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천연물의약품 급여 불인정, 발목 잡힌 제약 R&D

이정수 기자 (leejs@medipana.com)2025-09-04 06:00

[메디파나뉴스 = 이정수 기자] 전방위적으로 제약사를 옥죄는 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 추진에 자칫 제약업계 의약품 개발 의지까지 발목을 잡힐까 걱정이 앞선다.

지난달 초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제8차 회의에서는 '애엽추출물' 제제에 대해 '급여적정성 없음'으로 결정이 내려졌다.

애엽추출물 제제는 지난 20여년간 국내에서 활발히 처방돼온 천연물의약품 위염치료제다. 급여 청구 기준으로 애엽추출물 성분 처방 규모는 연 1200억원이 넘는다는 추계도 나온다. 그만큼 진료현장에서도 주요 치료옵션으로 적극 활용돼왔다.

아직 약평위 결정이 진료 현장에 반영되기까지는 절차와 시간이 남아있는 상황이지만, 제약업계와 진료현장에서는 애엽추출물이 급여권에서 제외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각 제약사로선 매출 주력 품목이었던 만큼 급여 삭제에 따른 처방 제한 시 매출 공백을 피할 수가 없고, 개원가에서는 주요 치료옵션을 잃게 되는 것에 따른 부담을 떠안게 됐다. 처방약 변경이나 약값 상승에 따른 환자 신뢰 저하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같은 여러 우려 속에서도 무엇보다 개인적으로는 제약업계 전반에 미칠 사기 저하가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에는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 줄여 '천연물신약개발법'이 존재한다. 천연물과학 육성,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기반 조성, 개발 기술 산업화 촉진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법에는 '보건복지부장관은 천연물신약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을 바탕으로, 국내에서는 현재까지도 여러 업체를 통해 천연물의약품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화학합성의약품에 비해 개발기간과 개발비용이 적게 소모된다는 점, 천연물과 한약재 등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풍부하다는 점 등도 개발유인 요인이 되고 있다. 신약개발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내 제약산업 상황에서 천연물의약품은 향후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는 셈이다.

다만 천연물의약품은 특징 상 해외 활용 사례가 적고, 약리활성 변수가 많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약평위는 천연물의약품인 애엽추출물에 대해 합성화학의약품과 동일한 잣대로 '임상적 유용성'을 평가하고 급여에 제한을 뒀다. 결국 이번 약평위 결정은 천연물의약품이 갖는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정부 판단 기준을 정립하고, 나아가 천연물의약품에 대한 제약업계 개발 의지를 꺾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무릇 '치료를 위한' 의약품이라 하면, 임상적 유용성이 충분히 입증돼야 하는 것은 맞다. 다만 그 임상적 유용성을 판단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단적인 예로 RWD(Real-World Data, 리얼월드데이터)가 효과 입증에 한 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천연물의약품에 대한 긍정적인 환자 경험도 충분히 근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업계에서도 ▲천연물의약품은 여러 특성 상 임상적 근거 마련이 어렵고, 합성화학의약품과 다른 평가기준이 필요하다는 점 ▲수십 년간 진료현장 처방 경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을 간접적으로 충분히 입증해왔다는 점 등을 호소하고 있다.

급여적용 취소에 따라 발생한 매출 공백이 R&D 사업 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올해를 지나 향후 급여적정성 재평가가 계속된다면 제약업계로선 끊임없이 매출 공백에 맞닥뜨려야 하고, 이는 R&D 사업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애엽추출물 급여 여부는 이달 중 약평위 결정에 대한 제약사 이의신청이 이뤄진 후 재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약평위가 재심의에선 건보재정 뿐만 아니라 제약업계 R&D 여건까지 고려한 결정을 내리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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