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딱딱하고 곧게 뻗은 나뭇가지는 부러지는 법

이정수 기자 (leejs@medipana.com)2024-03-21 11:37

[메디파나뉴스 = 이정수 기자] '정부 독단'으로 늘어난 의대정원 2000명이 끝내 각 대학에 뿌려졌다. 결국 윤석열 정부는 '하겠다면 반드시 한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좋게 보면 '뚝심'이건만, 나쁘게 보자고 보면 '독재가 아니고 무엇인가' 싶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유독 지울 수 없는 생각이 하나 있다. 진정 정부는 '2000명'만이 목표였을까.

'정부는 이번에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 '의료개혁은 국민 생명과 건강만을 염두에 둔 헌법적 책무', '때마다 정부정책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는 악습은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 '국민 생명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법치주의 위에 특정 집단 있을 수 없다'….

모두 지난 19일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에서 박민수 제1총괄조정관이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린다면서 발언한 말이다.

번번이 반대에 부딪혀 국민을 위한 보건의료정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과거를 청산하고, 이제는 정부가 정한 정책 방향에 '무조건적으로' 의료계가 따르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물론, 이같은 정부 태도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이번 2000명 의대정원 확대 방침을 밝힌 직후 의료계 저항이 거세지자, 왜 2000명으로 결정했는지를 '중대본 정례브리핑'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 결과, 의료계 설득엔 실패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민'을 이유로 정책 추진을 강행했고, 일방적인 행정이 계속되자 전공의들도 일방적으로 병원을 뛰쳐나갔다. 이는 곧 정부에게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한 집단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는 명분을 줬고, 종국엔 의료계 집단행동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정부가 됐다.

'국민을 위한 정부'는 완벽한 무기이자, 방패 같다. 오롯이 국민을 위해 의대정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이 2000명이 됐든, 3000명이 됐든 의료계는 절대 반대하거나 목소리를 내어선 안 되고, 법치주의에 수그리고 따라야 한다. 지금 정부 태도를 보자면, 이외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정부는 정책 강행이 아니라는 입장일 수도 있다. 정부는 이번 정책 추진 과정에서 '왜 2000명 증원을 해서는 안 되는지 설득해 달라. 대화를 하자'고 했고, 실제 토론까지 했다. 그러나 이같은 일련의 과정은 결국 정부가 정책을 강행하는 데 필요한 대외적 밑거름이 됐을 뿐이다.

정부는 평등하고 대등한 상황과 관계에서 오롯이 논리만 갖고도 의료계를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이후 일방적으로 발표할 것이 아니라 의료현안협의체 단계에서부터 당당히 증원 목표를 제시하고 논의 과정을 충분히 거쳤어야 했다. 이제와 대화를 한들, 고운 말이 오갈 수나 있을까. 행여 진짜 설득이라도 됐다면, '국민을 위한다고 했던' 2000명 증원을 조정할 수 있었을까.

의대정원 2000명 증원 강행과 이를 통한 법치주의 확립. 국민을 앞세운 정부는 끝내 의료계 반대를 억누르고 하고 싶은 것을 다했다. 

그럼 의사들도 사직이든, 출국이든, 파업이든 하고 싶은 것을 다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다. 수용가능하고 납득이 되는 정책이 있어야만 의사라는 사회 일원도 제 역할을 하지 않을까. 국민을 앞세워 그들을 억지로 또는 강제로 못 떠나게 한들, 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할리 만무하다.

의료계 반발을 통제하고 정책을 한 방향으로 추진해나가는 것만이 정답이었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 정부가 먼저 유연성을 갖고 포용정신을 보여줬다면, 현 사태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딱딱하고 곧게 뻗어진 나뭇가지는 부러지기 마련이다. 현 정부가 세운 의료체계처럼 말이다.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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