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해진 기자] "청원은 끝났지만,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리브리반트'를 기다리는 환자들은 하루하루가 절박하고, 현재도 고통 속에서 치료를 미루고 있는 분들이 있다. 이 청원이 실제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급여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지난달 6일 국회전자청원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리브리반트(아미반타맙) 급여화 요청에 관한 청원'을 게재해 5만명의 동의를 얻은 청원인 고 씨는 메디파나뉴스와의 서면질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고 씨는 아버지가 EGFR 엑손 20 삽입 돌연변이(Exon20) 비소세포폐암 4기를 앓게 되면서 리브리반트 효과, 그리고 급여의 필요성을 체감했다. 아버지를 살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호소하기 위해 직접 신문고에 글을 올리고, 국회전자청원 페이지에 청원글을 올렸다.
고 씨는 신문고 글에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오래전 가입한 보험을 가지고 있지만, 표적치료제라는 개념이 없었던 터라 대부분이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재난적 의료비 지원 또한 기준이 불명확하고, 지원 금액이 한정돼 있어 사실상 무력하다"고 밝혔다.
이어 "다른 치료제처럼 5%만 내도 되는 산정특례도 기대하지 않는다 20%, 30%를 책임지는 부분급여도 정말 괜찮다"며 "단지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약이 하나뿐인 Exon20의 환자로서 치료받을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한다"고 피력했다.
이후 국회에 올린 청원글에서는 리브리반트가 국내에서 비급여로 분류돼 1년에 약값만 1억5000만원 이상이 소요되는 현실, Exon 19, 21 환자들이 사용하는 약은 급여가 적용돼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지만, Exon20 환자들은 리브리반트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너무 높은 비용에 치료를 시작하지도 못하거나, 결국 치료 중단이나 포기를 결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가혹하다고 호소했다.
고 씨는 국민들의 동의를 받기 위해 국회 국민동의 청원 내용을 발로 뛰며 알렸다. 그 과정에서 급여화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일부 사람들에게 생각지도 않은 욕이나 협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간절한 노력의 결과, 5만406명의 동의를 받을 수 있었다. 동의기간은 오는 5일까지였지만, 기한 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 가능한 정족수 5만명을 달성했다.
고 씨는 서면 인터뷰에서 "5만명을 달성한 것을 보고 정말 가슴이 벅찼다.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였다. 리브리반트가 필요한 Exon20 폐암 환자들이 단지 '살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을 많은 국민들이 공감해준 것"이라며 "이 청원은 저 개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생명을 위해 싸우는 수많은 환자, 보호자들의 절실함이 모인 결과다. 끝까지 함께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고 씨는 청원 성립이라는 결과에 다른 Exon20 폐암 환자와 보호자들도 "기적같다"고 말했다고 전한 뒤 "많은 환자들이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이번 청원 성립은 '대한민국에 세금, 건강보험료 성실하게 낸 국민으로서 죽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된 것 같다. 댓글 하나, 공유 하나에 담긴 연대의 마음을 보면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물론 청원이 통과됐다고 해서 급여가 바로 되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절차가 있으므로 이 과정을 기다려야 한다.
고 씨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국회는 국민청원이 제기한 목소리를 자신의 부모, 자식의 일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그 어떤 문제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성실히 일하고 건강보험비를 낸 이들에게 환자 생존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 논의에 적극 나서주시길 바란다. 특히 희귀 유전자 변이 치료제에 대해 '조건부 급여' 같은 유연한 제도 도입을 국회 차원에서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또한 치료제의 급여 외에도 ▲희귀 돌연변이 환자에 대한 신속한 약가 등재 시스템 ▲유전자 변이에 따른 치료 접근성 확대 ▲치료비 지원 제도 확대 등 제도적 도움이 절실하다고 했다.
신약이 허가를 받고, 정식 급여를 받으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많은 환자가 치료 기회를 놓치고 있으며, 하나 밖에 없는 신약을 높은 비용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은 환자들에게 '치료받을 가치가 없다. 죽어라'는 묵언의 메세지와도 같이 느껴진다는 것이 암 환자 가족의 심정이라는 설명이다.
더욱이 약값이 고가이다 보니,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치료를 포기함으로써 생명을 포기하는 환자들이 많은 만큼, 급여가 되지 않는 약을 처방받은 환자에 대한 상식선의 별도 재정지원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고 씨는 "제가 대학교 때, 2호선 지하철 안에서 한 할아버지가 본인의 아들이 아픈데 신약밖에 약이 없다. 약값만 수천만원이라고 제발 도와달라며 모든 승객을 향해 엉엉 울며, 전단지를 모두에게 나눠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저는 할아버지의 말이 무슨말인지 이해도 못하고, 공감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저는 동생과 함께 병원 앞에서, 또 광화문에서 리브리반트 급여화 청원을 위해 피부가 타들어가 흙과 같은 색이 될 때까지, 비오는 날에는 우산을 들고, 아픈 날에도 진통제를 먹고 전단지를 돌렸다"며 누구에게든 갑작스러운 질환으로 인해 본인과 가족들에게 고통이 찾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고 씨는 "보통의 경우엔 병원에 가서 암진단을 받는다. 건강검진을 매년 받았다하더라도, 폐암의 경우 그 정기검진이 포함된 폐 엑스레이가 폐암을 잡아내지 못한다"면서 "대한민국 성장과 함께한 부모님 세대에는 급성장하는 약에 대한 적절한 보험이 없었다. 첫달 3000만원 그 뒤 월 1100만원 병원비는 너무 가혹하다. 다른 Exon19, 21은 여러 약이 급여가 되는데 Exon20은 약이 딱 하나이면서 비급여이고, 그마저도 일년에 억대 비용이 있어야 하는 것은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리브리반트 급여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리브리반트 급여 국민동의청원 성립에 대해 한국 존슨앤드존슨 측은 메디파나뉴스와의 통화에서 "최근 리브리반트 관련해 진행 중인 국민동의청원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며 "한국 존슨앤드존슨은 환자들의 접근성 강화를 위해 보건 당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리브리반트의 급여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급여화를 통해 환자와 가족이 리브리반트의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한국 존슨앤드존슨은 리브리반트의 치료 접근성 향상 및 환자들의 비용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혈액암협회 홈페이지를 통한 환자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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