모두 전문의로 오인한다는 점이다.
대한피부과학회 김동현 홍보이사는 "전공의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고 피부 성형으로만 간다는 기사가 자주 나오지만, 피부과 전문의 숫자는 늘지 않았다. 오히려 피부과를 표방하는 비전문의 의원이 늘면서 국민들이 혼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왜곡은 고스란히 전문의들에게 향한다. 국민들이 품는 '피부과는 미용만 한다'는 불신은 비전문의 난립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결국 전문의들이 그 비난을 떠안는 형국이다.
한 피부과 전문의는 "피부과 전문의는 절대 피부 질환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미용 진료를 중점적으로 하는 곳이라 하더라도, 피부 질환 환자가 오면 성심껏 진료한다. 그게 전문의 자격증을 딴 우리의 자부심이다. 오히려 진료를 거부하는 것은 대부분 전문성이 없는 비전문의 의원들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의 검색 환경도 문제를 키운다. 피부과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노출되는 곳은 대체로 미용 클리닉이고, 질환을 보는 전문의 의원은 찾기 어렵다. 국민의 알 권리와 의료 접근성 측면에서 심각한 불균형이 생기는 셈이다.
안인수 홍보이사는 "피부과를 검색하면 질환을 볼 수 있는 피부과 전문의는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소청과를 치면 소청과 전문의가, 정형외과를 치면 정형외과 전문의가 당연히 나오는데, 왜 피부과만 예외인가. 국민의 알 권리가 무시되고 결국 손해는 국민이 본다"라고 토로했다.
만년 저수가에 묶인 피부과
피부과는 겉으로 '럭셔리 과'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실제 진료 현장은 정반대다. 진료 수가 체계의 가장 하위에 묶여 있어, 환자를 많이 볼수록 손해가 쌓이는 구조다. 전문의들이 환자 곁을 지키면서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김동현 홍보이사는 "수가는 각 과마다 상대가치점수를 통해 정해지는데, 피부과는 가장 하위 그룹이다. 대학병원에서도 피부과 의사의 수입은 항상 꼴찌 수준이다. 환자를 열심히 본다고 해도 지금 체제에서는 노력하면 할수록 힘들어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피부과가 겉으로는 럭셔리해 보이지만, 보험 진료를 이어가는 전문의들은 말 그대로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피부과 질환은 대부분 만성적이다. 생활습관 교정이나 장기간 관리가 필수적이지만, 진찰료만으로 묶여 있는 현재 수가 체계에서는 의사의 노력과 시간이 전혀 보상되지 않는다.
대한피부과학회 장용현 보험이사는 "만성질환은 한 번 진단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토피 피부염 환자라면 생활습관 교육, 보습제 사용법 지도, 중증 환자 평가까지 환자 한 명당 10분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수가는 단순 진찰료 외에는 보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손발톱 수술도 구조가 복잡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피부암 등 다른 암 질환과 비교하면 수가가 터무니없이 낮다. 수가 현실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응급 진료 현장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환자 보호자들의 요구에 맞춰 정성껏 치료를 해도, 책정된 보상은 턱없이 낮다.
안인수 홍보이사는 "개원가에서 가장 흔히 보는 게 열상·찰과상 같은 상처다. 아이가 넘어져 찢어진 상처로 피부과를 많이 찾지만, 5cm 열상 봉합을 해도 최대로 받을 수 있는 수가는 2만~3만원에 불과하다. 더 짧으면 1만원도 안 된다. 시간은 오래 걸리고 보호자 불만까지 감당해야 하는데,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는 구조라 현실적으로 기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피부과 진료의 본질이 수가에 반영되지 않는 점도 전문의들이 답답함을 토로하는 대목이다. 다른 과가 장비와 검사 위주로 보상을 받는 것과 달리, 피부과는 의사의 눈과 경험이 핵심 자산이지만 이 부분은 수치화되지 않는다.
대한피부과학회 김상석 보험이사는 "피부과 환자 진료의 핵심은 우리의 눈이다. 수년간의 수련과 임상 경험이 가장 중요한 자산인데, 이런 전문성이 수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같은 표피낭종 수술을 해도 외과와 피부과의 수가가 다르다. 기피과 지원 유도라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같은 행위라면 동일한 수가가 적용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피부과 전문의들의 시각은 분명하다. 왜곡된 인식과 불합리한 제도가 환자 피해를 낳고 있으며, 이를 바로잡아야 피부과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인수 홍보이사는 "안전한 시술을 위해서는 환자가 진료를 받는 의사가 피부과 전문의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필수 질환 진료에 대한 보험 수가를 현실화해 지속 가능한 진료 환경을 마련하고, 비전문의의 피부과 사칭 행위를 규제해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피부과는 미용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피부과 전문의의 진료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며, 국민 건강을 지키는 최전선"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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