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K칼럼] 헬스케어산업과 규제 개혁

대한약학회 최준석 총무위원장(대구가톨릭대 약학대학 교수)

메디파나 기자2025-07-14 11:58

헬스케어산업 발전 방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첫 번째로 언급되는 사안은 바로 '규제 개혁'이다. 과연 규제가 헬스케어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근본적으로 헬스케어산업은 오랫동안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 보장을 위해 축적된 규제를 통해 근간을 다져온 산업이다. 따지고 보면 규제가 있기에 존재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규제 당국의 인허가 과정은 새롭게 개발된 제품이 사용자에게 줄 수 있는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제품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고 제품을 시장에 진입시킴으로써 헬스케어산업의 신뢰성을 높이고 제한된 기업들에게만 이익을 보장한다. 

만약 규제없이 누구나 의약품을 제조해 판매할 수 있다면 효과가 없는 의약품이나 오히려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의약품이 시장에 등장하게 되고, 이런 의약품에 피해를 본 사람들은 더 이상 의약품의 효과를 신뢰하지 않게 돼 결국 시장은 와해되고 선량한 의약품 제조기업들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규제는 헬스케어 산업을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럼 헬스케어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어떤 부분의 규제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우선 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빠른 인·허가 과정이다. 흔히 패스트트랙이라고 일컫는 제도로, 규제 당국에서도 필요성을 인식하고 AI·디지털헬스케어 등 혁신의료기기 분야로부터 순차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패스트트랙 제도가 하루빨리 도입돼 정착하기 위해서는 규제 관련 인력의 대폭 충원과 함께, 해당 분야 규제과학 인력의 전문성 제고가 요구된다. 

다음으로는 인허가 과정을 통과한 제품의 빠른 시장 진출 촉진이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새롭게 승인한 의료기기나 의약품들은 바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 급여 또는 비급여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인·허가 과정에서의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는 통제된 환경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안전성과 유효성 보증을 위한 추가적인 임상연구와 심의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선택지가 없는 환자들과 이미 신제품 개발에 많은 비용과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출시만을 기다리고 있는 기업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심사 대상 제품의 위해도에 따른 위험 대비 이익을 평가해 선별적으로 심사를 실시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 하다. 

마지막으로 적극적인 시판 후 감시를 통해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는 것이다. 신뢰는 헬스케어산업을 지탱하는 필수적 요소이다. 이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인·허가 이후에도 지속적인 시장 감시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헬스케어 제품들의 실제 사용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이상 사례, 장기적인 효과 등을 감시하는 것은 임상시험이나 신의료기술 평가를 위한 임상연구에서 확인되지 않은 부작용, 상호작용, 실제 사용 패턴 등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노력은 장기적으로 제품과 시장에 대한 신뢰를 높혀 헬스케어산업 발전을 촉진할 것이다.

헬스케어산업에 있어 균형 잡힌 규제는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소다. 기술 혁신과 환자 안전 사이의 균형을 조절하는 그 역할이 막중하다.
|기고| 최준석 대한약학회 총무위원장 

- 현)대한약학회 총무위원장
- 현)대구가톨릭대 약학대학 교수
- 현)대한암예방학회 이사
- 현)한국FDC규제과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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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작성시간 : 2025-07-1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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