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의료의 위기‥서울시내과醫 "재정 없는 정책은 껍데기"

재정 빠진 정책 설계…"의료현장 지속 가능성은 뒷전"
만성질환관리제, 방문진료, 주치의제 모두 지원 문제‥"새 정부는 다르길"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6-23 05:56

서울시내과의사회 조승철 공보이사, 곽경근 회장, 하상철 부회장.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일차의료를 살리려면 결국은 '재정적 지원'이 필수라는 현장의 목소리가 또다시 터져 나왔다. 정부 정책이 쏟아지지만, 돈이 빠진 정책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울시내과의사회는 22일 제29차 정기총회 및 학술대회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금 우리나라의 일차의료는 중환자 상태"라며 정책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승철 공보이사는 "겉보기에는 문제없어 보일 수 있지만 왜곡된 의료전달체계 속에 지역 간 의료격차는 심화됐고, 중증·응급·소아·분만 분야 필수의료는 물론 동네병원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며 "일차의료는 만성질환관리, 검진, 예방까지 아우르는 핵심인데 정책만 있고 지원이 없다는 건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식"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국민 건강을 위한 분야엔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며 "재정 빠진 정책은 현장의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추진한 만성질환관리 본사업의 경우 제도 설계의 미흡함으로 인해 참여율이 급감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곽경근 회장은 "시범사업 당시에는 등록 환자가 약 70만명에 달했지만 본사업으로 전환된 후 18만명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참여가 급감한 핵심 원인은 시범사업 당시 면제됐던 본인부담금의 부활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중 검진 바우처는 환자 유입과 질환 관리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으나, 본사업에서는 이를 제외함으로써 실효성을 잃었다는 것이 의료계의 분석이다.

이에 곽 회장은 건강생활실천지원금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본사업 이후 건강생활실천지원금이 18% 늘어난 것은 긍정적 신호"라며 "이 지원금을 받은 환자들의 반응도 매우 고무적이었다. 제도 경직을 해소하기 위해 복지부와 지속적으로 접촉 중이며, 제도 활성화가 환자 유입과 질병관리 효율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문진료에 대한 현장의 어려움도 언급됐다. 고령화로 인해 재택 진료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상철 부회장은 "낮은 수가, 법적 제약, 협업 인력 부족이라는 3중의 벽 앞에서 의사 혼자 모든 걸 감당할 수 없다"며 "가장 시급한 문제는 환자 분배 시스템이다. 지역의사회가 중심이 돼 방문진료센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사회복지사 고용과 환자 배정을 통합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센터를 만들기 위해선 필수 인력에 대한 고용 여건, 즉 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는 "전주시의사회의 경우 정부로부터 운영비를 받아 사회복지사를 고용하고, 직접 환자를 배분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런 구조가 전국으로 확산되려면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방문진료 수가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하 부회장은 "한 의사는 엑스레이 장비를 들고 10km를 이동해 진료를 하고, 또 다른 의사는 가까운 환자 댁에 방문해 30분 만에 진료를 마친다. 이렇게 조건이 다른데도 같은 수가를 적용받는 건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방문 시 동행하는 간호조무사에 대한 수가가 따로 책정되지 않는 점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간호 인력에 대한 수가는 있지만 간호조무사에 대한 별도 수가는 없다.

하 부회장은 "이 역시 지역의사회 중심의 센터 운영과 정부 지원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회는 단순히 제도적 틀을 만드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 의료현장에서 지속 가능한 운영이 가능하도록 실질적인 인력·시설·재정 인프라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조 회장은 "공공의료에 대한 국가의 적극 투자가 선행된 후 '저수가' 문제를 해결한 뒤에야 정책 논의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의사회는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비대면진료 제도화에 대해 강하게 우려를 표했다.

특히 전진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은 초진을 제한하고 재진 중심으로 운영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만 예외 대상에 18세 미만, 65세 이상, 의료기관 방문 곤란자, 취약지 거주자 등을 포함시켰다. 의료계는 실제로는 초진 범위를 넓힌 셈이라고 비판했다.

조 공보이사는 "비대면진료가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계층을 위한 제도라면 그에 걸맞은 타당성과 안전성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그런데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도 없이 핵심 내용이 추후 복지부령으로 바뀔 수 있도록 여지를 둔 점은 책임 회피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또한 내과의사회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관련 데이터를 요청했지만 '가공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이는 제도화 논의의 객관적 근거마저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맞춤형 주치의제'에 대해서도 내과의사회는 현장과의 시각 차이를 분명히 했다.

조 회장은 "일차의료의 근간은 내과와 일반의다. 그런데도 주치의제 논의에서 이들의 의견이 소외되고 있다"며 "정부가 의도하는 방향은 포괄적 관리를 전제로 한 인두제 방식일 수 있는데 이는 의료의 질 저하와 개원가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러한 형태의 제도가 추진된다면 기존 행위별 수가제와의 정합성 문제, 포괄수가 전환 논의 등 복잡한 과제가 뒤따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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