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동종 조혈모세포이식(allo-HSCT)은 그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혈액암 치료에서 큰 혁신을 가져왔다.
환자의 기존 골수를 제거하고 HLA(조직 적합 항원)가 일치하는 건강한 사람의 조혈모세포를 주입해 세로운 혈액 세포를 만들어내며, 완치까지 바라볼 수 있는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으로 인한 합병증 역시 함께 대두됐다. 바로 이식편대숙주질환(GvHD, Graft-versus-Host Disease)이다.
이식편대숙주질환은 공여자의 면역 세포가 수혜자의 정상 세포를 공격하면서 간, 위장관, 폐, 피부 등 다양한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 면역질환이다.
경증 환자는 피부 연고나 간 기능 치료제 등으로 비교적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지만, 중등도 이상으로 진행되면 예후가 나빠져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
GvHD는 수십 년간 스테로이드 기반의 1차 치료 외에 뚜렷한 대안이 부재했다. 하지만 스테로이드 치료는 여러 부작용 위험이 생긴다. 관련 치료를 받은 GvHD 환자 약 절반(50%)은 스테로이드에 불응하거나 의존성을 보인다.
이 가운데 등장한 치료 신약이 '자카비(룩소리티닙)'다. 자카비는 JAK1/2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경구용 JAK 억제제로,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과잉 생산 및 T세포 활성화를 차단함으로써 GvHD의 주요 병태생리에 직접 작용한다.
자카비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코르티코스테로이드 불응성 급성 GvHD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대조군 대비 두 배 높은 전체 반응률(OR)을 보이며, 임상적 유효성을 달성했다.
이에 2023년 11월부터 급성 또는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에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 교수는 최근 메디파나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룩소리티닙의 급여 적용은 관련 의학적 미충족 수요가 장기간 남아있었던 만큼 희소식"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GvHD 발생률이 최근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과거에는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더라도 GvHD 발생률은 20~30%에 그쳤으나, 최근에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의료 기술 발달로 HLA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거나 절반만 일치하더라도 이식이 가능한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최근 GvHD의 발생률은 40~60%로 과거보다 약 2배 증가했다"며 "조혈모세포이식을 통해 혈액암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이식 후 GvHD의 발생은 여전히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치명적인 합병증"이라고 설명했다.
스테로이드는 일부 환자에게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장 교수에 따르면 GvHD의 1차 치료인 스테로이드로 숙주 반응이 완전히 소멸되는 환자는 전체 약 25%에 불과하다.
또 좋은 반응을 보이더라도 '스테로이드 의존성'으로 인해 치료 용량을 줄이면 증상이 반복적으로 재발하는 경우도 생긴다.
즉, 약 75% 환자는 스테로이드에 부분적인 반응만 보이거나, 전혀 반응이 없는 불응성 또는 저항성으로 분류된다.
장 교수는 "이 가운데 룩소리티닙은 숙주반응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스테로이드 관련 합병증을 줄이는 데 기여한 치료제"라며 "실제 임상연구로 스테로이드에 불응한 GvHD 환자의 치료 성적을 눈에 띄게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써본 결과 스테로이드 불응성 환자 약 30~40% 정도는 룩소리티닙에 치료 반응을 보였다"면서 "GvHD로 인해 눈물이 나오지 않던 환자의 눈물 분비량이 회복되고, 폐 숙주 반응으로 심한 호흡곤란을 겪던 환자 호흡이 개선되는 등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룩소리티닙이 지닌 또 다른 장점으로 장 교수는 스테로이드 사용량 감소를 꼽았다.
스테로이드는 장기간 사용 시 감염, 골괴사, 내분비 이상, 당뇨 등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만성 GvHD 환자는 10~20년 장기 투여가 이뤄지는 경우도 많아 감염증을 비롯한 2차 합병증 위험이 크다.
그런 만큼 GvHD에서 룩소리티닙 급여 조건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만성 GvHD 환자 치료에서 룩소리티닙 급여기준은 1개월 간격으로 반응 평가를 거쳐야한다.
문제는 이 한 달이라는 기간이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과도한 부담이란 지적이다.
룩소리니닙 임상 연구(REACH3) 또한 투여 9개월 시점부터 3개월 간격으로 치료 반응 평가가 이뤄진데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가이드라인 역시 3개월 간격 평가를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룩소리티닙이 보험 급여를 받은 지 1년 반 정도 지났지만, 기대만큼 활발하게 처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반응 평가의 짧은 주기는 실제 임상 현장에서 활동하는 의료진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선 고가 약제란 이유로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룩소리티닙 같이 전문성이 요구되는 약제는 글로벌 기준에 맞춰 현장에서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보다 유연한 접근과 조속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학회 차원에서도 이러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제도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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