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리스크에 응급실 떠나는 의사들…"전의 상실"

전공의 지원율 하락, 중도 이탈, 전문의 개원…붕괴 시작
응급의학醫 "과도한 판결 지속되면 미련 없이 현장 떠날 것"

조후현 기자 (joecho@medipana.com)2023-12-27 14:24


[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응급의학과가 과도한 사법 판결에 붕괴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반복되는 무리한 판결은 응급실 의사는 언젠가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로 다가오고, 이미 시작된 응급실 이탈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27일 '무너져가는 응급의료 현실과 현장상황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대한응급의학의사회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응급실이 사법 리스크로 붕괴 직전에 직면했다고 호소했다.

전공의 1년차 시절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판결부터 얼마 전 만성신장질환 중증환자에 기도삽관과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등 최선의 진료를 하고도 사망하자 5억 원이 넘는 배상판결 등 응급의료 현장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사례를 설명한 최일국 기획이사는 "이렇게 했으면 나았을 것이란 말은 결과로 과정의 잘잘못을 유추하는 치명적 오류다. 최소한 응급의료는 이렇게 작동할 수 없다"며 "응급실에서 1~2시간에 최종진단이 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민사상 최선의 조치를 취할 주의의무에서 회피가능의 범위를 넓게 적용해버리면 귀가 후 나빠진 모든 환자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고, 응급의학 전문의 누구도 이런 위험을 피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일련의 과도한 사법판결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우린 거창한 폐과선언 없이 응급실을 그만두기만 하면 그만이다. 빈자리는 경험이 부족한 의사가 채우게 될 것이고 응급환자는 길거리를 헤메다 사망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판결 기조는 전공의 지원율 하락과 중도 이탈, 전문의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에 따르면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이 80%를 넘기지 못한 것은 물론, 수련하는 전공의 가운데 10%가 그만두고 있고, 응급실을 떠나 개원하는 전문의도 10%를 넘어선 상태다.

이 회장은 "응급의학과 파국 조짐은 이미 시작됐고, 전의를 상실한지 오래"라며 "심폐소생 기회는 얼마 남지 않았다.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희생, 비용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과도한 판결 기조에 응급의학과는 무너지고 있지만 실질적 현장 개선 정책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이송거부 금지법이나 면허취소법 같은 법으로 말을 듣지 않으면 처벌하겠다고 윽박지르고 있는 실정이란 지적이다.

국회에서도 응급의료 과실치사상에서 형사처벌을 감경하는 법안이 1년 넘게 계류된 상태다.

이 회장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마주하는 사법위험에 대한 불안이 앞으로도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일말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수준을 '일반적 의료인의 주의의무'라 이야기한다면 지금 응급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전문의들은 구속되기 전 하루 빨리 응급실을 그만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정부와 사법부에 ▲응급의료행위 적절성은 사법부가 아니라 전문가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점 ▲응급상황에서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응급의료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점 등을 강조했다.

이를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응급의료 사고처리 특례법과 과실치사상에서 형사처벌 면제법안을 즉각 마련할 것도 촉구했다.

이 회장은 "정부도 사법부도 국민도 응급의학과를 인정해주고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우리가 응급실에서 밤을 새며 응급환자를 봐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우리에게 자부심을 빼앗고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과도한 판결을 지속한다면 미련 없이 응급의료 현장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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